농촌 총각들을 상대로 한 결혼사기가 극성을 부리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스님들까지 위장 국제결혼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지난 15일 1990년 백쌍 중 1쌍이었던 국제결혼이 16년 만에 8쌍 중 1쌍 꼴로 급증했다는 대법원의 발표가 있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해 마음이 더욱 무겁다. 신성한 결혼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목돈을 마련했을 중국인의 가슴에 시커먼 멍을 남긴 이번 사건을 조명해본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지난 17일 취업을 위해 국내에 입국하려는 중국 여성에게 돈을 받고 스님, 보살, 도인들과 위장결혼을 중개한 혐의(공전자기록 등 부실 기재)로 유모(58)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위장결혼임을 알고도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준 스님 김 모(50)씨와 위장결혼으로 국내에 들어온 중국교포 정모(53)여인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불구속된 22명 중에는 지리산 모 암자 주지스님부터 승려, 보살 그리고 지리산에서 지내는 도인 10명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담당형사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번 사건은 부산 모 일보의 경찰서 주재기자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우리 쪽에서는 보도자료 등을 유포한 적이 없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며 종결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 보도는 아직 때가 아니다. 5월 초에 정식 보도자료를 유포할 생각이니 기다려 달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기자의 계속되는 요청에 말문을 열었다.
승려·보살·도인 ‘줄줄이’ 연루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국제결혼사기 총책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으며 지난 3월 말 경에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위장결혼을 중개한 브로커 일당은 2005년 3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인과 위장결혼을 시키는 대가로 중국인 1명 당 1천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4백만원씩을 해당 스님 등에게 넘겨주고 주고 나머지 금액, 총 2억 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런 식으로 성사시킨 위장결혼커플은 30쌍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리산 일대의 암자와 토굴 등지에 머무르며 소위 ‘도를 닦는’ 사람들이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접근, “인적사항만 넘겨주면 위장 결혼을 성사시켜 4백만원과 함께 중국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교활한 범죄수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속세를 떠나 불가의 가르침을 받고 도를 닦는 사람들도 돈의 유혹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들 일당은 돈과 관광을 내세워 손쉽게 스님들과 암자, 토굴 등에서 도를 닦는 홀아비 유혹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무너진 코리안드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국제결혼 관련법 상 혼인신고를 했더라도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입국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통해 위장결혼임이 발각된 중국 여성들은 우리나라로의 입국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힘들게 마련한 1천만원에 희망을 실어 보냈던 그들에게 꿈꾸던 미래 대신 입국 금지라는 냉정한 처분이 내려졌다.
경찰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들도 피해자이지만 법적으로 이들을 보호해야할 이유가 없다. 어쨌든 불법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려 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이들의 신원을 파악해 입국금지처분을 내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보살들이 자신에게 점을 보러온 이들을 류씨에게 소개시켜주고 소개비 명목으로 2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부산, 경남 일대 사찰을 통해 위장결혼을 소개받은 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확대 수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