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보지도 못했는데 신용불량자 왠말?
정수기 보지도 못했는데 신용불량자 왠말?
  • 임성희
  • 승인 2007.04.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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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판매업체인 청호나이스가 정수기 임대계약도 안한 사람을 계약자로 둔갑시켜 통장에서 수십만 원을 임의로 인출해갔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 기자의 확인 결과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와 명의도용이 아니라는 청호나이스가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피해자로부터 의뢰를 받은 시민옴부즈맨공동체(이하 시민옴부즈맨)가 청호나이스의 위법에 대한 검토와 계약무효를 주장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반면 청호나이스는 법적 하자가 없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원인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의 정보를 도용, 정수기 임대계약을 체결했다면 법률상 임대계약서의 효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유 없이 청호나이스에선 민원인에게 피해에 대한 원상복구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4월5일 공동체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견제시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접수했다. 또한 각 언론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배포, 청호나이스의 행태를 고발했다. 이로 인해 청호나이스는 현재 명의도용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본 적도 없는데…"


현재 피해자인 김모씨(여·부천)는 명의를 도용한 판매업체 사장 조모씨를 고소하고 청호나이스에게는 계약무효를 요청한 상태다. 또한 시민옴부즈맨측에 도움을 요청, 법률적 문제를 검토 중에 있다.
김씨가 이처럼 강경하게 청호나이스와 맞서게 된 것은 본 적도 없는 정수기로 인해 신용불량자로까지 전락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현재 채권추심업체인 '나라신용정보'로부터 전월세 및 통장 가압류를 당한 상태다.


시민옴부즈맨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재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씨는 조 사장을 도와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월급을 받기 위해 그에게 계좌번호를 알렸다.
그러던 중 조 사장은 급여를 지불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무실 겸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곳에 정수기를 신청했으나 부재중이라서 전화를 못 받을 것 같으니 전화가 오면 받아달라"고 김씨에게 부탁했다. 얼마 후 김씨는 청호나이스로부터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정수기를 설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는 게 시민옴부즈맨의 설명이다. 김씨는 몇 달 뒤 자신의 통장에서 1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인출된 것을 알고 청호나이스로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하고 취소를 요청했다는 것.
이후 1년간 연락이 없어 취소가 받아들진 것으로 생각했던 김씨는 청호나이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60회 중 24회 사용에 해당하는 1백만원의 정수기 연체대금을 내라는 내용이었던 탓이다.


정수기 사용을 신청한 적도 본 적도 없는 김씨는 청호나이스에 자신은 계약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호나이스는 계약서의 이름이 김씨로 돼있다며 채권추심업체에 넘겼고 연체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김씨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조 사장은 청호나이스의 판매 대리인인 정모씨와 지인관계였다"면서 "직원이었던 내 신상정보를 이용해 애인이라고 하며 내 명의로 정수기 렌탈 서비스를 신청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수기 또한 조 사장의 어머니 집인 서울 신월동에 설치됐다. 조 사장은 현재 이사를 하고 연락처를 바꿔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라면서 "경찰에 고소하려했지만 경찰측에선 자신이 신청하고 모른 척 하는 것이 아니냐며 고소를 받아주지 않아 방법을 찾던 중 시민공동체에 민원을 제기해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호 "계약 철회하면 위약금 내!"

반면 청호나이스는 책임이 없으며 계약을 철회할 경우 위약금을 지급하라는 입장이다. 청호나이스 한 관계자는 "김씨의 경우 계약자가 김씨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휴대폰 연락을 통해 설치 당시 김씨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화 내역에서도 조씨가 남자친구라고 밝혔고 연체 사실도 고지를 했다. 연체료를 청구하고 집행하는 것은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다. 만약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씨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그 남자친구분과 해결할 문제다"고 말했다.
또 "조씨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확약을 받아 우리에게 제출한다면 추심요구를 철회할 것이다"면서 "김씨와의 전화 통화 내역을 기록한 것이 남아있다. 통장만 보여준다고 해서 서비스를 실행하지는 않는다. 명의확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계약할 때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에 대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호나이스의 약관에는 대리인이 계약 신청할 시 신청자의 주민등록등본을 첨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나는 등본이나 기타 여하의 정보를 청호나이스는 물론이고 함께 일했던 조씨에게도 제공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처음 정수기를 설치하러 왔을 때 집 주소를 말했다면 분명 확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확인하고 정수기를 설치하러 오겠다고 해서 조씨의 사무실에 설치한다는 것 인줄 알았다. 계약하지 않았다고 청호나이스에 주장했지만 회사측은 필적 감정 등은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고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한편 시민옴부즈맨으로부터 질의를 받은 공정위는 20일 회신을 통해 "조 사장이 민원인의 주민등록번호와 통장계좌번호 등을 이용(도용)해 재화를 구매한 것은 민·형사적인 사안이므로 방문판매법을 적용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현재 청호나이스의 방판법 위반행위에 대한 건을 위원회에 상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회신 받은 김씨와 시민옴부즈맨은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좀더 법적 검토를 거쳐 청호나이스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 이로 인해 청호나이스와 김씨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과연 법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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