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 강화 위한 사정기관?
열린우리당 “공비처 기소권 부여해야”
한나라당 "대통령 권한만 더욱 확대시킬 것"
정부가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비처) 신설을 추진하면서 제2의 사직동팀이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속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공비처 설치를 지시함에 따라 고위 권력층 사정 주체 및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고위층 사정업무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검찰과는 별도로 외부 사정기구 신설이 추진되는 것은 검찰내부에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그간 검찰 방안과도 정면으로 배치돼 사정기관간 역학 관계에도 미묘한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실 지난 중수부 폐지 논란도 이것과 절대적인 상관관계에 있다. 그것은 중수부를 폐지하고 공비처로 대신한다는 설 때문이었다.
현재 특히 공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목소리와 반대하는 목소리가 양극화 되어 맞서고 있다.
원래 청와대의 복안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부방위에 수사권을 부여, 일정 직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 비리와 관련한 모든 고소.고발, 제보, 첩보 등을 1차적으로 부방위가 조사토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패추방 업무를 위한 기관간 조정 및 정책기능까지 부여해 부패방지 역량을 통합하는 기구로 자리매김토록 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의지인 만큼 검찰로 사실상 일원화돼 있는 사정업무가 이원화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특별검사에 준할 정도의 인사.예산 독립성을 갖는 `특별수사 검찰청', `공직비리 조사처' 등 권력형 비리 전담수사기구를 검찰 산하에 신설, 반부패 수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해온 게 사실이다.
검찰은 `별동대' 성격을 지닌 공직비리 조사처 신설 문제가 가시화되자 사정 수사 역량이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일부에선 강한 반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대검 고위간부들은 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 신뢰을 회복해가며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사정기구 신설은 `옥상옥'이 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구동성으로 기구신설에 반대하고 있다.
자칫 기소독점주의 원칙도 훼손될 수 있고 특별사법경찰권 부여에 따른 수사지휘권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기구신설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시 해결해야 할 법률적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검찰에 대한 통제가 여의치 않게 되자 대통령 직속 기구인 부방위를 `제2의 사직동팀'으로 활용하려는 조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 권력남용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 특명 수사만을 담당하는 사직동팀이 해체된지 4년도 안돼 대통령 직속의 권력비리 수사기구 신설은 최고 권력자의 비밀수사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공비처의 수사대상과 범위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와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판.검사, 국회의원 등이 총망라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이들 고위공직자에 대한 사정업무를 총괄해왔던 중수부의 위상은 재정립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중수부 존폐' 문제가 꾸준히 거론돼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송광수 검찰총장의 `발언파동'을 계기로 법무부가 중수부를 축소하되 수사기능은 그대로 존치시키는 쪽으로 중수부 개편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향후 진행될 중수부 개편 논의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검찰청이 법무부에 제출한 개편안대로 중수부 3개과 중 공적자금비리 수사를 전담해온 3과만을 없애고 1, 2과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면 중수부의 전력에 큰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대선자금 사건 때처럼 대형비리 사건이 터졌을때 일선지검 검사들을 끌어모아 수사팀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공비처와 중수부의 수사대상이 겹쳐 우리 사회에 사정 피로감만 가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공비처가 출범하게 되면 청와대 민정라인이나 국가정보원 등에서 수집된 고급정보가 공비처에 몰려 중수부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검찰청 내에 범죄정보기획실이 가동되고 있고 전국 일선지검에서 포착하는 비리첩보 역시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전망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중수부가 공비처와의 업무중첩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공직사정을 지양하고 대신 경제비리 등 다른 분야의 부정부패 척결에 주력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중수부가 공비처가 신설됐다고 해서 공직비리 사정업무를 완전히 방관할 것으로 기대하는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대검 입장에서 일상적인 공직사정 업무를 공비처에게 양보하더라도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연루된 대형비리 사건이 포착되면 그간 해왔던 방식대로 총력 수사는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검사출신 의원들은 "대통령의 권한만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며 신설에 반대 입장을 개진하고 나섰다.
검사 출신인 안상수 의원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공비처' 신설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가는 너무나도 뻔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공비처가 입법부인 국회의원과 사법부인 검.판사들에 대한 수사에 집중함으로써 3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을 만드는 데 악용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검찰총장을 지낸 김기춘 의원도 "검찰총장이 잘못하면 직속상관인 법무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과연 대통령 직속의 공비처가 잘못하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며 "공비처는 대통령 직속의 `공룡과도 같은 사직동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최근 공비처의 정치적 독립성 및 중립성 보장을 위해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어 `대검중수부 폐지론'과 맞물려 당정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정부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원칙에 따라 공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 계좌추적권을 포함해 강력하고 독자적인 수사권을 준다는 방침이지만, 열린우리당 천 대표는 "검찰을 포함한 고위공직자 수사라는 신설 목적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고려할 때 기소권 부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또한 사법개혁국민연대는 공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대는 "지금까지 부패방지위원회 등 여러 사정기구가 설치돼 왔지만 검찰의 기소권 독점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내 놓지 못했다"며 "공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해 검찰을 견제하면서 공정한 수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대는 또 "공비처의 조사대상을 고위공직자 부패 전반으로 넓게 정의하면 검찰과 기능이 중복돼 의미가 약화된다"며 "공비처가 법조계 비리에 수사를 집중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편 이후의 중수부와 새로 출범하게 될 공비처가 서로 업무 중복을 피해 가면서 양대 사정기구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해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