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슈렉 2
[영화리뷰] 슈렉 2
  • 이문원
  • 승인 2004.06.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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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속편', 그 이지러진 실체
<슈렉 2>는 재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전편의 엔딩으로부터 바로 이어지는 '연결성' 이야기를 지루한 감 없이 끌고가기 위해 수많은 '레퍼런스 개그'들과 각종 패러디를 곳곳에 포진시켜 놓았고, 잘 짜여진 대사와 효율적인 호흡 구조를 구사해 관객들의 집중도를 확실히 높이고 있다. 액션 연출도 박력있고, 캐릭터들은 전편보다 훨씬 섬세하고 복잡다단하게 성격화되어 있어 '애니메이션에서의 인물구성' 영역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모두가 같은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전편과 똑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2001년에 공개된 <슈렉>은 비단 'CG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장르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에도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낸 작품이었다. 비록 지나치게 PC(Politically Correct)화된 주제 설정 탓에 소재가 지니고 있는 마술적 성격이 철저히 제어되어 버렸지만, <슈렉>은 놀랄만치 통렬하고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을 듬뿍 안고서, 이를 폭발적으로 터뜨려 즐거움을 선사하는 '어른들의 선물보따리'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 '현실밀착화'되는지, '애니메이션' 하면 늘상 떠오르던 '뮤지컬 형식'의 '통념'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그리고 과연 '동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끝없이 조롱하고 비꼬며 생생한 웃음을 안겨준 <슈렉>에 비해, <슈렉 2>는, 이에 덧붙일 '꺼리'가 별달리 없어보이는 영화이다. 이미 '동화 주인공의 재구성'은 전편에서 팔아버린 소재이고, '동화'의 'PC적 재해석' 역시 전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주제이다. 사실 <슈렉>은, 더 팔 것이 없어 속편을 만들어낼 수 없는 영화의 대표격으로 꼽힐 수도 있는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산업적 논리에 의해 속편이 등장했고, 그 속편은 '아이디어'가 전편에서 모두 소진된 상태를 극복하려 애쓴 또다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2>와 같은 입장을 취함으로써 나름의 존재 가치를 확보해내려 하고 있다. 바로, 전편에 맞먹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시하지 못하는 대신, 전편보다 훨씬 더 신경 쓴, 더 잘 짜여지고, 더 면밀히 계산된 구성과 연출로 일방적인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겠다는 것. 어찌됐건, <슈렉 2>는 유쾌한 영화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성우를 맡은 '장화신은 고양이'의 캐릭터는 전편의 '동키' 이상으로 히스테리컬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으며, 헐리우드를 꼭 빼닮은 왕국의 묘사, <지상에서 영원으로>부터 <반지의 제왕>, <스파이더 맨>에까지 이르는 오마쥬/패러디 잔치로도 모자라, '슈렉' 역을 맡은 마이크 마이어스 주연의 영화 <오스틴 파워>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오마쥬하는 등의 '대담함'을 보여줘, 영화 매니아들의 '속재미'까지 충족시켜 주고 있다. <슈렉 2>는, 21세기형 '잘 만든 속편'의 교과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난 20 여년간 세계영화계를 지배했던, <제국의 역습>이 보여준 '잘 만든 속편'의 공식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신봉되고 있다는 새로운 증명사례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방편이 '잘 만든 속편'의 정형으로 굳어지고, 모든 속편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속편으로서의 딜레마'를 이런 식으로만 풀어내려 한다면, '속편'은 더 이상 비평의 대상은 물론, 이야기거리 정도로도 떠오르지 못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결국, 모든 속편은 '속편이 아닌 속편'의 입장 - <대부 2>의 경우처럼 말이다 - 을 취해야만 개별적인 한 편의 영화로써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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