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지니 돌연 민생경제를 운운하며 화제를 돌리려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정작 조 전 장관의 갑작스러운 자진 사퇴 이후엔 검찰개혁만 내세우면서 당초 선거법을 먼저 처리하기로 다른 야당들과 합의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순서도 저버리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부터 통과시키자고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얼마나 급했는지 백혜련 의원이 올린 여당 방안이 아니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올린 방안이라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토록 중요하다는 그 검찰개혁을 지지율이 강고하던 집권 초반엔 대체 왜 손 놓은 채 소위 적폐청산이란 칼춤만 추기 바쁘다가 정작 검찰의 칼끝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자신들을 향하기 시작하자 이제야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지상과제인양 외치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말로는 이런 저런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내세워도 갑자기 오는 28일 이후 공수처 설치법을 우선 처리하기로 데드라인까지 정하는 일방적 행태를 보면 실상 조 전 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이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면서 조 전 장관에 대한 소환도 점차 불가피해지니 당청이 모두 속이 타서 황급히 나선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당장 여당에선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에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도 주장했었고, 2010년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도 공수처 검토 필요성을 거론했으며 김문수 전 지사까지 지난 2016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수처 설치를 주장해놓고선 왜 이제 와서 반대하느냐고 한국당을 압박하고 있지만 공수처라는 ‘간판’만 동일하다고 그 내용까지 다 똑같다고 보는지 말장난도 이런 말장난이 없다.
애초에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란 단일기관이 모두 갖고 있다는 ‘권력의 과도한 집중’ 때문이었으면서 이 폐해를 그대로 옮겨놓은 공수처란 상위기관을 만드는 게 사법개혁이라고 외치니 이거야말로 국민 눈만 속인 채 그저 검찰 통제를 위한 ‘옥상옥’ 만들겠다는 꼼수 아니겠나.
검찰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됐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과 경찰의 상호 견제를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이지 검경이 수사 중인 사건까지 중도에 가져갈 수 있게 하고, 수사권과 기소권도 모두 가지고 있는 ‘공수처’를 만들어야 된다고 야권에 역설하는 건 현 정권의 호위대나 하는 무소불위의 ‘정치검찰’ 만들어보겠다는 가증스러운 요구에 불과하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시정연설 자리에서도 이전 정권 당시의 국정농단 사태까지 거론하면서 “공수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마치 대통령 스스로 정권 견제 기구를 만든다는 듯 강변했는데, 공수처장 임명부터 대통령이 하는 방안을 지금 여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판국에 무슨 궤변을 쏟아내고 있는 것인가.
당장 대통령 친인척은 차치하고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일일이 엄포를 놓았으면서 진정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까지 생각했다면 적어도 공수처장 임명 권한에 대해선 스스로 손을 놔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현재 민주당 안에 따르면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를 받은 인사를 공수처장 후보로 올리게 되어 있는데, 7명 중 사실상 야당 몫은 2명뿐이고 이마저도 선거 결과 등 정국 구도가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범여권 야당이 차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이렇게 해서 설령 후보 2명을 올린다 해도 여당 추천 후보와 야당 추천 후보 중 대통령이 택일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결국 대통령 입맛에 맞는 처장만 임명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아예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임명 권한까지 대통령이 갖도록 해놨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 따위로 해놓고서 검찰이 개혁해야 되는 이유였던 그 막강한 권한들을 공수처엔 몰아주는 식으로 부여해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부터 사법부의 판사까지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이제는 국회의원까지 포함시켜야 된다고 여당 지도부에선 주장하고 있으니 사실상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정부가 공수처라는 감찰기관을 통해 독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어떻게든 당위성을 마련하고자 오늘도 문 대통령이 과거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를 운운했는데,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갈등을 불사하고 ‘살아있는 권력’도 조사했었다는 사실을, 또 후보 2명 모두 야당에서 지명한 특검이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했었다는 것을 정작 국정농단을 거론하는 문 대통령은 벌써 잊어버렸는가.
시정연설에서 밝혔던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수사’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 척결을 염두에 둔 게 사실이라면 3년째 임명하지도 않은 채 공석으로 놔둔 특별감찰관부터 당장 임명하고, 공수처장 추천 역시 여당과 야당 후보 중 지명할 수 있게 만들 게 아니라 공정한 수사를 위해 국정농단 당시 특검 때처럼 모두 야권에서 후보를 올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여당은 이 같은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범여권 정당들과 ‘짬짬이’로 공수처 설치를 강행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매우 높아 한국당 등 보수야권에선 이를 별 달리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게 안타까운 실상인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수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정부여당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전격 총사퇴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이외엔 딱히 원내에서 막을 방도도 없는 만큼 총사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이런 방법으로라도 민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끝내 공수처라는 괴물이 탄생했을 때 보수야권 역시 방조자나 다름없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