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네 번째 작품 ‘밀양’이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초록물고기’, ‘오아시스’, ‘박하사탕’을 만든 감독이다. 앞의 영화를 떠올려본다면 ‘밀양’의 분위기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밀양’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공식초청작이다. 한마디로 무게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난해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러닝타임은 ‘극장에 오래 앉아 있는다’싶은 정도다. 영화에 출연한 송강호는 “긴 러닝타임은 사골국물같다. 영화가 이보다 짧다면 진맛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신애는 종교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평안을 얻었다 고백한다
그러나 원수에게 일어난 절대자의 용서는 용납할 수 없다
영화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다. 사실 주된 흐름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집회 장면, 용어, 문화 등이 줄곧 나온다. 감독은 이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일상적으로 비쳐지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알량한 자존심의 용서
영화에서 신애(전도연)가 중요한 기점을 맞는 것은 두 번 정도다. 사실 그보다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영화 속 기독교와 맞물려 가장 큰 기점은 그가 박도섭(조영진)을 용서하고자 만난 장면이다. 신애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 분의 말씀대로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감옥으로 도섭을 찾아간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원수다.
신애는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 인자한 표정으로 하나님을 전한다. 하지만 도섭은 이미 용서 받았다. 감옥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눈물로 회개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셨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순간 신애의 표정은 굳어지고 기독교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배신당한 기분이다. 이후 그는 신에게 대적하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왜 용서하려는 자가 이미 용서 받았음에 충격을 느끼는가. 왜 신이 용서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가. 그것은 자신보다 신이 먼저 용서했기 때문이다. 내가 용서한 뒤 신이 그를 구원해줬어야 했다. 신애는 자신이 죄인보다 아량이 넓고 더 나은 위치에 있기에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쌍한 죄인에게 자신의 자비를 베풀어주며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내가 용서해줘야 할 죄인이 이미 다른 존재로부터 용서받은 것을 보며 마음이 언짢아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자존심이 쓸모없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기분을 느끼게 한 대상에게 막연한 분노와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 적대적 존재는 신이다.
평범한 일상속의 구원
미쳐가는 신애에게 종찬(송강호)은 끝까지 남는다.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보이던 종찬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애의 주변에 남는다. ‘밀양’이라는 마을이 극히 평범함을 뜻하는 동시에 ‘비밀의 햇볕’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듯 종찬은 신애에게 평범하지만 하나의 보살핌, 혹은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햇볕이 언제나 마을을 비추고 있듯이 신애에게도 끝없는 보살핌이 존재한다. 신은 자존심이 아닌 진정한 자비로 신애를 용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