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고자 지난달 29일 본회의 개회도 무산시켰던 더불어민주당이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한국당에 돌리고 있다.
비록 한국당이 200건에 가까운 당시 본회의 법안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초유의 사례인 만큼 논란도 없지 않으나 본회의 안건 순서를 바꿔 여당이 원하는 법안만 먼저 처리한 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대해선 토론도 할 수 없도록 국회의장이 산회를 선포해버릴 가능성을 우려한 불가피한 점이 없지 않았다.
여당에선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는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당초 합법적으로 보장된 야당의 대항수단인 필리버스터를 보장해준다고 확언했다면 애당초 이런 결과가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도리어 야당에서 민생법안은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본회의를 열지 않은 채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민주당에 모두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양대 악법인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선 한국당은 어떻게든 이번 정기국회 내 본회의가 열린다면 필리버스터로 오는 10일까지 끌고 가야 하는데, 일단 여당에 199개 법안 중 5개 법안만 정기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고 줄여 타협안을 제시한 만큼 만일 본회의가 열린다면 이 5개 법안을 어떻게든 표결로 종결될 수 없도록 다음 회기까지 지켜가야 한다.
일단 국회법 106조 8항엔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번 정기국회를 5개 법안으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끝내더라도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이들 법안은 더 이상 필리버스터할 수 없게 자동으로 표결 처리될 수 있어 임시국회에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쓸 수 없게 되기에 여당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정기국회 종료를 몇 초 남기지 않은 시점에 5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스스로 철회하여 임시국회에서 이들 안건을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오는 10일 정기국회가 종료되더라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은 선거일은 선거일 전 120일인 17일부터 받게 되는 만큼 이 사이에 임시국회가 열려 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어 정기국회 뿐 아니라 임시국회에서의 처리 시도 역시 반드시 저지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어서 주요 정당 모두 모여 합의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의 견해는 사실상 무시한 채 여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과시키는 상황만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데, 임시국회 기간을 결정하는 것도 본회의 의결 사항인 만큼 내년 총선 선거후보 등록 신청이 시작되는 17일 이전까지는 바른미래당 변혁을 비롯해 다른 정당과 공조해서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시국회 개최도 지연해야 한다.
현재 여당은 필리버스터는 한 회기동안만 유효하다는 점을 이용해 임시국회도 짧게 진행하고 닫는 꼼수를 써서 필리버스터 기간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지만 이런 시도에 대해 ‘눈에는 눈’으로 한국당도 임시국회 몇 초를 남기고 필리버스터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는다면 최소한 양대 악법 중 선거법 개정안은 21대 총선에는 적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설령 이를 막고자 민주당이 지난달 29일처럼 본회의를 아예 열지 않는 식으로 계속 대응하더라도 제 아무리 시간을 끌어봐야 원내 구도상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킬 수도 없고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이 다가오는 여당에만 점점 불리할 수밖에 없기에 민주당도 본회의를 끝까지 야당 탓만 하면서 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니 지금 민생볼모라고 공세를 벌이는 여당의 여론전에 지레 겁먹기보다 육참골단이라 생각하고 의연하게 버텨야 한다.
특히 거듭 강조하지만 199개 법안을 모두 필리버스터 신청하는 게 민생법안 인질극이란 여당 프레임에 걸려들까 부담된다면 일부 법안만 필리버스터 신청하기로 줄인 뒤 정기국회든 임시국회든 여당이 법안 표결 처리도 어려울 정도로 얼마 안 남은 회기 종료 직전 시점에 기습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자진 철회하는 방안도 민주당의 꼼수에 맞서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