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의 철학'으로 재해석된 오래된 '논란'
'퇴폐의 철학'으로 재해석된 오래된 '논란'
  • 이문원
  • 승인 2004.07.0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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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뮤지컬 <캬바레> 브로드웨이팀 내한공연
뮤지컬 <캬바레>는 1966년 초연 당시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었다. 1930년대 나찌 치하의 베를린에 위치한 캬바레 '킷 캇 클럽''을 무대로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 싸구려 에로티시즘과 동성애를 비롯한 도발적인 성의식의 대두를 단박에 담아낸 <캬바레>는 1960년대의 보수적인 관객들 - 여전히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뮤지컬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관객들을 끌어모으던 시절이었다 - 을 혼란과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한 아이템이었고, <캬바레>가 보여준 '사회파 뮤지컬'의 방향성은 1970년대의 '뮤지컬 뉴웨이브'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성립 - 이 과정에서 밥 포시 감독의 영화 버전 <캬바레>가 어둡고 써리얼리스틱한 감각을 첨가하여 등장했다 - 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현재 내한 공연 중인 뮤지컬 <캬바레>는, 홀 프린스가 연출한 1966년 '오리지널' 버전이 아닌, 지난 1998년, 우리에겐 영화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샘 멘데스가 연출하여 토니상 4개 부문과 드라마 데스크상 3개 부문을 석권해낸 '신 버전'이다. 멘데스의 버전은 명확한 방향성, 그리고 어쩌면 '단 하나'의 방향성만을 더 추가하여 작품 전체의 무드를 뒤바꿔놓고 있다. 바로, '캬바레'라는 무대 자체의 성격이 그것인데, 멘데스는 완벽한 '퇴폐의 공간'이라는 테마로 이 무대에 접근하여, 뛰어난 공간감각과 디자인 감각을 살려낸 무대/의상 디자인과 피로에 지친 듯 흐느적거리는 배우들,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MC와 여배우의 겨드랑이털까지도 그대로 드러내어 놓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인해 원작이 지닌 '사상적 충격'이 아닌 '이미지의 충격'을 무대에 심어놓은 것이다. 6월 24일 대전공연을 시작으로 7월 초 서울, 7월 20부터 대구, 7월 27일 부산 공연까지 총 40일간 공연하게 되는 '2004 뮤지컬 <캬바레> 브로드웨이팀 내한공연'은, 이런 긴 역사와 적극적인 변환과정을 거쳤음에도, 우리 관객들에겐 여전히 '관념적인 주제', 즉 '개인과 사회', '육체와 정신', '감성과 이성'이 맞닥뜨리는 '관념 충돌'의 무대로서 더 크게 감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겐 '사회적 번민'과 '도발'의 역사가 없다. 우리는 사회 의식의 변화를 위해 싸워오지 않았으며, <캬바레>가 제시한 동성애 담론과 이데올로기 담론, 가치관 변화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멘데스의 버전까지 필요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1966년의 도발적인 버전만으로도 족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깊이있는 주제의식과 엔터테인먼트 정신이 가장 균형있게 혼합되어 찬사를 받았던 세계적인 뮤지컬극은 국내에 들어와, 그 '균형성'에 대한 예찬 대신 아직도 '대담함'에 대한 놀라움으로 평가되고, 수용 마인드가 대립되어 '동·서'간의, '신·구'간 의식구조 차이에 대한 '예시'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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