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은행에서 근무하는 한 지점장이 지인을 통해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이 커지자 돌연 잠적한 사건이 발생한 탓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산업은행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실제 이번 사건을 접한 금융권과 서민들은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국책은행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 내부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며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반면 산업은행은 “이번 건은 은행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금전거래 사고”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점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검찰에 고소,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될 조짐이다.
지난 4월말, 서울동부지점에 하나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산업은행에 근무하는 K지점장(53)이 지인을 통해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 했다가 손실이 커지자 돌연 잠적한 사기사건이 발생했으니 수사를 해달라는 게 고소장의 주요 골자.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K지점장의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사기혐의와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투자행위에 이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도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K지점장을 보직해임하고 자체 특감에 착수하는 한편 임직원 윤리강령 실천 결의대회를 여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K지점장의 사기행각은 지난 2005년말부터 시작됐다. 대학 및 고교 동문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자금 모집에 나선 것. 자금을 모집한 것은 증권투자를 하기 위해서다.
K지점장의 자금모집은 2006년 5월 펀드상품 출시를 담당하는 부장에 임명되면서 탄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 모집규모가 늘어났다는 것. 물론 이렇게 모인 자금은 증권투자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K지점장은 올해 2월 승진하면서 모 지역 지점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하지만 증권에 투자한 손실액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지난달 16일 “금전관계 문제로 며칠 쉬고 오겠다”며 휴가원을 제출했다. 그 뒤 4월23일 경 전화로 사직원을 제출하고 모습을 감췄다.
K지점장이 돌연 자취를 감추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피해자들은 서울동부지점에 그를 ‘사기죄’로 고소했고,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현재 K지점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규모는 대략 수십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 피해자 수가 파악되지 않아 피해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 금융권 일각에선 피해금액이 70~80억원 정도 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이 같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산업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책에서 운영하는 은행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도덕성과 윤리의식에 관한 질타의 목소리가 계속 되고 있다. 실제 금융권 일각에선 “눈 가리고 귀 막고 있는 산업은행은 기강이 땅에 떨어진 것과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K지점장이 2년 여간 사기행각(?)을 벌였음에도 은행에선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데 기인한다. 예컨대 내부 감사와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반면 산업은행은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개인의 금전거래 사고일 뿐’이란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당행 직원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피해자 여러분께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사과하면서도 “은행 업무와는 관련 없는 개인적인 금전거래사고”라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산업은행은 또 도덕적 해이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 국책은행이라는 점 때문에 도덕과 윤리에 관한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개인이 저지른 금전사고이며, 이로 인해 회사 역시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등의 피해가 있는 것도 알아 달라”고 해명했다.
한편 금융권과 서민들은 재발방지를 위한 효율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역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그 대안으로 ▲미공개 투자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직원 대상 유가증권계좌 신고제를 시행 ▲유가증권 거래금지 서약서를 징구하는 등 직무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 ▲연 2회 주식거래 여부를 정밀점검 함으로써 허위신고가 확인될 경우 가중처벌 ▲감찰팀을 확대 개편하고 윤리교육 실시를 통한 지속적인 감찰활동 ▲승진, 전보시 부적격자 보임을 예방하기 위한 인사 사전검증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산업은행의 대책에 대한 금융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사건이 터지고 난 후의 수습이 아니라, 사건이 터지기 전의 예방”이라며 “애초에 효과적이고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않는다면 이 같은 사건은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