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화성의 방> 앵콜 공연
지난 해 9월, '전쟁의 공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관객들을 찾았던 연극 <화성의 방>이 앵콜 공연된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의 공포'라는 주제는 그닥 살갑게 와닿지 않고 있는데, <화성은 방>은 정확히 말해 '재난 영화'의 공식을 '지나치게' 차용하고 있는 희한한 경우이기 때문.
<화성의 방>은 전쟁이 선포되는 싸이렌 소리와 함께 갖가지 개성과 환경의 사람들이 지하로 대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는, 엄습하는 공포에 대한 탐구이며, 인간 갈등 상황의 최극점에 대한 관찰이다. 문 밖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신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런 답답하고 히스테리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게 되는 지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무대'인 '갇힌 공간'. 언뜻만 떠올려보아도 여러 '재난 영화'들이 머리 속을 휘집고 지나갈 것이며, 가깝게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싸인>이 생각나는 설정이다.
어찌됐건 이야기는 계속 흘러가고, '전쟁의 공포'라기보다는 '공포를 예감하는 이들의 패닉 상태'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듯한 묘사들이 연달아 등장하며, 웃지 못할 극적 반전에 이르러서는 '예견된 허탈감'에 더더욱 허탈해진다. 분명히 말하자면, 그런대로 잘 구성된 연극이며, 그닥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출연진들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이를 아우르는 형식 자체가 지루하다.
아예 '재난 영화' 공식을 그대로 옮겨와, 더욱 하이퍼-리얼리스틱한 연출로 격렬한 인간탐구를 벌였더라면 더욱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법하다. 시의성 때문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이라는 추상적 공포 상황을 '우리 앞의 현실'이라는 긴장감 조성의 테제로 삼지 않고서라도 말이다. 때로는 '포기'하는 것이 '얻는' 방법일 수도 있고,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것이 오히려 더욱 힘을 실어내는 자세일 수도 있다.
(장소: 떼아뜨르 추 극장, 일시: 2004.07.0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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