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좀 봐. 무슨 콘돔 샵이 대로변에 저렇게 떡 하니 버티고 서있냐?”
“왜~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가보고 싶다.”
콘돔전문점 콘도매니아 홍대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한 커플이 나누던 대화다.
개업한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콘도매니아의 존재를 모르는 학생도 있는 모양이다. 2005년 12월 이대 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 문을 연 홍대 점까지 서울지역 두 곳에 자리 잡은 콘도매니아는 우리나라 유일의 콘돔전문점이다. 콘도매니아는 1호 이대 점 개업당시 국내 최초 콘돔전문점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대와 홍대의 콘도매니아를 각각 찾았다.
2005년 12월 ‘금남의 구역’ 이대 앞에 요상한 가게가 들어섰다. 바로 콘돔전문점. 그전까지 콘돔은 공중화장실 자판기나 약국 등에서 눈치를 봐가며 몰래 구입해야 하는 물건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5년 12월부터 전세는 달라졌다. 그것도 여대생들이 잔뜩 모여 있는 여대 앞에서 말이다.
국내유일 콘돔전문점 ‘콘도매니아’

개업당시 콘돔가게가 여대 앞에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도 ‘콘돔매니아’는 사회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톡톡 튀는 디자인의 ‘팬시콘돔’은 사회적으로 보수적이고 조신하게 보여야 했던 여성들을 가게 안으로 끌어 모았다.
지난 5월31일 기자가 이대점 콘도매니아를 찾았을 때, 10평 남짓한 매장에 2백여 종의 콘돔이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장 안은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수입한 일반 콘돔에서부터 초박형, 돌출형 등 기능성 콘돔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팬시콘돔’. 어린시절 추억의 문방구에서 봤음직한 귀엽고 앙증맞은 팬시제품으로 둔갑한 콘돔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고스톱 화투장의 모습을 한 사각형 케이스가 눈에 띄어 만져보니 영락없이 콘돔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계급장 콘돔을 비롯해 우유팩에 콘돔을 담아 만든 ‘밀키웨이’ 콘돔, 막대사탕 모양으로 포장된 콘돔까지 팬시콘돔의 종류만해도 너무나 다양했다.
콘도매니아 홍대점의 제품구성은 이대점과 별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점포의 크기 정도? 이대점보다 두 배가량 넓은 공간은 일단 여러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깔끔한 인테리어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젊고 잘생긴 사장까지. 이대점과 다른점이 또 하나 있다면 여대라는 이유로 주 고객층이 여성인 이대와는 달리 주변에 클럽문화가 발달해 있어 남성, 여성을 비롯해 외국인까지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콘도매니아 이대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다양한 색깔과 향기가 나는 ‘레모네이드’ 콘돔이고 홍대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진동콘돔’이라는 것. 여성손님이 대부분인 이대점에서는 아기자기하고 보기에 좋은 콘돔이 잘 팔리는 반면 다양한 계층의 손님이 드나드는 홍대점에서는 기능성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이다.
다양한 고객들과 의미 있는 만남

콘도매니아 이대점 앞, 두 명의 여성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소곤거린다.
“어머~ 여기 뭐야?” “특이하다. 귀여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 쇼핑을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여대생 김모(22)씨는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팬시점인줄 알았다. 밖에서 보기에도 아기자기하고 너무 귀여운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가게 안으로 들어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남자친구랑 와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서는 최병인(21)씨.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콘도매니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 만해도 성인용품샵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7월에 군대를 가는데 그 전에 여자친구와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들르게 됐다”고 전했다.
콘도매니아 홍대점, 한 커플이 사이좋게 콘돔을 고르고 있다.
“한 차례 콘도매니아 제품을 써보고 다시 찾게 됐다. 다양한 제품과 친절한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 개방된 성문화는 숨길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매장이 생겼다는 소식만 듣고도 와보고 싶었고 와서 보니 참 마음에 든다”고 여자친구 김모(29)씨가 말했다. 이어 남자친구 김모(28)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콘돔을 고른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생각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지금까지 감춰왔기 때문에 성을 어둡게 생각한 것이지 앞으로 이런 문화자체를 드러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밝은 성문화가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전했다.
이날 이대점과 홍대점에서 만난 이들은 자칫 민감한 부분일지도 모르는 질문에 어색해하지 않고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많이 달라진 성문화 세태에 기자도 많이 놀랐다. 대학가에서부터 성의식이 달라진다면 완전보수 우리나라 성문화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은 조짐이다.
오픈 후 1년, 달라진 점은?
콘도매니아를 방문하는 하루 이용자 수는 대략 20~30명, 이대점의 경우 위치의 특성상 대부분의 고객은 여성이다. 반면 홍대점은 다양한 계층이 방문한다고 전한다.
특이한 점은 남성들은 조심스럽게 매장에 들어서는 반면 여성들이 오히려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제품을 고르고 선택한다는 점이다. 남성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와서도 쭈뼛거리며 직원이 골라주는 것을 선택하지만 여성들은 일일이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한 뒤에 제품을 고른다는 것.
최수란(25, 여)씨는 “콘돔은 여성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착용은 남성이 하지만 여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니만큼 여성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점 측에서는 “인지도가 많이 달라졌다. ‘콘도매니아’라는 이름만 대도 알정도. 매출도 많이 늘어났고 콘돔에 대해 부끄러워하던 의식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성에 대한 개방적인 풍토를 조성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홍대점 김대경(28) 사장은 “오픈 당시에 학교 교장과 학부모들이 찾아와 항의를 하는 등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인지도면에서 많이 달라졌고 1년이 지나서 단골손님도 생겼다”며 “하지만 매출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의식은 보수적인 것 같다. 멀리보고 사업을 시작한 만큼 단 기간 내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두 점포 모두 인지도의 차이를 달라진 점으로 들었지만 이대점과 홍대점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대점과는 달리 홍대점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콘도매니아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콘도매니아 홍대점 건너편에서 만난 김모(26)씨는 “보기에 좋지 않다. 저렇게 드러내놓고 판매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변에 고등학생들도 많은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교적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많은 이대 앞에서는 콘돔전문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반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홍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2월 이대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비교적 긍정적인 시선으로 콘돔전문점을 조명한 반면 홍대점의 경우 오픈 당시 여러 가지 난항을 겪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추고 숨기려고만 했던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어찌됐든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성의식은 보수적인 것이 사실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 꼭 필요한 콘돔을 두고도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것을 보면 외국의 경우처럼성인용품이나 성관련 상품이 양지로 나오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콘도매니아 김 사장은 “개인적인 의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수적인 것 같다. 이 곳은 남녀가 함께 재미있게 쇼핑하고 서로의 취향도 알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공간이다. 일단 성의식이나 관념은 뒤로 하고 데이트 코스로 한번 들러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및 청소년 성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콘돔전문점의 등장으로 성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콘돔의 중요성은 그 이전부터 강조돼 왔으며 콘돔전문점이 들어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의식이 개방화 되고 있다는 판단은 금물이다. 또 성의식이 개방되어서 생길 수 있는 득과 실을 잘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부분의 상황만을 보고 우리나라 전체의 성의식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