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립스틱과 빨간 구두, 빨간 원피스까지 한고은이 이날 선보인 컨셉은 ‘레드 섹시’였다. 함께 드라마 촬영 중인 탤런트 강지환은 “한고은처럼 국내에서 빨간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여배우는 드물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한고은의 ‘레드 섹시’ 컨셉. 그가 이 같은 컨셉을 잡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고은이 ‘경성스캔들’에서 연기하게 될 역할이 ‘명기’이기 때문이다.
“가무에 소질 없어요”
“차송주는 황진이와 논개, 영화 ‘블라이드’에서 등장할만한 여전사를 합쳐 놓은 아주 재밌는 캐릭터예요. 대본을 보자마자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사실 1960년대를 그린 전작 ‘사랑과 야망’ 이후 현대극을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30년이나 더 앞서 1930년대로 돌아가고 말았네요.”
‘경성스캔들’은 전형적이고 고루한 시대극의 틀에서 벗어나 ‘퓨전 시대극’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1930년대 경성의 두 얼굴을 그렸다. 발칙하게도 이 드라마는 투쟁의 역사나 비장함만이 유일한 정서였던 그 시대를 가장 낭만적이고 가장 뻔뻔스러운 방법으로 풀어간다.
특히 한고은이 연기하게 될 차송주는 고급 관리들이나 드나드는 최고급 요릿집 명빈관의 유명 기생으로 치명적인 외모를 자랑한다. 게다가 차송주는 당대의 댄싱 퀸에 탑싱어까지 춤과 노래를 능가하는 카멜레온 같은 여성으로 ‘모던걸’의 진수를 보여 줄 예정이다. 실제로 한고은은 드라마를 통해 그 동안 갈고 닦은 스윙댄스를 선보이며 당대 유행했던 ‘희망가’를 부른다.
“가무에는 소질이 없는 편이라 춤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나 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쉬웠어요. 기회가 되면 스윙댄스는 계속 배우고 싶어요. 노래 역시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한고은은 이미 차송주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최근 4천만원에 호가하는 기모노를 입고 1930년대 경성 기생을 재현한 포스터 촬영 시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들에게 “차송주 역에 딱”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캐릭터 소화 “화장발”
“꼭 주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대본과 캐릭터를 보고 마음에 들면 주연과 상관없이 하고 싶어요. 차송주도 화려하게만 보이는 역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차송주는 대장부답고 털털한 친구거든요.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차송주가 독립투사로 일을 하게 될 거라 그 기대가 큽니다.”
솔직하고 털털한 인터뷰로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했던 한고은. 그러나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에는 냉정했다. 전작인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를 통해 연기 논란을 잠재울 만큼 훌륭한 연기를 펼쳤지만 그는 오히려 이 같은 호평에 대해 “과분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연기가 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인 것 같아요. 평가는 시청자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연기하기가 조금 편해진 것은 사실이에요. 대사가 길었던 전작에 비해 대사가 짧아 외우기가 수월하죠.”
한고은은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위해 “화장발 세운다”는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진지한 모습도 잃지 않았다.
“빨간 립스틱과 퍼머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전, 연기경력에 비해 다양한 역할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 탓에 배역에 한계를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진 이 색깔을 지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