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5년 5월21일. 재계에 큰 슬픔이 가득한 일이 발생했다. 32년간 자동차 외길 인생을 살아온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에회장의 타계가 그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장남인 정몽규 회장이 선장을 맡아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 사후 현산은 바람 잘 날 없다. <시사신문>에선 이에 따라 지난 319호부터 ‘고 정세영 명예회장 사후 2년 성적표’란 제하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번 호에선 뇌물공여와 조합원 불신임 사태로 ‘메가톤급 태풍’을 만난 ‘정몽규號’를 취재했다.
현산 ‘정몽규號’가 난파 위기에 빠졌다. 잇따른 사고와 편법분양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내몰리더니 이번엔 뇌물사건까지 터지면서 진퇴양난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현대건설의 소록도 연도교 붕괴사고와 특혜설, 편법분양 의혹<본보 319호?320호 참조>과 실적부진에 시달리면서 한차례 태풍을 거쳤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기자를 상대로 한 뇌물사건이 터졌고 이어 조합원으로부터 시공권에 대한 불신임을 당하는 수모도 겪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상황에 대해 ‘현산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업계 다른 일각에선 ‘현대의 유례없는 비상사태’라며 위기론의 목소리도 들린다.
기자에게 돈다발 선사
현산의 악재는 6월도 그냥 비껴가지 않았다. 지난 5일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에 하나의 수사의뢰가 접수됐다. 인터넷 뉴스통신사인 뉴시스 기자가 “현산 관계자가 취재기자에게 돈 다발을 전달했다”며 증거물과 함께 수사를 의뢰한 것.
당시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현산 간부 J씨는 4일 밤 11시30분께 춘천시 효자동에서 극구 사양하는 기자에게 케이크 상자를 전달했다. 케이크 상자를 확인해보니 1만원권 지폐 다발 5백만원 상당 및 케이크와 함께 채워져 있었다.
현재 경찰은 현산 관계자를 불러 정확한 돈 전달 경위와 이유 등을 조사 중에 있다. 또 증거물을 수거, 국과수에 의뢰한 상태다. 감식 결과 현산의 뇌물공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산은 또 한 번 망신살이 뻗치는 것은 자명한 일.
이번 사건은 뉴시스가 강원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일대 건설폐기물 불법매립과 관련, ‘건설페기물 무단적치’ 사실 등을 보도했다.
실제 뉴시스는 5월31일자 보도를 통해 ‘서울-춘천 고속도로 공사과정에서 강섬유가 함유된 숏크리트 부산물, 페 콘크리트, 부식 철근 등의 건설폐기물이 나와 상당량이 인근 홍천강으로 유입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비가 내릴 때마다 강알칼리 성분이 돌가루와 함께 수도권 상수원인 홍천강으로 유입되면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 하겠지만 일단 기자를 상대로 돈을 건넸다는 자체는 회사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를 반증하는 것”이라면서 “국내 6위 도급업체가 갈수록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시공사가 조합원에게 불신임?
하지만 문제는 현산의 악재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 일명 ‘뇌물공여’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차례 메가톤급 태풍이 불어 닥친 탓이다.
이번 태풍은 부산에서 날아들었다. 부산 북구 만덕2동 만덕주공재건축아파트 시공을 맡았던 현산을 상대로 조합원들이 시공권에 대한 불신임을 낸 것이다. 이곳은 부산 지역내 재건축 ‘빅5 단지’로 꼽히던 곳 중 하나. 그러나 현산은 시공권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은 채 이 단지에서 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실제 지난 10일, 부산 북구 금곡동 부산시교통문화연수원 대강당에 열린 조합원에서 총회가 열렸다. 안건은 ‘현대산업개발의 가계약 해제’. 이 자리에서 전체 조합원 1천2백46명 중 8백50명이 찬성해 ‘현대산업개발의 가계약 해제’ 안건이 가결됐다.
결국 조합원으로부터 시공사인 현산이 시공권에 대한 불신임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불신임의 원인 중 가장 큰 핵심은 무상지분율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 측에 따르면 당초 2003년 10월 현산과 맺은 가계약서 상에 무상지분율 116%가 보장되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정작 본 계약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 안이 제시되지 않아 조합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다. 이주 조합원들이 과다한 금융비용을 부담한 것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전해졌다. 본계약 체결과 관리처분 총회를 거치지 않고 조합원들을 조기 이주시켜 조합원들이 금융비용을 부담했다는 게 조합원 분노의 핵심 골자다.
한 조합원은 “현재 이곳은 조합원 중 90% 이상이 이주한 상태”라며 “빈 아파의 공동화가 심화돼 청소년 문제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가 하면 지역 상권도 침체되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현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현산 한 관계자는 뇌물공여에 대한 입장 질문에 “우리도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면서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결과가 나와봐야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또 부산 조합원 불신임과 관련해선 “이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면서 “만덕 주공의 문제는 아마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하며 말문을 닫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산의 잇따른 악재는 정몽규 회장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같은 여파가 혹시 다른 업체에도 미치지 않을까 현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