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재산 어떻게 쌓았길래…아직도 의혹 넘친다
박근혜 사생활 문제 꺼내…최태민의 그림자는 길었다
李-朴 ‘서로 죽이기’…경선 치루기 전 공멸 가능성 확신
어부지리 범여권 “물고 뜯다 동시추락하면 우리야 좋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이게 됐다. 이들의 경쟁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검증론’. ‘경선’이라는 단어보다 더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검증’이 두 후보를 공멸로 이끄는 ‘덫’이 돼 버렸다.
이명박 재산문제 ‘활활’
한나라당의 두 대선 후보가 검증론의 벽에 부딪힌 건 한나라당이 한차례 큰 내홍을 겪고 ‘제대로 된 후보 선출을 위한 검증’을 시작한다고 밝힌 이후부터이다. 5월28일 ‘후보검증위원회’가 발족됐고 8월까지 2달여의 검증 레이스가 펼쳐지게 됐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일전’을 벌이던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품위 있는’ 검증은 5일로 막을 내렸다. 이날을 기점으로 인터넷 신문과 유력 일간지에서 이 전 시장이 8천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기사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박 전 대표측 곽성문, 최경환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재산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곽 의원은 “이 전 시장 일가의 재산이 8천억원이 넘고 이 전 시장이 일부 재산을 친·인척 명의로 숨겨놨다는 얘기가 시중에 있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의원은 모 주간지 기사를 기자들에게 배포하며 김경준이 운영하던 투자회사 BBK와 이 전 시장이 연루됐는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최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이 BBK의 사실상 공동대표였다며 BBK의 2000년 정관 발기인 명단에 이 전 시장이 올라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전 시장측은 “근거 없는 ‘카더라’ 수준의 음해”라며 반발했다. 그리고 이 전 시장이 직접 나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BBK는 저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 회사 주식을 한주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전 대표를 향해 “무책임한 폭로를 일삼는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정권교체를 막는 해당행위”라며 향후 검찰 고발 등으로 강하게 맞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들의 공방이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7일 한나라당은 급히 ‘X파일’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을 불러들였다. 또 이 자리에서 이명박측 정두언 의원과 박근혜측 최경환, 곽성문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양측에게 ‘경고’를 날렸다.
박근혜 ‘사생활’ 가볍게 밟고
박근혜 전 대표도 ‘의혹 폭탄’을 맞았다. 정수장학회 횡령·탈세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의 차남 김영우씨는 12일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에 설치된 대선후보 검증위원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검증위에 박 전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 재임시절 업무상 횡령, 탈세, 건강보험료 미납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담은 검증요청서를 제출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물러나면서 후임으로 유신시절 자신의 비서로 근무했던 최필립씨를 지명했다”며 “영남대, 육영재단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최태민 목사도 박 전 대표의 측근”이라고 측근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대표는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 의혹을 기점으로 이 전 시장의 X파일 논란에 잊혀졌던 박 전 대표의 X파일 CD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CD에 포함된 내용은 모두 고 최태민 목사의 비리의혹과 박 전 대표와의 관련성이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후보가 되면 ‘최태민 한방에 날아갈 것’”이라고 말할 만큼 박근혜 X파일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최태민 목사. 그는 박 전 대표의 후견인을 자처한 인물로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월간 WIN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가려고 해야 말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 전 대표와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이런 문제, 저런 문제가 있다고 의구심이 얘기되고 있는데 캠프끼리는 싸울 의미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국민이 어떻게 보고 충분히 해명됐다고 보느냐”라며 빠져나갔다. 이어 “(검증의) 모든 과정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드리고 판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캠프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하는 게 정도(正道)이고, 그래야 국민도 안심하고 검증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혈전’이라는 말에 잠시 주춤했을 때는 이미 공방은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게 돼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범여권 주자들까지 ‘묻지마’ 폭로전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강대 특강,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 등에서 연일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발끈할만한 발언을 했다. 결국 이들의 3파전은 고소와 맞고소로 이어지고 있다.
범여권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박영선, 송영길 의원이 이 전 시장의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12일엔 김혁규 의원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꺼냈다. 잦은 주소 이전에 대한 해명을 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대선에서 제기될 만한 의혹까지 다 쏟아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혹독한 6월을 보내고 있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지난 14일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7주년 기념 만찬’에 총집결한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간간히 한나라당 후보들의 도덕성 의혹을 화제로 삼았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선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되는 것 같다”고 민주당 박상천 대표에게 말했다. 박 대표가 “박 전 대표가 더 쉽다. 게임이 쉬워진다”고 말하자 이 전 총리는 “우리로서는 그렇다”고 받았다. 이 전 총리는 “이 전 시장은 약점이 너무 많아 낙마할 것 같다. BBK의혹, 옥천 땅을 처남에게 넘긴 것이 있고, 김혁규 의원이 제기한 거주지 이전 문제도 있다”고 한나라당 두 후보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서로 물고 늘어지며 ‘상대방 죽이기’에 몰두하는 동안 그들을 둘러싼 ‘공멸작전’은 진행되고 있었다”며 이들의 현 상황을 “노 대통령이 놓은 ‘미끼’를 물고 범여권 주자들의 모진 매를 맞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사생활 폭로에 대한 반대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대선의 한 자락을 잡지도 못하고 낙마론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고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싸잡아 질책했다.
국민은 ‘이유 있는 의혹’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아 있다. 굳어져 가고 있는 국민의 인식때문이다.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검증공세에서 나타난 비리의혹을 접하게 되면 신뢰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52.0%가 “제기된 의혹이 근거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법원의 유죄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비리 의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36.6%에 그쳤다.
현재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고 비리 의혹에 근거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특히 지지정당이나 지지후보가 없는 유권자들의 경우 “비리 의혹이 근거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났다.
‘아니면 말고’나 ‘묻지마’식 폭로가 국민들에게 분명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결과는 검증공세가 잠재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지지층의 유입마저 차단, 공세를 받는 후보 입장에서는 기존 지지층의 이탈과 함께, 장기적으로 지지율 하락의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두 후보가 공세의 늪에서 빠져나올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한나라당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두 후보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