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노래하는 것이 좋았다는 주원영씨. 가평에서 나고 자란 주씨는 어린시절부터 ‘노래잘하는 아이’로 통했다. 책보다는 라디오를 끼고 다니며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자랑에 나갔다하면 상을 안고 돌아 왔고 자연스럽게 가수의 꿈을 키웠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루의 시작은 물론 마무리도 노래, 내 인생에 노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 동안 어떻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살았을까 싶을 만큼 기자가 만난 주씨는 초지일관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주씨가 소속된 ‘이웃사랑연예인봉사회(회장: 박의열)’는 일년이면 70회 이상 봉사 공연을 마련한다. 물론 주씨가 이 70회가 넘는 공연 모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씨는 스케줄에 지장이 없는 한 많은 공연에 참여하고 싶은 욕심쟁이다.
개런티도 없고 보수도 없다. “단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와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씨의 가수 인생은 10여 년 전 구로복지회관에서 시작됐다. 지인의 소개로 봉사활동을 가게 된 것. 주씨는 “그때만 해도 가수라는 칭호보다는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허락 했지만 막상 관객들 앞에 서니 생각보다 많이 떨렸다”라고 전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친 주씨는 당시의 희열을 잊을 수 없었다.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앵콜을 외쳤다. 이 모습은 훗날 ‘대한가수협회(회장: 남진)’에 이름석자를 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동안은 가수라는 타이틀은 포기한 채 노래연습에만 매달렸다. 인천, 서울 등지를 돌며 스승을 찾았고, 나현 선생과 김정만 선생을 통해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복지관, 구치소, 양로원, 요양원 등지를 돌며 무료 봉사 공연을 시작했다.
곱게 차려입은 드레스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제2의 주현미’라고 불리며 꿈을 위해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은 결과 주씨는 2004년 드디어 ‘대한가수협회’에 가수 등록을 하게 됐다. 주씨는 “물론 가수등록을 하기 전에도 노래는 내 생활의 일부였다. 하지만 가수 등록 후 자부심과 사명감이 생겼고 그로인해 공연의 질도 한 차원 높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가족과 노래의 상관관계
주씨가 처음 공식 대회에 나가서 수상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당시만 해도 ‘가수’라는 직업은 ‘딴따라’라고 해서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주씨의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주씨의 수상 소식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며 마을 잔치를 벌인 것. 주씨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때 바로 가수의 꿈을 실현했더라면 지금쯤이면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리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들어 가수의 꿈은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주씨가 노인 봉사공연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더 들려주지 못했던 사랑의 노래를 봉사를 통해 풀어낸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주씨에게는 아버지만큼이나 열혈 팬인 두 딸이 생겼다. 코디네이터 노릇을 자처하는 큰 딸(23)과 엄마의 노래 연습을 위해 손수 MP3에 노래를 넣어주는 작은 딸(21).
주씨는 “잦은 공연과 봉사활동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도 항상 사랑으로 이해하고 팬으로서 응원해준 두 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개런티, 무보수로 봉사 공연을 하다보니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주씨의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며 주씨를 다독였다.
주씨는 이런 가족들의 사랑과 응원 덕분에 지금까지 걱정 없이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주씨의 어머니는 아직 한번도 주씨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 좀 더 큰 무대, 멋진 무대의 공연에 어머니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주씨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
주씨는 “올해 가을에는 음반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미 좋은 작곡가들에게 곡을 몇 곡 받아놨고 녹음도 시작했다. 내년쯤이면 어머니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는 나의 꿈과 희망
주씨는 노인정과 구치소 등지의 봉사공연을 할 때면 눈물이 핑 도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야 인생에 노래가 녹아들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웃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주씨는 관객들의 자신의 노래에서 꿈과 희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주씨의 가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를 넘어섰다. 봉사는 계속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이름 석자 알리는 것이 목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조금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절반의 꿈은 이미 이룬 셈이다.
“살아있는 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목청이 허락하는 한 나는 계속 노래할 것이다. 노래가 좋고 봉사가 좋아 이 일을 시작했다. 가수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좋고 알아봐주는 팬이 많은 것도 좋지만 ‘무명가수’라는 타이틀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가수가 아니었을 때도 나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꿈은 이미 이뤄졌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도 노래, 바로 노래뿐이다”고 말하는 주씨의 두 눈에 또 하나의 희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