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개혁 4대 원칙' 수립으로 유교의 현대화에 나선 최근덕 성균관장
'유교'라는, 종종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교단 내에서, 최근 제27대 성균관장으로 재선출된 최근덕(崔根德, 72) 관장은 유교의 비현대적 부분, 불합리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개혁파'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유학사상의 이론적 체계화와 현대화에 힘을 기울여온 최근덕 관장은 국제유학연합회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유학의 '국제교류'에 앞장 선 인물로도 알려져 있는데, 1994∼1997년 처음으로 성균관장을 맡은 이래 유교개혁을 역동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수구세력과 갈등을 겪기도 하더니, 지난 5월 7일, 다시 성균관장직을 수행하게 되면서, 그는 '유교개혁 4대 원칙'을 통해 21세기 유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여 많은 주목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에 본지는 고희를 넘겼음에도 여전히 활력이 넘치는, '유교는 변화의 철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전에 없이 역동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최근덕 성균관장을 만나, 그가 내건 '유교개혁'의 의미와 그가 바라보는 한국사회 전반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먼저, 제27대 성균관장으로 재선출되신 일, 축하드리고 또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덕 관장님은 '유교'에 대해 우리가 지닌 고정관념과 달리, 사회/정치적인 이슈들에도 정확히 반응/대처하고, 또 이에 대한 언급을 꺼려하지 않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정치/사회적 언급을 꺼려왔던 많은 종교단체의 입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데, 종교의 사회/정치 참여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계십니까?
본래 '유교'란 종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윤리체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윤리체계는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서, 남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덕목 아래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평안만으로는 부족하고, 남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쳐야만 한다는 주장이며, 따라서 유학자의 정치·사회 참여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정자에 앉아 글이나 읽는 이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에 속했죠. 앞으로도 유교는 동시대인을 사랑하고, 후손들을 위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꾸준히 이어나갈 것입니다.
최관장님이 최근 유교를 '변화의 철학'이라 강조하시며 새롭게 내건 '유교개혁 4대 원칙'에 종교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까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유교가 현대사회와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보여준 가장 적극적인 자세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 이 '유교개혁 4대 원칙'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유교개혁 4대 원칙'은 '유교의 공맹화', '유교의 한국화', '유교의 종교화', 유교의 대중화', 이 네 가지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유교의 공맹화(孔孟)화'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리 유교가 공자맹자 시대의 유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공자맹자 시대의 유교는 지극히 순수하고 인간적인 철학체계였습니다. 그러나 유교가 정치세력과 손잡으면서 그 순수한 체계에 때가 타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자맹자 시대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유교의 한국화'의 문제는 고무적일 뿐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유교 교육 기관이 생긴 것이 약 1600년 전, AD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의 일입니다. 당시에 세워진 '태학'은 곧 '대학'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교육기관이었는데, 이렇듯 이른 시기부터 '대학'의 형태로써 유교를 가르치는 기관이 있었으니만치, 이미 우리 유교는 '한국의 유교'라 불리워져 마땅합니다. 따라서 우리 유교가 한민족의 윤리 도덕 체계로써 기능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유교의 종교화'의 경우, 먼저 '종교'라는 단어가 동양 언어 체계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는 점부터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는 'religion'이라는 영어 단어를 일본학자들이 번역하면서 탄생된 단어인데, 사실 동양에서는 별달리 구분지을 의향도 이유도 없는 단어였습니다. 보수적 신학자들의 경우, '종교'의 성립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조물주'의 존재를 꼽고 있습니다. '조물주'이자 '절대자'적 존재가 있고, '내세관'을 성립시키는 것이 서구 종교의 특색적인 개념 설정인데, 반면 진보적 신학자들은 이런 서구중심 종교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윤리적 신념을 구축시켜 주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면 충분히 종교로써 기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윤리적 신념', '철학적 신념' 체계로써의 유교는, '조물주'가 없고, '내세관'도 없으며, 심지어 '기복적인 성향'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정적인 서구적 개념에서 탈피한다면 유교는 충분히 '종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며, 또 어쩌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생의 구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유교의 대중화'는, 어찌보면 현재 유교의 가장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유교'가 절대 케케묵은 종교가 아님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깊이 배어있는 각종 유교적 의식/예식 체계에서 이런 편견이 발생한 듯도 싶은데, 실제로 '제사' 때에 읽는 축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란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근래에는 유교의 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중화' 방향을 열심히 모색하는 중이며, 일례로, 어렵게만 여겼던 '대학', '논어', '중용' 등을 알기 쉽게 우리 말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대중화'란 곧 '현대화'와도 맞닿는 개념이기에 상당히 중요하다 여기고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역시 최관장님께 '호주제 폐지' 문제를 여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관장님은 어느 정도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호주제 폐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시는지요?
'호주제'란 사실상 1990년 1월 13일, 시행 개정안 민법에 의해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호주를 '상속' 형태에서 '승계' 형태로 바꾸면서 많은 폐단들이 제어되었고,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이미 실제적인 해결책이 마련된 상황에서 굳이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고, 거의 유명무실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몇몇 언론보도를 통해 제가 '폐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재혼한 여성이 키우는 자녀가 일단 친부성을 따른 뒤 20세가 된 후에 친부와 양부 성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고, 저는 다만 한국인이 20세가 넘으면 법률행위 능력을 소유하게 되므로, 이 때가 되어서 당사자가 굳이 양부의 성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법률적으로 알아서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우리 겨레공동체의 기본 구조인 '家'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家'가 없어지면 민족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입니다. 서구의 많은 문화인류학자들도 우리의 미풍양속 중에서 특히 굳건한 가족제도를 들고 있으며, 미국 행정부의 정책수립에도 깊숙이 관여한 사회·역사·철학자 슬레진져는 "어느 한 민족을 확실하고 신속하게 말살시키려면, 그들을 '전통'으로부터 단절시키면 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호주제 폐지'와 관련된 현재 우리 사회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우리 민족을 지구에서 말살시키려는 집단의 부추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지나친 생각이겠지요.
'호주제 폐지' 등 사회이슈에 따라서는 일부 여성단체와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고 보면 최관장님은 유교계 내에서는 줄곧 양성(兩性)평등을 주장해왔고 그에 대한 연구논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관장이 된 후 맨 처음 시작한 것이 유교의 국제교류였고 그 다음이 성균관과 향교에 여성을 적극 참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국제교류는 96년도에 북경에서 전세계 16개국이 모여 국제유학연합(ICA)을 결성해 제가 초대이사장이 됨으로써 활동이 시작되었고, 여성참여는 성균관 임원활동에 여성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그 폭이 넓어지고 춘추 제향등에 제관으로 참여하는 길도 열었지요. 그리고 향교 인사 때도 적극 개입했습니다. 가령 향교를 운영하는 주체가 장의(掌議)인데, 그 장의를 각 향교에서 추천해오면 관장이 임명을 합니다. 임명과정에서 여성장의가 들어가도록 권유하는 것이지요. 점진적으로 여성의 참여를 늘려나감으로써 명실공히 양성평등을 이룩하고 양성조화를 도모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사회에도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정부에 여성부를 설치하고 국회의원 전국구에 직능과는 관계없이 여성을 반으로 배치하는 등 표를 의식한 과잉배려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호나 육성은 '스스로 설' 자리를 마련하고 뿌리내려 자랄 수 있는 풍토를 살찌워 주는 선에서 그쳐야지, 떡잎도 나기 전에 줄기를 잡아당긴다면 오히려 뿌리가 뽑혀서 시들게 되는 겁니다. 요즘 여권운동을 한다는 일부여성들을 보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분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해있는 '이혼'의 급증이나 '저출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치부하고 있겠지요. 유교의 부부유별(夫婦有別)이나 남녀유별(男女有別)할 때 별(別)은 차별이 아닙니다. 분별(分別)입니다. 분별 별 자(字) 아닙니까. 남자와 여자는 선천적으로 분별이 있습니다. 생리적으로 그렇고 신체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나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주제 폐지' 문제 이외에도, 유학자로서 현재 왕성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천도', 즉 '신행정수도' 문제에 대해서도 확연한 시각과 주장이 있으실 듯합니다.
천도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런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 일례로 신라시대 때 왜구의 침략을 받기 쉬운 경주에서 자연환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안전한 대구로 수도를 옮기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건만 결국 이루지 못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민심'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더욱 예민한 것입니다.
물론 서울의 인구과밀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집중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행정부의 분산은 바람직한 면을 분명히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느 한 지역을 '천도'해 모조리 옮기려는 의도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를테면, 정통부는 정통부가 들어서기에 가장 좋은 지역에 들어서고, 농수산부나 문화관광부 역시 비슷한 식으로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들어서는 '분산형 건설'이 생각되어질 법도 한데, 왜 이런 발상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3부는 서울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는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하지만, 3부가 모조리 옮겨갈 경우 이를 '천도' 이외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모든 것은, 앞서 언급한, '법이 사회풍조를 앞질러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발상이 정부라는 절대권력에 의해 행해져서는 안 됩니다.
시사적인 문제에서 다시 종교적인 문제로 질문을 옮기겠습니다. 20세기 들어 유교의 대중적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는 서구 종교가 벌인 가시적인 활동이 빈약한 탓도 있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각종 사회복지 활동과 교육사업 등을 예로 들 수 있을텐데요, 이런 면이 부족한 대신, 유교는 환경윤리와 같은 그닥 가시적이지 않은 범위에서의 사회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구 종교는 선교주의, 개종주의를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혀 다른 사고와 정서, 종교체계를 지니고 있는 나라에 침투하여, 그 나라의 국민들을 '개종'시키는 것에 큰 역점을 두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서구 종교가 택하고 있는 '선교전략'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봉사와 교육 활동입니다. 물론 적십자 정신의 도입이라던가, 근세사에 우리가 불행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시에 서구 종교가 각종 사회복지 활동과 교육 사업으로 우리를 돕고, 서구문명의 이점을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이 기본적으로 '선교전략'의 일부였다는 점을 부정하긴 힘들 것입니다.
반면 유교의 경우, '선교활동' 자체가 의미가 없었기에 거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유교 정신이란 좁게는 가정에서부터 넓게는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어가는 것이었고, 따라서 특별히 전략적으로 이를 퍼뜨려나갈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이렇듯, 유교와 서구종교는 '포교'의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포교' 과정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최근 들어서는 불교계도 사회복지 활동, 교육 사업 등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어 같은 동양 종교의 영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유교의 경우는 또 다릅니다. 유교는 불교나 기독교와 달리, 내세관을 지니지 않고 기복신앙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기에, 익숙한 종교의 형식을 통해 줄 수 있는 특유의 '정신적 대가'가 없고, 따라서 '기복'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헌금' 형식의 활동자금 축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요소가 깊이 투입되는 여타 활동과 달리, 명확한 의지와 방향성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환경활동'의 경우라면 유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현재 '환경 파수꾼'으로서 유교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끝으로, 현대사회의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맞이한 유교의 입장과, 이런 정서와 사고의 총체적 난국에 대해 유교가 펼쳐나갈 수 있는 미래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 중 대다수가 '개인주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 간의, 민족 간의, 국가 간의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고, 그 악영향은 점차 복합적으로 변모하여, 이를 바로잡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교는 이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너와 나'라는 기본 정신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근본으로 삼는 '인(仁)'은 '사람 인(人)'자에 '두 이(二)'자가 만나 이루어진 글자로써, 두 사람, '너와 나' 사이에 이룩되는 인간관계를 가리킵니다. '나'로 그치지 않고, '나'와 '너'가 다르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서로를 돕고 이해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언급한 '오륜' 역시 '부자(父子)' 간의, '군신(君臣)' 간의, '부부(夫婦)' 간의, '장유(長幼)' 간의, 그리고 '붕우(朋友)' 간의 나아갈 바를 지적하고 있으며, 역시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철학체계입니다.
저는 '나와 너'라는 유교의 기본개념이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으며, 미래의 윤리체계로써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취재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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