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를 뒤흔드는 '힘', 제리 브럭하이머
헐리우드를 뒤흔드는 '힘', 제리 브럭하이머
  • 이문원
  • 승인 2004.07.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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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 간 헐리우드 상업영화 대표하는 브랜드 네임이 된 제작자 제리 브럭하이머의 영화 세계를 살펴
'영화 포스터'라는 것을 한 번 잘 살펴보자. 배우의 이름이 제일 위에 떠있고, 그 아래로 큰 글씨의 제목, 그리고 감독의 브랜드 네임이 중요할 시에는 제목의 위, 혹은 아래로 작게 'a XXX film'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그러나, 영화 포스터에 '제작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를 본 일이 있는가? 이런 독특한, 아마도 거의 유일무이한 케이스가 제리 브럭하이머에게는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다.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컬페퍼 캐틀 컴퍼니>('72) 이래 32년간, 제리 브럭하이머는 헐리우드를 완전 장악하며 현재까지 무려 133억 달러(!)를 영화와 부대사업을 통해 벌어들였고,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영화의 극장 흥행수익만 해도 9억 8790만 달러에 이르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돈 심슨'과의 협력체계로, 이후로는 독자적으로 상업영화 메가히트작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상업영화계의 최대거물' 제리 브럭하이머. 그의 지난 작품들을 통해, 이 놀라운 성공담의 비결을 알아보기로 하자 조용한 단독제작의 시기, 가능성의 확보 제리 브럭하이머의 초기 커리어는 그닥 탐탁치 않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에 '사진'에 푹 빠져 고향에서 광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곧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스물일곱의 나이에 딕 리챠즈 감독의 고리타분한 웨스턴 <컬페퍼 캐틀 컴퍼니>의 공동제작자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커리어는 제자리에 걸음에 멈춰서는 듯했다.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잡지 못한 채 죽 딕 리챠즈 감독의 영화만 제작하게 되었고, <잘 있거라, 내사랑>('75), <행진이냐, 죽음이냐>('77) 등의 평작/졸작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제 서서히 헐리우드 커리어를 접고, 다시 광고계로 복귀해야 할 시점에, 딕 리챠즈와의 공동작업에서 벗어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80)가 등장하게 된다. ■ 아메리칸 지골로 (1980) 감독: 폴 슈레이더 출연: 리차드 기어, 로렌 허튼, 헥토르 엘리존도 제리 브럭하이머 최초의 히트작이자, <택시 드라이버>의 전설적인 각본가 폴 슈레이더의 첫 번째 상업적 성공작 -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 이기도 하다. '남창'을 소재로 흐릿한 미스테리 스릴러 플롯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리차드 기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스-아이콘의 커리어를 처음 올려세운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그의 역할은 너무나도 인상적인 것이어서, 이후 <사관과 신사>, <귀여운 여인> 등, <아메리칸 지골로>를 능가하는 히트작에 출연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여전히 '뉴욕 상류층 상대 남창'의 이미지로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 주제곡인 '블론디'의 'Call Me'는 대히트곡이 되어 각종 음반 챠트를 휩쓸었으며, 훗날 브럭하이머 '수입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영화 사운드트랙'의 개념은 바로 이 영화의 경우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돈 심슨'과의 만남, 막무가내 상업영화 콤비의 탄생 <아메리칸 지골로> 이후, 제리 브럭하이머의 커리어는 '훗날 유명인이 될' 감독과는 만남과도 같았다. <롤링 썬더>('77)로 주목을 받은 존 플린 감독에게 70년대에 유행하던 '자경주의' 영웅담을 맡긴 <도전>('80)은 완전히 무시당했지만, 존 플린 훗날 <베스트셀러>('87), <탈옥>('89), <복수무정 2>('91) 등의 대형 상업영화를 연출하게 되었고, 이듬해의 <도둑>('81)은 훗날 <라스트 모히칸>('92), <히트>('95), <인사이더>('99), <알리>('01)를 탄생시킨 마이클 맨의 초기 작품이었다. 또, 82년에 제작한 <사랑에 빠진 젊은 의사들>은 <비치스>('88), <프리티 우먼>('90), <프랭키와 쟈니>('91), <런어웨이 브라이드>('99) 등을 감독의 게리 마샬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었다. 각 영화들은 모두 신통찮은 반응 - <사랑에 빠진 젊은 의사들> 정도가 제작비를 거둬들인 경우이다 - 을 얻는 데 그쳤지만, 적어도 브럭하이머에게 '감독을 고르는 눈' 정도는 있다는 예시가 되고 있는데, 1982년, 폴 슈레이더와의 두 번째 작품 <캣 피플>이 엄청난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하자, 브럭하이머는 학창 시절 룸메이트였던 돈 심슨과 공동제작 체제를 시도하게 된다. 돈 심슨과 제리 브럭하이머는 이상적인 콤비 시스템이었다. 외향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닌 돈 심슨과 내성적이며 제작상의 디테일을 담당하는 제리 브럭하이머는 '한 명의 완벽한 제작자를 둘러 나눠놓은'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들이 만들어낸 '뻔뻔스런 상업영화'의 서막은 에이드리안 라인 감독의 출세작 <플래시댄스>('83)로 시작되었다. ■ 플래시댄스 (1983) 감독: 에이드리언 라인 출연: 제니퍼 빌즈, 마이클 누리, 릴리아 스칼라 더 말할 것도 없이, 헐리우드의 '사운드트랙' 열풍을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비록 영화 내적인 구성요소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각본은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이 저열하지만, 주연을 맡은 제니퍼 빌즈의 잘 빠진 몸매와 광적인 춤, 빠른 비트로 이루어진 노래들은 청소년층을 열광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가 이 영화에서 시도한 선정주의적 방향성은 훗날 <코요테 어글리>('00)라는, 정말이지 '어글리'한 영화에서 재탕된다. ■ 비버리 힐즈 캅 (1984) 감독: 마틴 브레스트 출연: 에디 머피, 저지 라인홀드, 존 애쉬턴 1980년대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메가톤급 히트작. 무려 2억 3400만 달러를 벌어들인 - 이 돈이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되었을 때엔 얼마일지 상상도 안 간다 - 파라마운트사의 '효자'였으며, '파라마운트'가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를 '완벽하게' 신뢰하게끔 한 계기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 떠오르던 스타인 에디 머피를 미국 영화계의 중심에 세워놓인 영화이기도 한데, 역시 사운드트랙에 온 힘을 기울여 주제곡 'Heat is On'은 물론, 연주곡 'Axel F.'까지도 챠트 상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폭력, 코미디, 토플리스의 여성 등, 훗날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저열한 요소들이 종합된 영화로써, 하나의 '흥행 견본' 역할을 1980년대 내내 꾸준히 이행했다. ■ 탑 건 (1986) 감독: 토니 스코트 출연: 톰 크루즈, 켈리 맥길리스, 발 킬머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의 새로운 흥행 모델이 되었던 영화가 바로 <탑 건>이었다. 사실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고, 주연 배우 둘은 전혀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지 못하지만, 이른바 '청소년용 드라마'라는 장르 - 존 휴즈와는 또다른 의미로 말이다 - 의 전형으로 활약한 영화이며, 영화의 공개 당시 돈 심슨은 뻔뻔스럽게도 "청소년을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북미대륙에서만 무려 1억 77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청소년의 미공군 입대율을 비약적으로 높인 '신 프로퍼갠다' 영화의 시초이다.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는 이 영화를 통해 아무리 고리타분한 소재더라도 감각적인 화면 - 감독 토니 스코트는 CF 출신이다 - 과 그럴싸한 사운드트랙으로 포장해 놓으면 얼마든지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하강과 부활, 그 극적인 드라마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는 1987년작 <비버리 힐즈 캅 2> 이후 3년 간 휴식기간 - 그럴 만했다 -을 갖고는, 1990년, <탑 건>의 토니 스코트와 톰 크루즈를 다시 불러 '카레이서판 <탑 건>'인 <폭풍의 질주>를 제작했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췄다고 여겨졌던 영화이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지나치게 뻔뻔스런 상업영화'라는 평가가 쏟아져나왔고, 흥행수익도 <탑 건>의 절반 수준이 채 안 됐다. '이미 한물 가버린 팀'이라는 평가 아래 '파라마운트'사는 이들 콤비의 제작사인 'Don Simpson-Jerry Bruckheimer Films'와의 계약을 파기했고, 이후 이들은 4년간 '실직자'의 신세로 전락했다. 1994년에 발표한 마저도 흥행에 대참패하자 이들은 엄청난 재정난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이들이 다시 시동을 걸어 1995년에 내놓은 3편의 영화 - '한물 갔다'고 평가된 제작자들에게 어떻게 이런 기회가 닿았는지 알 수 없다 - 가 차례로 흥행에 성공하자, 이들은 '영웅의 부활'이자 '악몽의 재래'로써, 칭송과 우려를 한 몸에 안았다. ■ 나쁜 녀석들 (1995)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마틴 로렌스, 윌 스미스, 테아 레오니 첫 3일 간 15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의 부활을 알린 영화. 역시 CF계에서 활약하던 마이클 베이를 영화계에 입문시킨 케이스이며, 놀라우리만치 1980년대 그들의 성향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구태의연한 영화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의 예시와도 같은 일일텐데, 적어도 마틴 로렌스의 상업성을 완성시키고, 윌 스미스라는 걸출한 인재를 상업영화에 띄워올렸으며, 결정적으로 마이클 베이라는 상업영화 괴물을 탄생시킨 영화 정도의 의미는 있을 듯 싶다. ■ 크림슨 타이드 (1995) 감독: 토니 스코트 출연: 진 핵크먼, 덴젤 워싱턴, 매트 크레이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 콤비와 '월트 디즈니'사와의 계약 관계 - 1980년대에 그들이 '파라마운트'사와 맺은 것과 유사한 '전속계약'이라 보면 된다 - 에서 탄생된 첫 작품. <크림슨 타이드>는 이런 '사업상의 의미' 외에도, 당시까지 등장했던 이들 콤비의 영화들 중 가장 비평적으로 성공한 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다.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는 1990년대에도 1980년대식의 '단순무식 액션영화'나 '과잉감정 청춘 드라마'가 더 이상 먹혀들어 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듯 싶으며, 각본 어레인지 과정에서 <펄프 픽션>의 영웅 쿠엔틴 타란티노를 부르는 등, 신세대 취향을 파악하고, 영합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 위험한 아이들 (1995) 감독: 존 N. 스미스 출연: 미셸 파이퍼, 조지 던자, 커트니 B. 밴스 1990년대 들어 돈 심슨-제리 브럭하이머가 새롭게 깨달은 상업영화 장르가 바로 '교훈적 청소년 영화'이다. 인종갈등, 슬럼가 폭력이 예사롭게 벌어지는 학급 현실을 바탕에 깔고, 이 영화는 우스꽝스럽게도 <선생님께 사랑을> 류의 열혈교사물의 성격을 끼워넣어 초등학생들이나 감격할 만한 '감동물'을 만들어냈다. '뉴스위크'지의 데이비드 앤슨으로 하여금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야 말로 위험한 사람들이다"라는 평가를 내리게끔 한 영화이며, 이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브럭하이머는 훗날 <리멤버 타이탄>(2000)이라는, 또다른 '교훈성' - 비슷한 '인종갈등'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된다 - 고등학교 풋볼 영화를 성공시키게 된다. 파트너의 죽음으로 인한 홀로서기, 그리고 '신화'의 시작 원래 기분파이기도 했던 돈 심슨은 건강 악화로 인해 1996년 1월, 그만 5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되고, 제리 브럭하이머만 홀로 남아 스튜디오를 꾸려가게 되었다. 일부에선 브럭하이머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돈 심슨이 지니고 있던 카리스마와 '영화 하나를 후딱 기획해내는' 제작상의 아이디어를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가 그만 영화제작일을 접던가, 아니면 돈 심슨과 유사한 다른 동료제작자를 구해야만 할 것이라 예견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섯부른 것으로 드러났고, 브럭하이머는 돈 심슨과 함께 기획한 <더-록>('96) 이후에도 <콘 에어>('97), <아마게돈>('98), <에네미 오브 스테이트>('98)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켰고, 돈 심슨과의 공동작업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기획이었던 <블랙 호크 다운>('01), <캐리비안의 해적>('03)과 같은 영화들도 제작하여, 제작영역의 확장과 함께 엄청난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거둬내기도 했다. 또, 영화제작 이외에도 'TV'에까지 진출한 브럭하이머는 "C.S.I. 과학수사대"를 대형 히트시키며 '영화'와 'TV' 양대 매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유일한 제작자가 되었는데, 이런 면에서 제리 브럭하이머는 조엘 실버와 같은 '동종으로 인식되던' 여타 상업영화 제작자와는 강한 차별성을 두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 블랙 호크 다운 (2001) 감독: 리들리 스코트 출연: 조쉬 하트넷, 유언 맥그리거, 제이슨 아이잭스 이런 엄청난 규모 - 약 9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의 실험적인 반전영화가 탄생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이 영화를 다른 이도 아닌 제리 브럭하이머가 제작했다는 사실은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해, '상업영화가 아니다'. 영화 전체가 뚜렷한 중심 줄거리 없이 소말리아 전투의 양상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형식이며, 별다른 유머도, 강한 '휴머니즘'성 드라마타이즈도 없이 삭막하고 건조한 스타일로 연출되어 있다. 한 가지 더 놀랄만한 사실은, 브럭하이머는 이런 영화를 쥐고서도 흥행에 당당히 성공해냈다는 점이다! 이 영화로 인해, 브럭하이머는 사상 최초로 'AFI 상' 후보에 올랐으며, 돈 심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성향의 제작자임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 캐리비안의 해적 (2003)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쟈니 뎁, 올랜도 블룸, 케이라 나이틀리 이 역시 브럭하이머의 모험적인 시도였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노하우'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괴한 종류의 해적무협담을 만들어낸 케이스 - 해적판 <겟 쇼티>라 보면 된다 - 이며, 비평가들조차도 영화의 독창적인 무드와 구성을 칭찬하면서도 상업성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캐리비안의 해적>은 미국 내에서만 3억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가 돈 심슨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그의 최고 히트작이 되었고, '컬트 스타' 쟈니 뎁으로 하여금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지명을 받게끔 했다. 이 영화로 인해 제리 브럭하이머는 '쓰레기 상업영화를 성공시키는 장사꾼' 이미지에서 '웰-메이드 영화 제작자'의 그것으로 '이미지 탈바꿈'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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