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3일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와 국민검증위원회가 발족할 때만 해도 두 후보는 ‘검증’에 자신이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저는 당에 (검증과 관련한 일을) 일임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면서 “검증은 철저히 할수록 좋다”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후보답게 자신감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에 박근혜 후보도 “선거는 검증 과정”이라며 “이번 대선은 믿을 수 있는 사람, 국가관이 분명한 사람, 도덕적 흠결이 없는 사람만이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당원과 국민이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검증국면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검증, 혈전으로 변모
하지만 6월5일 곽성문 한나라당 의원이 이명박 후보가 일가친척 명의로 8천여억원의 신탁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재산은익 의혹’을 제기하면서 검증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곽 의원의 ‘재산은익 의혹’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이 ‘BBK 연루 및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BBK 연루 및 주가조작 의혹’은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씨가 운영했던 투자자문회사 BBK의 정관에 공동대표로 돼 있으며, 김씨의 380억원대 횡령사건에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박 후보측의 공세에 범여권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6월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 전 시장에 대한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한 것. 박 의원은 “미국 법원에 제출된 우리나라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은 이명박 전 시장과 재미교포 김경준씨가 2000년도에 함께 설립한 LKe뱅크와 BBK 등 38개 법인 계좌를 이용해 저질러졌다”며 “주가조작 사건에 이용된 LKe뱅크의 사건 당시 대표이사가 이 전 시장”이라고 미국 법원 자료를 근거로 검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후보측은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다각적인 반박을 시도했지만 이명박 X파일과 관련된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후보측을 더욱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박근혜 후보측도 ‘정수장학회’ 관련 사실이 폭로되면서 검증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의 원 소유주였던 故김지태 씨의 차남 김영우씨가 “부일장학회는 5·16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 헌납당한 것”이라며 “정수장학회의 헌납주식을 국가에 원상복귀하는 것이 원칙인데 박근혜 후보는 아직도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故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이야기도 퍼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두 경선후보가 서로를 저격하고 있을 때 범여권은 이들의 싸움을 즐기면서 이간질에 열을 올렸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하며 “이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가 20년간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15차례나 주소를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후보는 “그런 일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결국 얼마 못가 위장전입을 시인하고 말았다. 하지만 박 후보측과 범여권의 공세는 더욱 거세게 이 후보를 몰아세웠다. 폭로에 폭로가 이어지면서 ‘검증론’이 ‘낙마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위장전입 vs 정수장학회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가 6월22일 이 후보의 투기성 위장전입 의혹과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이 모두 해소됐다고 밝힘에 따라 당내 1차 후보검증은 마무리됐다. 이 후보측 장광근 대변인은 “예견됐던 일이고 당연하다”고 말했고 박 후보측 김재원 대변인도 “이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문서자료 수집은 물론 제보자의 진술을 듣고, 증언을 듣기 위해 관련 장소와 관련자를 찾아간 검증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차 후보검증에 “힘이 빠졌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 후보의 ‘위장전입’에서 문제가 된 주소이전은 21번이었는데 자녀교육을 위한 5번의 위장전입 외 나머지 경우에 부동산투기 의혹이 없었는지는 아예 검증 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정수장학회’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위는 “박 후보가 당시 어린나이였다”는 이유로 검증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은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밝혀져야 할 사안은 많으며 대선에 가서도 검증은 계속될 것이다. 차라리 지금이 당 지도부가 원하는 깨끗한 검증이 가능한 시기”라며 말했다.
그는 또 “허허벌판으로 보내면서 면역력을 키워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나라당이 비난과 비방 일색으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비틀린 검증론을 막고 원래의 검증 의도를 찾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 지도부도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검증론’을 빙자한 ‘낙마론’에 엘로카드를 꺼내들었다. 붉은 색이 내비치는 강도 높은 경고로 더 이상의 흑색선전과 후보 비방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두 후보의 검증론에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사이 두 후보는 이미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숨통 쥘 만한 건 많다”
이명박 박근혜 예비후보가 1차 검증에서 ‘문제없음’으로 한숨을 돌린 사이 2차 검증이 다가왔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 사생결단의 혈전이 되어버린 한나라당발 제로섬게임이 제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제2라운드로 접어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위장전입과 정수장학회 건이 심심하게 마무리 됐지만 2차전은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80여 건에 이르는 사안들이 당 검증위를 기다리고 있어 2차 검증이 ‘진짜배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2차 검증에서도 ‘재산’이 주된 사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BBK나 주가조작 의혹, 다스 등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내용이 아직 검증위를 거치지 않았다.
이중 ‘다스’의 경우 뉴타운 부동산 개발로 대박이 난 것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이란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주된 검증사안에는 모두 故 최태민 목사의 이름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나 이명박 후보쪽에서 터뜨릴만한 ‘꺼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점쳐지면서 그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된서리를 맞아오면서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된 이명박 후보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자신의 지지율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전까지 흑색선전과 비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당 지도부의 강경 대응과 ‘필패론’의 늪에 빠져드는 두 후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그것이다.
“수사권을 가진 검사가 해도 한참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족한 시간, 남은 검증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난색을 표한 안강민 검증위원장의 말처럼 앞으로도 한나라당에는 많은 검증 사안이 남아 있다. 총 87건의 검증사안이 검증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검증사안들은 10일까지 조사 작업을 마무리하고 검증청문회에 넘겨진다.
검증위의 검증기간 외에도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게는 8월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안에 또 어떤 의혹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늪으로 끌어들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남은 시간동안 두 후보가 잘못 온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을 지, 혹은 공멸의 늪으로 빠져들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