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일찌감치 후보군을 좁힌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범여권은 추리고 추린 후보만도 13명에 이른다. 당초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선택한 ‘괜찮은 후보’들은 김혁규, 문국현,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천정배, 한명숙 등 7명이었다. 하지만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는 후보자 연석회의의 참석 대상 후보로 김두관, 김영환, 김원웅, 김혁규, 문국현, 손학규, 신기남, 이인제, 이해찬, 정동영, 추미애, 천정배, 한명숙 등 13명을 꼽고 후보자 연석회의를 위한 물밑접촉에 나선 것이다. 이밖에 범여권으로 합류할 군소후보들은 이보다 훨씬 많아 하루하루 범여권 후보의 숫자는 달라져 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후보 난립을 두고 “대선이 아니라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며 “얼굴을 알리거나 다음 총선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사전 발판으로 대선출마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잠룡이 아니라 ‘잡룡’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는 범여권. 그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용꿈 꾸는 이무기 판쳐
현재까지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공식 출마선언을 했거나 출마에 뜻을 밝힌 사람,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중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가 꼽은 이들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신기남 김원웅 천정배 이인제 의원,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김영환 전 과기부장관, 추미애 전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13명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지명도가 있는 인물로 국경추가 꼽은 인물 외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병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강운태 전 내무부 장관을 꼽는가 하면 범여권 후보를 23명으로 보도한 곳도 있다.
사실 범여권의 후보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아직까지 대선출마를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언제 누가 범여권 후보를 자칭하며 대선가도로 뛰어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고진화 박근혜 원희룡 이명박 홍준표로, 민주노동당이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후보군을 만들고 후보검증이나 정책토론회로 대선의 본선을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에 범여권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은 “개인적으로는 TV토론이 가능한 5∼7명선이 적정하다고 본다”며 “숫자가 많으면 당연히 거르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경추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목희 의원도 “TV토론을 1차, 2차로 나누어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해 범여권의 후보 난립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범여권에서 지지율 두 자릿수를 넘는 유력주자가 전무한 데다, 일부는 내년 총선을 노리고 얼굴 알리기와 몸값 띄우기를 위해 범여권 대선후보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02년 당시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도의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대권을 거머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뛰어든 이들도 상당수다. 한마디로 노무현 학습효과로 볼 수 있다.
아직 범여권 대통합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 난립까지 이어지자,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한 당직자는 “국민들은 범여권 대통합이 미적거리고 있는데 대해 답답해하고 있다”며 “이는 대통합이 늦춰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범여권의 옹졸함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후보들의 난립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범여권에서 등을 돌려버릴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예비후보의 수를 줄이기 위해 강경책을 쓰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당원 1천명 및 일반국민 1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주자만 경선에 출마토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 예비후보 등록자 수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경선 참가비를 높여 출마포기를 유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은 한 방송을 통해 “후보자 연석회의는 비중 있는 후보를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 분들은 당내 예비자격 심사위원회에서 걸러질 것”이라며 “현재까지 예비후보자가 열린우리당과 상의 없이 등록한 경우도 많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불가피한 절차라고 생각한다”고 당의 입장을 밝혔다.
이목희 의원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본, 경선 참가 가능성이 없다면 본인이 먼저 자제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자진사퇴를 권고하기도 했다.
대통합 해결하면 방법 나와?
대통합을 하면 이러한 현상이 정리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후보들을 중심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범여권 대통합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후보들도 정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범여권 대통합이 이뤄지거나 오픈프라이머리가 진행되면 1차든 2차든 경선이 벌어져 후보가 압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만약 대통합이 되지 않아도 정당별로 후보를 정리해 내보낼 것이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후보난립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이처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죽기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 범여권의 후보들이 잠룡에서 이무기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빠른 해결만이 범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정가의 우려처럼 범여권 후보난립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국회 주변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씨(56)는 “범여권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고만고만한 이들이 머리를 내미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며 “한나라당도 검증이라는 미명하게 서로를 죽이고 있지만 범여권의 모습도 이와 비교해 나아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얼굴을 내미는 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서슬 퍼런 경고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