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품격이자 인격, 옳은 소리에 공감과 배려가 함께해야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말은 그 사람의 지성 수준, 마음의 아름다움, 지니고 있는 사상, 정신활동 그 자체
의회(議會)는 ‘함께 모여서 옳고 품격 있는 말을 하는 곳’임을 알고 인물 선택해야
정치는 말(언어)이고, 말은 품격이자 인격이다. 품격 있는 말은 품격 있는 정치를 만든다. 말의 품격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치뿐만 아니라 세상사와 인간관계 모두 말에서 시작돼 말로 끝난다.
정치권에서는 말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참 많다.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본인을 작가라고 칭하는 한 정치인은 지난 2005년 동료 정치인으로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말에는 품격, 교양, 철학이 부족하다.”
대선에도 출마했던 유명 정치인이 늘 듣는 평가다.
그들은 의회(議會)에서 의(議)의 진정한 뜻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의회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함께 모여서 옳고 품격 있는 말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녔기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일까.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명정언순(名正言順)’이 강조돼왔다. 이 표현은 <논어> ‘자로’편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501년 공자는 정사와 예법이 엉망이 된 노나라에 실망해서 위(魏)나라로 갔다.
제자인 자로(子路)가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의지하여 정치를 한다면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명칭명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세상의 실정을 너무 모르십니다. 어떻게 바로잡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칭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
이로부터 전하여 명정언순은 어떤 말과 행위가 명분에도 맞고 도리 상으로도 어긋나지 않을 때를 가리키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말의 명분과 도리’에 대한 언급이다. 공자는 말이 품격을 갖추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게 정치의 기본임을 잊지 않도록 했다.
공자의 가르침과 달리 요즘은 ‘막말과 폭언, 거짓말의 시대’인 것 같다. 막말이란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거나 속되게 하는 말 혹은 뒤에 여유를 두지 않고 잘라서 하는 말을 가리킨다.
그렇게 막말과 폭언,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게 ‘말(언어)의 본질’이다.
말 즉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말은 개인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말은 그 사람의 지성 수준, 마음의 아름다움, 지니고 있는 사상, 정신활동 그 자체이다. 말에 내재하는 정신적인 힘이 바로 언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말은 소리를 통해 표현된다. 사람의 소리는 옳은 소리, 싫은 소리, 미운 소리, 아름다운 소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듣고 나서 싫어하는 감정을 갖거나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면 ‘진정으로 옳은 소리’라고 평가받기 힘들다. 옳은 소리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려면 말에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포함되어야 한다.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는 작가, 말에 품격이 없다는 정치인 등에게는 바로 이러한 공감과 배려가 부족했다.
예컨대 부모가 정성들여 키워주는 자녀들에게도 “너는 왜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해!”라고 야단을 치면 자녀들이 싫어하게 된다. 하물며 정치인들의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건방지고 배려 없는 말을 좋게 받아주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요즘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원인중 하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과연 자녀 세대의 말을, 혹은 부모 세대의 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계시는가?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소리나 기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관, 세계관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막말과 폭언’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과연 “오늘은 당신이 손가락질을 하지만, 내일은 당신이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는 하는 걸까.
결론적으로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언어의 품격은 그 사람의 품격과 인격을 의미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쓰레기 같은 ‘막말 대잔치’를 벌이는 유튜버들이나 페이스북에 혐오스러운 말을 마구 올리는 사람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 여기에 진실을 숨기고 입만 열면 거짓말만 내뱉는 사람들도 세상을 한층 더러운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의 언어가 쓰레기 소음이면 세상은 쓰레기와 소음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고, 많은 사람의 언어가 격조 높고 향기가 나는 화음이면 세상은 격조와 향기가 넘쳐나는 정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쓰레기장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장미 정원으로 만들 것인가?
며칠 전 자전거를 타러 한강변을 나갔더니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