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3달 전 우리 정부를 향해 “저능하다”고 독설을 쏟아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이제는 아주 만만하게 보였는지 지난 4일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그것들이 기어다니며 몹쓸 짓만 하니 이제는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고 또다시 대한민국 정부를 협박하고 나섰다.
김여정은 이날 노동신문 담화에서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노골적으로 ‘전단 살포 금지’를 제도화하란 요구까지 덧붙였는데, 이에 불응할 경우 개성공단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와 9·19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한민국을 향한 북한의 이 같은 발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라지만 정작 국민들을 놀라게 했던 건 북한의 ‘2인자’라는 김여정이 던진 한 마디에도 납작 엎드린 문재인 정부의 자세였다.
초강대국이자 우리나라와 동맹관계이기도 한 미국에는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를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강경하게 나가고, 최근 들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따르지 않는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는 등 이웃나라 일본에도 단호하게 대응해오던 이 정부가 웬일인지 북한에는 ‘기본적인 외교예절’도 한참 넘어선 독설을 퍼붓고 있음에도 마치 무슨 ‘명령’이라도 떠받드는 듯한 기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일 새벽, 김여정 명의의 담화가 나온 지 불과 4시간여 만인 같은 날 오전에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법률을 정비하고 있다고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요구대로 납작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고, 한 술 더 떠서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오후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탈북자 단체들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까지 내놓기에 이르렀다.
정작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듣기에도 민망한 욕설을 퍼부은 것은 북한인데, 그걸 듣고도 북한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자국민을 향해 엄포를 놓는 현 정권의 태도를 보면 이 나라가 현재 세계 선진국 모임이란 G7 가입까지 거론되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 최빈국이자 인권지옥인 북한의 일개 식민지나 위성국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행정부가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입법부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한심하게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문 정권에 대한 충성 경쟁이라도 벌어졌는지 한정애 의원은 “전단 살포는 단속 대상인 쓰레기 대량 투기 행위”라고 강변하는가 하면 김홍걸 의원은 “이번 성명은 협박이라기보다 우리 측에 ‘당신들이 성의를 보여주면 우리도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아전인수식 해석까지 내놓는 등 앞다투어 북한의 담화내용을 두둔하기에 바쁜 실정이다.
문 정권이야 남북군사합의를 비롯해 그동안 자신들의 대북 관련 치적이라 홍보해온 사안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김여정 발언에 그토록 저자세를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야당도 아니고 일국을 대표하는 집권층이 됐단 점에서 북한의 이번 협박성 발언에 계속 벌벌 기는 듯한 모습을 보일 경우 앞으로 그들의 요구수위만 점점 높아질 뿐 아니라 문 정권과 민주당에만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자존심에도 먹칠하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유수의 강국들에도 절대 굽히지 않던 그 드높은 자존심이 왜 북한을 대할 때만 전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저 ‘같은 민족’이기만 하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이든 무엇이든 감내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이 정권과 여당도 국민에게 확실한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