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사랑의 덫' 내놓고 본격적인 활동 나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서민의 장르' 트로트. 트로트를 정의 짓는 몇 가지 키워드 가운데, 우리는 쉽게 '과장성'을 꼽고는 한다. 즉 전반적으로 성인가요의 특색은 감정의 격앙과 폭발을 아낌없이 표출하는데 있다. 태진아·현철·김수희 등 이 방면의 '대가'들이, 폭풍과 같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감정과잉'의 정서를 통해 명성을 확고히 구축했음을 유의하자.
하지만 '사랑의 덫' 등 신곡 세 개를 내놓고 의욕적인 활동을 시작한 여가수 자운영의 경우는, 이러한 트로트의 '이디엄'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제2의 심수봉'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그러나 정작 자운영 본인은 이러한 칭호가 "달갑지 않다"고 한다), 애절한 정서로 충만하나 결코 격해지지 않는 '쿨'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 '쿨'이 21세기 한국대중문화의 본격적인 화두임을 감안하면, 자운영은 세미트로트계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트렌드 메이커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랑의 덫'(김재구 작사/홍성욱 작곡)은 전반적으로 경쾌한 리듬의 세미트로트곡이지만, 단조의 멜로디와 자운영의 절절한 가창력이 이 노래를 '애절한' 무드로 정착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자운영의 보이스는 예의 심수봉을 떠올리게 하는, 우수에 찬 비음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나, 심수봉이 듣는 이를 한없이 가라앉게 하는 '한'의 정서로 충만해있는 반면 자운영은 확실히 '쿨'한 인상을 준다.
'가지마세요'(김재구 작사/작곡)는 경쾌한 신서사이저와 칼칼한 음색의 기타 연주가 배경을 맛깔스럽게 수놓는 가운데, 자운영의 애절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노래. 간주부분에 나오는 색소폰 또한 과장됨 없이 핵심만 짚어 나가는 '경제적' 운용을 보여준다. 자운영의 보컬은 '사랑의 덫'보다는 조금 더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만, 노래 전체의 정서인 '간결함'에 맞추어 '과장'의 기운이 전혀 없다. 특히 자운영의 품격 있는 싱코페이션은 미국의 블루스 장르를 연상시킬 만큼 빼어나다.
'숨겨온 사랑'(김재구 작사/홍성욱 작곡)은 여성 백 보컬의 인상적인 스캣으로 시작하는 곡. 자운영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은 채 시작하여 점차 감정의 고조로 치달아 오른다. 자운영의 재능이 십분 발휘되는 곡. 역시나 노래 전체는 애절한 정서로 가득하지만, 역시 자운영의 보이스는 격정의 한가운데에서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 침착한 어프로치로 일관한다.
자운영은 본래 시인으로 문단활동을 하다가, 그 매혹적인 보이스로 주변에 추천을 받아 가요계의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자운영의 노래에는 '애이불비(哀而不悲)'하는 한국 시의 전통적인 정서가 가득 담겨있다. 첨단 트렌드인 '쿨'과 시적 감흥이 한데 어우러진 독창적인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격렬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지기 십상인 기존 트로트 가요의 고질적 상황에 염증을 느낀다면, 시원스러우면서도 마음에 잔상을 남기는 보컬로 듣는 이를 감탄시키는 자운영의 노래를 들어보는 게 어떨까. 자운영을 통해, 우리는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숙명적인 몸부림을 쳐야만 하는 대중음악이 진정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하게 되는 뜻밖의 '횡재'를 거둘 수도 있는 것이다.
취재 오공훈 기자 ogh@sisafocus.co.kr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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