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유영철이 검거됐다. 당초 성추행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힌 그는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면 아마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며 “유영철처럼 하려 했다”고 말해 주변을 경악하게 했다. 경찰 조사결과 범인은 지난 4월 구치소에서 출소 한 뒤 10일 만에 또다시 범행을 시작했다. 출소한지 2개월 만에 살인미수 및 특수강도로 8건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현재 조사 중에 밝혀진 범죄 말고도 또 다른 여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살인미수에 그쳤지만 전화방도우미 같은 약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수법이 유영철과 같다”고 말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런데 혼자 잠을 자고 있던 A는 누군가 방에 자신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됐다. A는 자신의 일행인 남성 B인줄 알았다. 그는 잠결에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간 뒤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자고 있던 방에 있어야 할 B와 한 방에 있는 것이 아닌가. A는 “성추행을 당했다”며 주장했고, 이에 B는 옆방으로 건너가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침대 밑에서 혈흔 묻어있는 칼 발견
이윽고 B와 성추행범으로 지목된 괴한은 주먹이 오가며 격투가 벌어졌다. 싸움에 밀리기 시작한 괴한은 B에게 연신 두들겨 맞았고, 이때를 노린 A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괴한을 성추행범 현행범으로 체포해 신원을 확인했다.
괴한은 31세의 황모씨. 그는 이미 특수강도 등으로 전과 13범의 흉악범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는 지난 4월4일 출소해 출소한지 2개월 만에 다시 경찰서로 잡혀 온 것. 교도소에 드나든 지 무려 14년째였다. 경찰은 황씨가 심상치 않다는 직감을 했고, 다른 여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추궁하기 시작했다.
황씨는 이 같은 경찰의 추궁에 거듭 화를 내며 인권위를 거들목거리더니 “증거를 갖고 추궁하라”며 으름장을 냈다. 경찰은 이에 포기하지 않고 사건이 발생한 모텔로 출동해 증거가 될 만한 물품을 찾는 한편 그가 지내고 있다던 고시원을 찾아가 수색작업을 펼쳤다.
경찰의 직감은 적중했다. 피해자 A가 묵었던 모텔방 침대 밑에서 혈흔이 묻어있는 칼이 발견됐고, 황씨가 묵고 있다던 고시원에서는 4회에 걸쳐 2백14만원 상당의 액수가 온라인으로 입금된 예금통장을 발견했다. 경찰이 증거물을 내놓자 상황이 불리해진 황씨는 진술을 거부했다. 이후 경찰의 끊임없는 회유와 설득.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면 아마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황씨는 경찰 조사에서 “A가 술에 취해 나가 금방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 방심했다”며 “동행인이었던 B가 몇 차례 때리고 사건이 무마될 줄 알았는데 경찰에 신고할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결국 황씨는 A에게 동행인이 있는 줄 몰랐으며 여자 혼자라 준비해갔던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남자와 함께 있었다면 칼을 휘둘렀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어 황씨에게 자백 받아 확인된 사건은 8건. 지난 6월26일 중랑구 망우동 소재의 H모텔에서 객실 문을 열고 침입하여 피해자를 칼로 위협, 금품을 요구하였으나 피해자가 반항하자 칼로 찔러 살해하려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비명소리를 들은 업주가 객실 문을 두드리자 2층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도주하는 등 2회에 걸쳐 강도살인미수에 그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보다 한 달 앞선 5월28일에는 안산시 고잔동소재의 H모텔에서 전화방도우미를 유인해 금품을 요구했으나 금품이 없자 피해자를 칼로 위협하여 지인에게 온라인으로 10만원을 입금케 했다.
현재 경찰 조사 결과 황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출소한 지 10일 만에 다시 범행을 시작했으며 경찰에 검거되기 전까지 2개월 동안 강도살인미수 2건, 인질강도 1건, 특수강도 2건, 침입절도 3건을 저질렀다. 피해액만 7백65만원 가량이다. 노트북 7개가 발견됐으나 확인된 주인은 단 2명 뿐. 나머지 5명은 오리무중이다.
노래방도우미 모텔로 유인하기 쉬워
사건은 좀체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황씨의 자백에도 피해자들이 진술을 거부한 것. 황씨의 계략이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노래방도우미는 모텔로 유인하기 쉽고, 범행을 당하더라도 대부분 신고를 하지 않은 점을 노렸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서울 광진경찰서 폭력2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개월간 발생한 사건의 범인이 피해자들의 돈을 송금 받은 사실을 포착해 통장계좌를 근거로 서울과 경기도 일대 7곳의 경찰서가 그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범인 검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 지금까지 황씨가 저질러온 범행을 살펴보면 그는 모텔 혹은 고시원을 범행 장소로 물색했다. 특히 전화방도우미를 범행대상으로 선택해 완전범죄를 노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황씨는 휴대폰을 소지 하지 않았고 게임도 하지 않아 IP추적에도 소용없었다. 주거지가 없던 그는 고시원도 3일 이상 머문 적이 없었다. 교통수단도 주로 택시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이로 인해 황씨는 “나는 안 잡힌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폭력 2팀 관계자는 “범인의 자백은 있으나 피해자 진술이 없는 사건은 일단 유보한 채 입증된 사실만 보도했다”며 “주인이 없는 5개의 노트북과 인질강도 3건 정도를 더 염두하고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황씨가 재소자들에게 ‘유영철처럼 하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황씨가 과시하려는 성향이 있긴 하지만 범행을 살펴보면 전화방도우미 같은 약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수법이 유영철과 같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씨는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지만 단순히 돈 때문이라고 하기엔 범죄 모방성의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