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26년 경영사, 오점은 남겼지만 경영능력은 만점
김승연 26년 경영사, 오점은 남겼지만 경영능력은 만점
  • 이보배
  • 승인 2007.07.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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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54)의 보복폭행 사건이 여전히 여론의 관심사다. 이제는 외압의혹에 대한 수사까지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화그룹 역시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에 흠집이 갔다. 그룹 전체의 위기론이 대두될 만큼 여파도 대단하다. 억만금을 내놓는다 해도 국민적 공분은 잠재우긴 쉽지 않은 분위기다. 반면 김 회장 개인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가 지나친 면이 있지만 부모된 마음의 동정도 분명 존재한다. 기업인으로서의 역할에 힘을 싣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선처를 바라는 재계의 탄원도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반드시 짚어볼 것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 회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폭행사건에 대한 법의 심판은 분명히 김 회장의 몫이겠지만 개인에 대한 ‘여론몰이’식 심판은 제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 회장의 경영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그룹 오너 자리를 26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단순히 오너의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시쳇말로 ‘거저먹기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지난 1981년 창업자인 김종희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면서 29세의 나이에 총수자리에 올랐다. 고 김종희 창업주는 1952년 한국화약(주)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화약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 재건에 큰 업적을 남긴 입지전적인 인물.
당시 총수에 오른 김 회장을 향해 ‘국내 최연소 20대 재벌총수 탄생’, ‘차돌 같은 인상의 젊은이’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이 선친의 사업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뒤따른 이유에서다.

한화 24배 일궈내

하지만 김 회장이 취임 10년을 넘긴 1990년대 초반.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우려를 제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김 회장이 사업을 크게 늘리면서 고 김종희 창업주의 별명인 ‘다이너마이트 김’이 의미하는 뚝심 있고, 정확한 패기의 경영인으로 평가가 이어졌다. 김 회장 본인에게도 ‘다이너마이트 김 주니어’란 별칭이 따라 붙었다.

김 회장은 경영을 맡은 이후 금융과 유통, 레저, 사회복지 등 3차 산업부문을 강화하며 급성장을 일궜다. 한양화학 인수, 경인에너지 내국화, 한화유통, 한화리조트 인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2의 창업에 성공했다.

한화그룹은 현재 자산 61조원으로 재계 서열 8위다. 금융, 제조·건설, 서비스·레저 등 크게 3개 사업 부문으로 나뉜 33개의 계열사(2006년말 현재)를 거느리고 있다. 김 회장 취임 당시 ‘자산 5천8백46억원, 21개 계열사’였다는 점에서 보면 26년 만에 대그룹을 만들어낸 탁월한 경영능력을 잘 보여준다.

지금의 한화그룹은 선친의 바탕 위에 대부분 김 회장이 일궈낸 셈이다. 경영을 물려받은 해인 1981년의 매출이 1조원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현재 한화그룹 매출 24조원은 무려 24배나 규모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7년 한국을 휩쓴 IMF 사태는 한화그룹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 자신이 “죽기를 각오했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그 결과 김 회장은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위기를 극복했다. 이때 얻어진 김 회장의 별칭은 ‘구조조정의 마술사’. 위기를 극복한 점에서도 그렇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직원들의 고용승계 원칙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듯, 김 회장은 총수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철저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 ‘돈을 벌되 사리에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선친의 뜻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IMF 당시 한화에너지 정유부문의 매각 협상에서 김 회장은 상대방인 현대정유 사장을 만나
“20~30억원을 손해 볼 테니 인수과정에서 근로자들을 한 명도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속하게 매각작업을 추진할 것”을 제의해 약속을 받아냈다.

한 푼이 아쉬운 당시 상황에서 수십억원을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 실제 계약이 성사된 후 한화에너지 7백6명과 한화에너지프라자 4백56명에 대한 완전한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김 회장의 성공 이면에 ‘5공’이란 특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우려를 희망으로 바꾼 것에는 이 같은 ‘신의 경영’을 생명과도 같은 경영철학으로 유지해온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을 두고 ‘의리파 총수’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세계를 무대로 뛴다”

▲ 그리스 대통령과 면담
김 회장은 이번 보복폭행 사건으로 구속되기 직전까지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해외 사업 매출을 2011년까지 현재의 40%로 늘리기로 방침을 정하고 해외 사업 진출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진두지휘에 나섰다.

열정 또한 대단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태국에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오후 2시부터 새벽 5시까지 무려 15시간의 밤샘 마라톤 회의로 강한 의지를 임직원에게 각인시켰다. 오너가 직접 선봉에 서서 솔선수범한 것이다. 때문에 한화그룹은 이날 회의에 대해 “김 회장의 글로벌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한화그룹 글로벌 경영 발대식'”이라고 설명할 정도다.

한화그룹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진출 가능한 아시아 및 유럽지역의 사업 타당성 검토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한화석유화학, 한화무역, 한화건설, 대한생명 등 그룹 내 10개 계열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맥락에서 2007년은 한화그룹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경영실적이 나쁘지는 않지만 ‘백년대계’ 차원에서 글로벌 시동을 건만큼 성공의 열쇠는 반드시 거머쥐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에서다.

김 회장이 올해 초 그룹 심벌을 ‘한화 트라이서클(Hanwha TRIcircle)’로 바꾼 것도 결의의 표현인 셈이다. 그는 지난 1월3일 새 CI를 선포하면서 “의식부터 경영체질까지 대변혁하자”고 굳은 결의를 다진바 있다.

김 회장이 이처럼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면서 국내외의 이목이 모두 그의 행보에 쏠렸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비난 여론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등극했던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줄곧 이슈를 몰고 다녔던 그가 중년을 넘긴 노련한 경영자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의리파 총수의 신의경영

김 회장은 얼마 전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전문 잡지인 ‘財界(ZAIKAI)’誌(재계)에 소개된 적이 있다. 지난 3월13일자로 소개된 기사는 김 회장이 글로벌 경영전략 수립을 위해 일본과 동남아를 순방하던 중 ‘재계’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다.

김 회장 인터뷰 기사는 “그룹 이념인 신용과 의리로 M&A를 적극적으로 진행, 세계적으로 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제목으로, 선친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24배나 키워낸 김 회장의 경영철학을 8페이지 분량으로 소개했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어떤 업종으로 진출한 계획인가’를 묻는 질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극적인 M&A를 실시할 계획이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이 이처럼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 단순한 그의 경영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의리파 총수’라는 별칭을 달고 다닐 만큼 26년간 ‘신의 경영’을 해왔다는 점에서 지금의 한화그룹과 그의 행적이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김 회장이 ‘재계’지와의 인터뷰에서 소개한 경영일화는 그가 어떻게 한화그룹을 일궈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룹 경영 26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영일화를 소개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꺼낸 이야기보따리는 지난 1983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을 인수할 당시의 비화다.

김 회장은 당시 한양화학의 인수를 위해 다우케미컬과의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진전이 없자 가로 30cm, 세로 2m의 한지에 먹 글씨로 “본인은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명예를 욕되게 하면서까지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쓴 두루마리 편지를 보냈고, 이를 통해 다우케미컬과의 협상에 주도권을 쥐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젊은 패기와 뚝심 있는 경영철학이 유리한 조건으로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되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07년 새해, 그룹 CI를 교체하며 ‘제2의 도약’을 선포한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여파 속에서도 이런 김 회장의 의지는 한화그룹 전반에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이 지난해부터 그룹 안팎에 줄곧 주창한 ‘철새론’은 경영 전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있다. 둥지를 지키는 텃새보다 대륙을 횡단하며 먹잇감을 찾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 철새론의 핵심이다.

김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한화의 ‘신 르네상스 시대’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고 의욕을 나타내며 “지난해에 외형상 1조원 이상의 흑자를 달성하는 경영실적을 이뤘으나 지금 당장 눈앞의 열매 하나를 취하기보다는 훗날 수십, 수백 배의 풍요를 기약하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뚝심과 패기, 전략과 신의를 두루 갖춘 ‘성공한 경영인인 김 회장이 보복폭행 사건이란 오점을 남겼음은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높고, 유별난 자식사랑으로 유명한 김 회장이 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을 했을지언정 한화그룹을 일궈낸 26년 세월을, 또 그가 가야할 앞으로의 26년 세월을 폄하하는 것은 제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제언했다.

‘인간 김승연’의 주변 사랑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직후 ‘인간 김승연’에 대한 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인간미 넘치는 그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한 문건이다.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김승연 회장은 1998년 말 기업매각,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 전직사원들에게 ‘지난 날 같은 깃발 아래 한솥밥을 먹던 소중한 인연을 되새기고자 이렇게 소식 전합니다. 전직사우들의 사랑과 성원 덕분에 회사가 어려움을 이기고 새 출발을 맞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친필 연하장 5천여 통을 다음 해 달력과 함께 발송했다.

설에는 4백여 명의 퇴직 임원에게 ‘지난날의 인연을 잊지 말고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며 부부용 은수저세트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이러한 정성에 대해 전직 임직원들이 감사편지와 연하장을 거꾸로 보내오는 바람에 서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외에도 1998년 퇴직한 전 한화증권 상무가 딸의 투병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즉시 위로금을 전달했다.

자그마한 인연도 소중히

▲ 서울대 도서관 기념식
1998년 고 이성수 전 경향신문 사회부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 했을 때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김 회장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줬다. 김 회장과 이 전 부장은 그룹이 경향신문을 경영할 당시 그룹 총수와 노조 지도자라는 묘한 인연으로 만났다.

나중에 경향신문의 개혁에 이 전 부장이 적극 협조하면서 두터운 인간관계로 발전했다. 김 회장은 빈소에 8시간 머물면서 목을 놓아 통곡한 뒤 초등학생인 고인의 장남을 불러 “아버지가 해야만 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김 회장이 거주하시는 가회동 인근 북촌 마을은 조선왕조의 궁궐에 인접한 전통주거 밀집지역으로서 달동네로 불리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마을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이웃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2006년부터 이 마을에 매년 백미 240포(포당 10Kg)를 기증했다. 그리고 백미 기증 이외에도 마을회관의 노인정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세상 구경을 하실 수 있도록 야유회 개최를 할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드리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

한편 김 회장의 어머니는 해마다 김 회장 생신 때면 마을회관 노인정에 떡을 돌렸는데 김 회장의 북촌 마을에 대한 지원 취지를 알고는 떡을 돌리는 대신 백미 기증에 동참했다고 한다. 김 회장의 이러한 선행에 대해서 최근 북촌 한마음 봉사회 명의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임직원 위한 사랑의 행진

지난 2005년 11월 김 회장의 제안으로 한화그룹은 그룹 내 질환이나 투병생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직원 가족을 위한 사랑의 행진을 실시했다.

1박 2일간 김 회장과 신입사원 1백여 명이 충청북도 수안보 일대의 50km를 걸으며 마련된 기금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섯 가족에게 전달한 것인데 이 일을 계기로 2006년에도 계열사 CEO를 포함하여 임직원 2백20명이 3박4일간 200km 릴레이 형태로 행진하며 6천만원을 모아 그룹 내 질병 사우 및 가족에게 전달했다.

사랑의 행진은 김 회장이 불우 임직원의 아픔을 그룹 가족이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것으로 진한 동료애를 느끼게 해 준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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