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미네르바 성냥갑 1>
움베르토 에코가 우리에게 던져준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전날의 섬> 등, 그가 저술한 '소설'에서 엿보여지는 천재적 기호학자/역사학자/문화인류학자로서의 입지와 그 화려한 박학다식의 풍모, 복합적인 사상적/학문적 체계를 자연스럽게 장르화시켜 훌륭한 '이야기거리'로 탈바꿈시키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 등이며, 다른 하나는,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으로 대표되는 날카로운 에세이스트로서의 재주, 즉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입담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단박에 잡아끌고, 동시에 '고매한 지성인'으로서의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말끔하게 지워버린 특출한 재주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미네르바 성냥갑 1>은, 그의 에세이스트로서의 재주를 한껏 선보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속편격인 모음집으로써, 이태르이 유력 주간지 <레스프레소>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에코의 동명 칼럼에서 글을 뽑아 지난 2000년 이태리 본국에서 출간된 책을 옮긴 것이다. 여기서 잠시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보자.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미네르바'가 실제 성냥의 상표 이름임을 밝히고 있다. 1920년대부터 생산된 이 '미네르바 성냥'은 성냥 하나씩 성냥갑에서 찢어 쓸 수 있는 '종이 성냥'이며, 에코는 이 종이 성냥갑의 안쪽에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내리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미네르바 성냥갑>은 에코의 머리 속에 급작스레 들이찬 '생각'들을 가감없이 적어내린,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에세이'집이라는 것.
그러나 <미네르바 성냥갑 1>은 위의 '급작스런 아이디어'들을 글로 옮긴 듯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류의 가벼운 세태풍자 에세이를 기대했던 독자들을 당혹시킬 만한 책이다. <미네르바 성냥갑 1>의 주제는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현실적이다. 일례로, 그는 이 책의 실린 에세이들을 통해 문학과 예술, 새로운 정보습득 체계인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로 이루어진 인류의 '새로운' 정보교환/의사소통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현실참여적 요소가 강한 주장과 정치와 국제 정치에 대한 언급,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맹렬하게 공격해내고 있다. 반면, 서정적인 에세이들도 섞여 있어 눈에 띄는데, 그가 노스탈지어 그득한 시선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나, 어느 주엔가 '아무 할 말도 없음'에 대해 언급하며 한 편의 멋진 에세이를 만들어내는 부분 등에선 에코가 지닌 다면적 성격과 그 다층적 소화능력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듯 복합적인 양상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일관적인 '일상성 일화'들에 비하자면 장족의 변화라 할 수 있다 - 을 한 데 추스르면서, 에코가 여전히 그의 문학이 지닌 총체적인 사고상 방향성을 명확히 따르고 있다는 점은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곧, 세상은 본래 '부조리'의 방향을 향해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어찌보면 '부조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세상의 모든 양상들이 배치되고, 또 해체되어 버리는 듯하다는 것. 이런 '부조리'의 탐구 면에서 현대에 움베르토 에코만큼 재치있고 엔터테이닝한 필치로 묘사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 듯도 한데, <미네르바 성냥갑 1>은 '현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현대의 대표적인 부조리'를 말하고, 이를 비틀며, 다시 해체시키는 과정을 적어내린 서적이라는 점에서 일반 에세이 문학과는 또다른 차원의 글쓰기로 이해될 법도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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