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홍콩 코미디 <미스터 부> 시리즈, 전격 해부!
추억의 홍콩 코미디 <미스터 부> 시리즈, 전격 해부!
  • 이문원
  • 승인 2004.07.2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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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미스터 부>와 함께 노스탈지아 넘치는 웃음을 만끽해보자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에 "미스터 부" 시리즈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허씨 형제 (허관문-허관걸-허관영) 가 출연했던 "반근팔양" 을 일본에서 "미스터 부" 라는 제목으로 공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자,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들 - "반근팔양" 이전의 영화들까지도 - 을 모조리 "미스터 부" 라는 제명하에 시리즈물처럼 공개시켰고, 이를 국내에서 아무 여과없이 소개한 것이 "미스터 부"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같은 배우들과 같은 감독, 유사한 성향으로 이루어진 작품 그룹이기에, "미스터 부" 라는 이벤트성 제명으로라도 통일해서 다뤄보는 게 좋을 듯하여, 국내 비디오 출시명에 따라 열거해 보았다. <미스터 부> (76년, 허관문 감독) **1/2 원제는 "반근팔양". 엄청난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등에 업고, 허관문이 새롭게 창조해낸 서민 모레이토 코미디를 전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 그러나 그 실체는 좀 실망스럽다. 탐정소라는 배경과 몇몇 인물설정만을 대충 만들어 놓은 뒤, 중심사건 없이 단발성 에피소드들만을 이어붙인 내러티브는, 분명 후일 홍콩 코미디의 한 경향으로 정착됐을 만큼 영향력이 컸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기이하고 산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고, 기발하고 독창적인 피지컬 개그와 비쥬얼 아이디어들이 등장하는 한편, 타이밍 불발과 속성의 진부함으로 인해 실패한 개그들도 속출한다. 편집과 촬영, 음향 등의 기술적 요소들은 끔찍한 수준이다. 홍콩 영화계에 없던 경향을 빅뱅시켰다는 영화사적 의미에 힘입어, 2001년에 홍콩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홍콩 영화 역대 베스트 100' 에서 "영웅본색" 의 뒤를 이어 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당계례가 헐리우드 데뷔작인 "미스터 마구" 를 연출하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닭요리 장면을 그대로 오마쥬하기도 했다. 제작자 명단 중 오우삼(!) 의 이름이 끼어 있다. <미스터 부 2> (74년, 허관문 감독) *** 원제는 "귀마쌍성". 80년대 후반부터 왕정에 의해 다시 붐을 일으킨 '도박영화' 의 시발점이자, 그 영화들이 탄생시킨 주성치-오맹달 콤비의 원형이 허관문-허관걸 콤비에 의해 선보여진다. 조지 로이 힐의 "스팅" 을 좀 의식한 듯한데 (도박장 주인은 정말 로버트 쇼같이 생겼다), 그 때문인지 미국적인 시니컬한 죠크들이 자주 등장하고, 전체적인 구성력과 편집센스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다. 허관문의 감독 데뷔작이자, 실제로 "반근팔양" 보다 먼저 만들어진 허씨 삼형제의 실질적 트리오 결성작이며, 당시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맹룡과강" 의 흥행실적을 갱신했다. 허씨 삼형제 중 막내인 허관영은 카메오에 가까운 배역을 맡았다. <미스터 부 3> (78년, 허관문 감독) ***1/2 원제는 "매신계". 초반에 인물소개와 간략한 설정 에피소드들이 선보여지고는, 중반 이후부턴 하나의 사건이 줄기차게 체이스 형식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미니멀리즘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TV 방송국과 계약에 묶여 허덕이는 연예인들의 애환을 다루면서, 시청률에 목매달아 윤리성을 상실해버린 방송 미디어에 대한 풍자를, 당시로선 파격적일 정도의 지독한 블랙 터치로 그려냈다 - 몇몇 장면들은 코엔 형제의 "허드써커 대리인" 을 연상시킬 정도다. 인물들 간의 매치가 좀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기술적 요소들도 평균수준 이상 (그 당시 홍콩 영화로선) 이고, 개그들도 상당수가 적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부" 시리즈 중 최고걸작이라 생각한다. 조연급 이하이던 허관영이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미스터 부 4> (75년, 허관문 감독) *** 원제는 "천재여백치". 정작 "미스터 부" 시리즈의 파생지인 일본에선 공개조차 안 된 작품인데, 한국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미스터 부" 시리즈로서 끼워넣어졌고, 오히려 적절했던 듯 싶다. 정신병동을 둘러싸고, 한 정신병자가 말하는 '보물' 의 실체를 바람둥이 의사와 패배자 직원이 함께 파헤친다. 환자의 시체손상을 비롯해서 다소 잔혹하고 모욕적인 블랙 죠크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홍콩 서민 코미디라기 보다는 미국 스크루볼 코미디의 아류라는 느낌이 강하며, "미스터 부" 시리즈 중 그 성격이 가장 이질적이다. 전체적으로 유쾌하다기 보다는 좀 음울하고 처연한 무드가 지속되지만, '만다린 팝' 의 비공식적인(!) 선구자로 알려진 허관문의 뮤지컬 넘버들이 자주 등장하여 무드의 전환을 이룬다. 엔딩은 허씨 형제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더 비관적이다. 허관영은 여기서도 카메오 정도의 역할만을 맡았다. <미스터 부 5> (81년작, 허관문 감독) *** 원제는 "마등보록". 역시 당시까지의 모든 흥행기록을 갱신한 작품이며, 이 영화로 허관문은 홍콩 금마장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홍콩의 경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원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허관문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들 - 홍콩 하류층 부락민들 문제나 탈중국인들 문제 - 에 손을 대고 있다. 훗날 주성치에 의해 폭발한 '서민 모레이토 코미디' 가 뻗어나갈 지점을 정확히 제시했다고도 평가된다. 꽤 독창적인 아이디어들과 박장대소할 개그들이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톤은 약간 가라앉은 편이고, 구성과 인물설정은 "반근팔양" 에서 많이 빌려온 느낌이다. "매신계" 의 오프닝에서 잠시 보여준 '그림자 개그' 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비중있게 형상화된다. 이 영화를 허관문의 영화들 중 최고작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허관영이 처음으로 당당하게 '공동주연' 으로서 배치되어, 그만의 독특한 얼뜨기 연기를 보여준다. <미스터 부 6> (84년작, 허관문 감독) **1/2 원제는 "철판소". 허관걸과 허관영이 출연하지 않으므로 그 전의 다섯편과 함께 놓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고, '허씨 형제 영화' 로서의 "미스터 부" 시리즈는 위의 5편으로 모두 끝난 셈이다. 무시무시한 마누라와 지겨운 삶의 단조로움에 고통받는 철판소 (데빵야끼) 집 요리사가, 캘린더 걸을 통해 월터 미티적인 일탈의 꿈을 펼친다. 서극을 필두로 한, 세련된 영상감각과 신선한 비젼을 지닌 뉴웨이브들이 막 등장한 시점이라, 어딘지 좀 맥이 풀리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쯤 돼선 확실히 허관문의 시대는 끝나고, 그 경향만을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첩혈쌍웅" 의 영원한 연인 엽청문이 앳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스터 부> 시리즈의 '상식적인' 종료 지점이라 일컬어지는 <미스터 부 5>, 즉 <마등보록>을 끝으로, 형제 중 가장 미남이라 여겨졌던 허관걸은 '3형제물'로부터 은퇴하여 독립에 나섰다. 그 결과물로 홍콩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최가박당>('82) - 물론 인플레로 인해 흥행수익 면에선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1위이지만, 입장권 판매에 있어선 <최가박당>이 여전히 1위를 고수하고 있다 - 이 등장했고, 4편에 이르는 <최가박당>의 속편에 연속적으로 출연해 대히트를 거둬냈다. 이쯤 되어선, 아무도 허관걸을 '허씨 3형제'의 하나로 기억하지 않았고, 허관문의 경우, 감독직에서 어느 정도 물러나 <신탐주고력>('86), <계동압강>('88), <합가환>('89) 등의 영화에 출연'만' 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까지 <미스터 부 6> 이후, 허관문의 감독작은 <쾌락정당>('86)과 <신산>('92), 단 두 편 뿐이며, 1995년의 <부귀인간> 이후로는 그나마 출연마저도 자제한 채, 조용히 은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막내인 허관영의 커리어는 허관문보다더 더 뜸해서, 3, 4년에 한 편씩 조연급으로 출연하며 '다른 두 형제에 의해 커리어에 만들어진 배우'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어졌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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