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와 여당이 법대로 15일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키겠다고 한 목소리를 내며 야당을 압박했지만 미래통합당이 악용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맞선 끝에 일단 정시 출범은 물 건너간 모양새다.
그간 막대한 권력을 갖고도 사정기관이란 명목으로 늘 사각지대에서 칼날을 피해갔던 검찰의 부패에 대해선 사실 국민들도 인식하고 있는데다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아냥 섞인 판결이 나오는 사법부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정부는 하루속히 공수처를 출범시키려 하고 있지만 야당에선 자칫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까 우려해 이 같은 움직임에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칼은 쓰는 사람에 따라 연장이 될 수 있고, 무기가 될 수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공수처를 악용할 경우 선량한 국민들이 공수처가 없던 시절보다 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보니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야당에선 공수처의 기능이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 현 정권이 또 다른 사정기관, 즉 검찰과 달리 자신들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사법기관들을 모두 휘어잡을 수 있는 ‘옥상옥’을 만들려는 게 본의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공수처 출범 이후 검찰은 약화되는 반면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 치안기관으로서 검찰보다 훨씬 빈번하게 민생과 접할 일이 많은 경찰에 과도한 힘을 싣게 되면 지금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여파가 커진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제도적 보완 뿐 아니라 시민들과의 사회적 대화 등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순서라 본다.
이 뿐 아니라 검찰개혁이란 미명 하에 현 정부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태도 공수처 설치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인 송철호 울산시장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수사를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게 청탁했었고, 이로 인해 결국 황 전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음에도 여당에선 그에게 공천을 줘 21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시켰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에서 “검찰개혁, 눈 부릅뜨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황운하 의원도 될 수 있다”고 힘을 싣고 있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정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고, 오로지 ‘내 편, 네 편’으로만 판단해 개혁을 운운하는 현 정부가 과연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수처를 제대로 운영할 것인지 공수처 출범에 찬성하는 국민들조차 불안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실정인데, 당장 여당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이라고 내세운 인사부터 논란 끝에 반나절 만에 취소할 정도로 부실 투성이 아닌가.
이 뿐 아니라 앞서 거론한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한 청와대 하명 의혹 사건 외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나 ‘드루킹 사건’의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건, 심지어 주요 지자체장들의 성 관련 비위 등 여태까지 도덕성, 준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현 정권과 여당 측 인사들이 보여준 판국에 자신들은 도마에 오르지 않으면서 공수처를 만들겠다고 하면 어느 누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이순신 장군도 ‘소유위령 즉당군율’, 즉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리겠다면서 누구보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우선 엄정하게 대했고, 아끼던 부하인 녹도만호 정운조차 그의 곤장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는 현 정권도 스스로 부르짖은 그 개혁에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면 다른 누구보다 소위 ‘내 편’부터 심판대에 올려 엄정하게 처리하는 공정성을 먼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