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성 관련 논란 속에 여당이 차지하고 있던 주요 지자체장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리면서 내년 4·7재보궐 선거의 판이 한층 커졌는데, 경남 의령 군수 선거나 치러질 줄 알았던 2021년 재보선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선출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지난 2004년 재보선 이래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서울시장의 경우 당선된다 해도 전임자의 남은 임기 1년2개월 정도만 재임하게 되는데도 벌써부터 ‘대선 전초전’이란 말까지 나올 만큼 정치권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야권의 도전과 여당의 고민 속에 일각에선 잠재적인 출마 후보군까지 속속 흘러나오고 있다.
◆ 재보선, 野 총선 패배 ‘만회’ 기회 될까…性 논란 속 여성 후보군에 ‘관심’
앞서 지난 4월 23일 오거돈 전 시장이 성 추문으로 부산시장직을 내려놓고 물러난 데 이어 돌연 모습을 감췄던 고 박원순 전 시장도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서울시장까지 졸지에 빈자리가 됐는데, 이 같은 호재에 야권은 내년 재보선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지금 박 전 시장 사망사건과 관련된 국민들의 인식도 그렇고, 최근 여러 가지 부동산 문제 등 민심이 고약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파악해서 통합당이 적절한 대책을 내놓으면 상당한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라며 “그래서 내년 4월에 실시될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비교적 낙관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이미 지난 10일에 ‘당 정강정책개정 특별위원회 세미나’에서 김 위원장은 “내년 4월이 되면 큰 선거를 두 군데에서 치러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나 부산시장 보궐선거나 경우에 따라 또 다른 선거를 전제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선거를 해야 한다”며 총선 참패를 만회할 계기로 내년 재보선에 큰 기대를 드러낸 바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이름이 서울,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일단 오 전 시장이 성추행을 인정하고 수사 받는 상황인데다 고 박 전 시장도 같은 혐의로 고소된 만큼 이번 재보선의 화두는 단연 ‘성 비위’를 비롯한 도덕성이 최우선 덕목으로 꼽힐 전망이고,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 등 청렴성, 공정성 등도 후보자들의 당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여성 인권 이슈가 크게 부각되는데다 이들 도시에서 여성시장이 탄생하면 최초란 기록도 세우게 된다는 점에서 여러 의미가 깊다 보니 여성 후보들의 약진도 기대해볼 수 있는데, 서울시장 후보 중에선 먼저 20대 국회 때 첫 입성해 통합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전희경 전 의원이 인지도가 높고 별 다른 적도 없다는 점에서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또 다른 여성 정치인으로는 지난 2011년 박 전 시장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맞붙었던 4선의 나경원 전 의원 출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 모두 규모로는 우리나라의 제1, 2도시로 그 상징성이 커 대권잠룡들도 눈독을 들여온 자리인데, 그런 면에서 서울시장 후보군엔 김 위원장의 ‘40대 대권주자론’으로 관심을 받아왔던 홍정욱 전 의원이나 김세연 전 의원은 물론 최근 ‘더 좋은 세상으로’란 포럼을 통해 킹메이커 행보에 들어간 6선의 김무성 전 의원도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김세연 전 의원이나 김무성 전 의원의 경우 부산시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울러 박 시장에 앞서 서울시장을 지냈던 오세훈 전 시장의 재도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을 지냈던 3선의 김용태 전 의원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 또 부산시장 후보로는 오 전 시장의 전임자였던 서병수 의원(5선)이 다시 언급되고 있으며 부산에 지역구를 둔 조경태(5선), 김도읍·장제원(3선) 의원도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박민식, 유재중, 유기준, 이진복 전 의원들도 부산시장 재보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 중 일부는 최근 이슈화된 부동산 논란 속에 서울 아파트 처분 가능성까지 고심할 정도로 부산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여기에 이언주 전 의원도 박 시장 논란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출마 여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내년 재보선까지 당을 이끄는 김 위원장은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통합당의 보궐선거 후보군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린 바 없다”고 밝혔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겠느냐를 연구과제로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데 이어 “비교적 참신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여 일단 중진 출신과는 거리를 두는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다.
◆ 與, 연이은 악재에 ‘당혹’…당헌 바꿔서라도 ‘저지’ 나설까
총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던 통합당에서 이처럼 ‘대선에 버금가는 선거’라며 재보선 채비에 전력을 기울일 모습을 보이자 안 그래도 오 전 시장 사퇴에 이어 박 시장 사태까지 맞은 민주당에선 당혹감을 넘어 긴장감까지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리를 비우게 된 지자체장 2명 모두 민주당 소속인데다 자연스러운 퇴진이 아니라 구설수에 휘말린 모양새여서 자칫 지난 총선까지 이어져온 선거 연승 행진이 내년 재보선에서 꺾이게 되는 것 아닐지 근심에 휩싸여 있는데, 대권잠룡이자 당권 도전을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은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수도와 제2도시 수장을 뽑는 선거이니 당의 중요한 명운이 걸렸다”며 사실상 출마 후보를 내놓자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민주당 당헌 96조 2항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이번 재보선에 후보를 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반응으로 비쳐지는데, 김 전 의원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당헌당규만 고집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돼 버렸다. 내년 재보선이 정국 전체를 가늠하며 대선과 직접적인 영향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전 의원은 당헌 개정에 대해선 “(당헌 개정은) 새로 뽑힌 당 대표가 해야 될 일”이라면서도 “수정해야 한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는데, 그는 같은 날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역 기자간담회에서도 “재보선의 승패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의 갈림길”이라며 거듭 4·7재보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던 지난 9일만 해도 “당헌은 편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던 김 전 의원조차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번복할 정도로 민주당 내 위기감은 팽배해 있는 상황인데, 비단 김 전 의원 뿐 아니라 그와 당권 경쟁 중인 이낙연 의원 역시 설령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대선 출마를 위해선 선거 1년 전인 내년 3월9일까지 물러나야 하는 만큼 판이 커진 재보선을 당 대표도 없이 치르게 만든다는 부담감을 안게 돼 이번 재보선은 여당 내 대선경쟁 변수로도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 재보선, 의원부터 장관까지 총출동?…與에 악재 될 변수는?
그래선지 여당 일각에서도 재보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이들이 몇몇 거론되고 있는데, 서울시장 후보로는 당 대표 출마를 철회한 4선 중진 우원식 의원이나 그와 마찬가지로 당내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인 4선의 우상호 의원, 재선인 박주민 최고위원과 박용진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으며 장관 중에선 서울지역 다선 중진의원 출신인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언급되고 있다.
일부에선 성 추문 논란이 ‘슈퍼 재보선’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만큼 여성 후보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장관 출신이어서 선거를 위해 현직에서 물러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남아있으며 지자체장을 뽑는 선거다 보니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점도 당선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국회의원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현역 중심이 아니라 고 박 전 시장과 오 전 시장처럼 이번에도 원외 출신 인사들이 힘 받는 선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야권 역시 동일한 이유로 현역 의원보다 지난 총선 불출마자나 낙선자들이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일부에선 고 박 전 시장의 첫 서울시장 당선에 큰 힘을 실어주며 당시 재보선에서 중도하차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원외 출신으로서 서울시장에 다시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 역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번 재보선은 최근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선두를 쫓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16일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판이 한층 더 커질 가능성도 열려 있는데, 만일 대법원이 원심에서 선고했던 벌금 300만원을 확정할 경우 이 지사는 도지사직을 상실하고 인구 1333만명의 경기도까지 재보선 대상지역으로 포함되게 된다.
또 가능성은 낮지만 청와대 하명수사, 선거개입 의혹에 연루된 송철호 울산시장이나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 등도 내년 재보선 전까지 직을 상실하는 형을 선고받게 되면 재보선 치르는 지역은 더욱 늘어나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의 향배와 차기 대선구도까지 흔들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