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리더십… '모두 합격점'
추진력…리더십… '모두 합격점'
  • 이강혁
  • 승인 2007.07.16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련 부활 일등공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해야할 일을 꼭 하자." 지난달 2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조석래(73)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이 내부에 강조한 일성이다. 내홍을 겪으면서 실추됐던 전경련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다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조석래호(號)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조 회장은 취임 당시 △거듭나는 전경련 △회원사의 단합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합격점이다. 전경련이 본연의 역할을 되찾았다는 분석이다.


▲ 재계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에 대해 ‘전경련 본연의 역할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에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 조 회장은 내부 혁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전경련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공공이 다지고 있다.
탁월한 경영으로 자산 61조원… 재계 서열 8위 자리 올라

대그룹 만들어 낸 뚝심 있고 정확한 패기 경영인으로 평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규제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

조 회장 취임 이후 전경련의 가장 큰 변화는 '확실한 목소리'다.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 본연의 역할에 그만큼 충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회원사가 없으면 전경련도 없다는 조 회장의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 회장은 붕괴직전까지 갔던 전경련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이다. '있으나 마나한 전경련'이란 재계의 성토를 보기 좋게 불식시키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전경련 사무국 내에 혁신팀을 신설하는 등 내부 혁신에도 성공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정부와 노동계에 대해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조 회장은 정부에 대해선 '규제 개혁을 통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노동계에 대해선 '노사관계 선진화 요구'를 줄곧 주창하고 있다. 역할이 부족했던 전경련에 불만이 강했던 회원사들이 조 회장 취임 이후 지지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이다.

조 회장의 이런 추진력과 리더십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32살의 나이에 효성그룹 경영에 뛰어들어 재계 전체의 수장에 오르기까지 인생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이유가 설명된다. 연륜과 자질 모두 재계 수장으로서 넘치고도 남는다는 분석이다.

그럼 조 회장의 지나온 발자취는 어떠했을까.

조 회장은 재계에서 '전문성과 학식을 두루 갖춘 CEO'로 정평이 나있다. 또 기업 경영활동 못지 않게 자타가 공인하는 '민간경제 외교관'으로의 역할도 공공이 다져왔다. 대외직책만 해도 전경련 회장을 포함해 한일경제협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위원장,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 등 10여 개에 이른다.

이런 이유에서 오랫동안 전경련 부회장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등을 맡아 국내 재계의 중심 지도자로 입지를 굳혀 왔다.


'오너회장' 보다 '전문경영인'


조 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경기고(50회)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던 조 회장. 하지만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32살의 나이에 부친인 효성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1966년부터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조 회장은 효성물산 관리부장을 거쳐 1966년 11월부터 효성그룹 성장의 발판이 된 동양나이론의 건설본부장직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섰다. 당시 울산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을 설립하면서 효성그룹을 국제적인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1981년 효성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한 뒤 지금까지 사업다각화와 끊임없는 경영혁신으로 재계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

이렇듯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했고, 공학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오너 회장'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깝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조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데는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학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조 회장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철저한 사전조사는 물론, 일의 결과와 전개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는 윤리적이고 철저히 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 해외 경제석학들의 경영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할 정도로 학구적인 스타일이다.

조 회장은 특히 평소 임직원들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격의 없는 토론을 좋아한다. 이를 통해 조직 내 열린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이는 일상 업무로 이어져 신속한 의사결정과 위기대처 능력을 키워나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다. 조 회장은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국제경제통'으로 꼽힌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탓에 재계뿐만 아니라 정계와 학계 등 다양한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재계와 세계의 가교역할에 적임자인 셈이다.

단적으로 2005년 2월에는 한일 경제협회 회장과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돼 활동하고 있다. 한일 양국간 경제협력과 교류활동 강화에 힘쓰는 한편 대일 무역역조 현상 등 양국간의 경제문제 해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까지는 1천1백개 다국적기업이 참가하고 있는 태평양연안경제협의회(PBEC)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로 인해 한국 재계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PBEC는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모여 실질적인 경제문제를 논의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조 회장의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조 회장은 평소 "아시아 나라들 중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 처음으로 FTA를 체결해 시장을 넓혀야 양국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는 한일양국이 아시아의 통합 구축을 기반으로 세계 리더로서의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다.

조 회장은 한국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섬유, 화학, 중전기 등 제조업을 이끌며 신기술을 선도해 온 공로로 얼마 전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부터 명예 공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사실 조 회장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불어닥친 IMF 사태는 그에게도 최대 시련을 안겨줬다. 한때 재계 10위권이던 효성그룹이 30위권으로 추락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프로정신에 바탕을 둔 선진적인 경영시스템을 채택해 성과 중심의 경쟁력 있는 기업체질을 확보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그 결과 조 회장이 이끄는 효성그룹은 현재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최대의 중전기메이커로서 핵심제품의 탁월한 경쟁력도 자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공업, 석유화학, 정보통신 등에도 진출해 각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효성그룹은 현재 아시아와 미주, 유럽 등 세계 각지에 24개의 해외 현지법인을 세운 글로벌기업으로 재도약한 상태다.

한편 조 회장은 경영만큼이나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오너로도 유명하다. 대학교수의 꿈을 키우며 공부에 전념한 탓에 당시로서는 결혼적령기가 지난 32세의 늦은 나이에 송인상 전 재무장관(동양나이론 회장) 3녀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한 조 회장은 현준·현문·현상 등 세 아들을 뒀다.

현재 장남 조현준 사장(39)과 차남 조현문 부사장(38), 3남 조현상 전무(36) 등 세 아들 모두가 효성그룹 핵심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재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특히 조 회장은 자식 농사에 있어서 효심과 우애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부친인 고 조홍제 회장이 생전에 가문의 법도와 형제우애를 강조해, 그 영향으로 조 회장 역시 이점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쳤다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실제 조 회장과 양래(한국타이어 회장), 욱래(동성개발 회장) 등 3형제는 1974년부터 인공신장기를 달고 1984년까지 투병생활을 했던 고 조홍제 회장에게 10년 동안 자신들의 피를 뽑아 수혈하는 효심으로 모범을 보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조 회장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인품이나 경영능력이나 흠 잡을 데가 없다"면서 "전경련 수장으로 재계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지칠줄 모르는 적극적인 대외행보로 회원사들의 신망이 두텁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