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
대통령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
  • 김상미
  • 승인 2004.07.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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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불리한 정보 고의 누락 의혹 제기
김선일 피랍 ‘정부 정말 몰랐나’ 불볕더위에 국회가 김선일씨 피살사건 청문회로 인해 그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국회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조사특위'(위원장 유선호)는 지난달 30일 청문회를 열어 김씨 피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과 향후 유사사건 재발 방지대책 등을 추궁했다. 여야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과 외교.안보라인 실무자들을 상대로 주이라크 한국대사관 등 정부의 피랍사실 사전인지 여부 및 사건대응 과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청문회에서는 특히 이라크 주둔 미군측의 실종 통보 여부를 놓고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의문투성인 김 사장의 행적과 피랍 비디오를 입수한 AP통신이 서울지국을 통해 피랍 여부를 문의한 이유, 외교통상부의 허술한 재외교민 보호체계에 질문이 집중됐다.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사흘간 진행되는 이번 청문회에는 반기문 외교장관, 유보선 국방차관, 장재룡 외교부 본부대사 등 외교.국방라인 실무자들 등 관련 증인 및 참고인들이 참석, 신문에 응했다. 김 사장 자체 협상 의문투성이 하지만 한달 이상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조사 중인 감사원이 28일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에 조사진행상황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들을 명쾌하게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故) 김선일씨를 구출하기 위한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자체 협상은 의문 투성이일 뿐더러 `협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허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토대로 피랍된 경위를 살펴보면 지난 5월31일 오후 팔루자 인근 미 해병 리지웨이 캠프에 물품을 배달하고 바그다드로 돌아오던 가나무역 소속 김선일씨가 이라크인 운전사와 함께 납치됐다. 김천호 사장은 6월1일 가나무역에 고용된 이라크인 E모 변호사에게 김씨의 실종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3일 실종을 확인하고 5일 바그다드를 방문중이던 서울 O교회 강모 목사와 자신의 형인 비호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김 사장은 8일 팔루자 지역을 수소문하던 이라크인 직원들을 통해 김씨가 "무장세력에게 잡혀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문제가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에는 알리지 않은 채 E 변호사를 통해 독자 구출을 시도했다. 구명협상도 보고서에 따르면 거의 전무하다싶은 상태를 알 수 있다. E 변호사는 지난 6월9일 성직자협회 간부인 H씨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H씨는 사건 개입은 거절했지만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 E 변호사는 H씨로부터 계속 연락이 없자 그가 바그다드로 돌아온 15일 다시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H씨는 이때 팔루자의 유력자 A씨를 만나보라고 추천했다. E 변호사는 17일 A씨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팔루자 방문 과정에서 중재자가 E변호사에게 "용기에 감동받았다"면서 먼저 접근했고 이후 그의 도움을 받게됐다. 그러나 김 사장과 E 변호사는 감사원 조사에서 이 `중재자'의 신원에 대해 함구했다. 중재자는 바로 다음날인 18일 E변호사에게 "잘 될 것이다"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이튿날인 19일에는 "일이 틀어지는 것 같다. 파병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21일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무장단체가 김씨 살해를 위협하는 비디오를 방영했다. 인질협상 했다는 E변호사, 김씨 피살 10시간 후에도 ‘몰라’ 감사원은 김 사장이 "E 변호사를 통해 다각도로 구출협상을 했다"는 주장 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우선 E 변호사는 인질협상 경험이 없고, 여성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은 중동의 특성을 감안할 때 충분한 역할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자신은 "생명을 무릅쓰고 활동했다"고 주장하나 보수에 대한 약정도 없었다. 성직자협회 H씨와 팔루자의 유력자 A씨가 구명협상에서 도움요청을 거절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무장단체측 `중재자'라는 인물도 "E변호사의 용기에 감동받았다"며 미군 첩자로 오인될 수도 있을 위험을 무릅쓰고 자발적으로 접근해왔다는 점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더구나 그가 김씨 피살 10시간 뒤에도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파병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전화한 점은 그가 납치단체와 직접 접촉은 했는지, 실존하는 인물인지 등에 대한 의문을 근원적으로 제기하는 대목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김 사장은 무장단체로부터 어떤 요구조건도 전해 받지 못했다고 하나, 협상을 못했기 때문에 요구조건도 몰랐던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부 피랍인지 의혹 특히 청문회에서 정부의 김씨 피랍 사전인지 여부와 외교.안보라인의 문제점,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 행적을 집중 추궁했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5월 31일 김씨 실종 후 무려 23일이나 경과한 뒤인 6월 23일 알-자지라 방송 보도 때까지 김씨 피랍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데 대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김씨 실종 여부에 대해 AP통신 서울지국이 6월 3일 외교부에 정식 문의하기에 앞서 이라크 현지 대사관 등에도 확인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피랍사실 조기인지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려 했다.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은 AP통신 한국기자와 통화한 정모 외무관에게 "일단 이런 전화를 받게 되면 이라크에 주재하고 있는 자국민 명단에 이런 사람이 있는지 우선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P기자에 동행명령장 발부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상대로 "지난 6월 2일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을 출입한 사람 가운데 AP통신 현지기자인 `Reid'와 이름이 비슷한 `Raid'가 출입한 사실이 출입명부에 나와 있다"며 "AP통신 현지 기자가 테이프를 입수한 직후 대사관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린 게 아니냐"고 물었다. 또한 국조특위는 청문회에 불출석해 증인 신문을 거부한 AP통신 서모 기자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국조특위는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하고, 동행명령 집행을 위해 입법조사관과 국회 경위를 AP통신 서울지국에 보냈다. 간사 협의에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서 증인은 외교부의 피랍사실 사전 인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결정적 증인"이라며 동행명령을 주장했고,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도 "청문회에 나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전여옥 의원도 "AP통신 바그다드 지국이 이라크대사관과 이라크 주둔 미군에겐 문의한 사실은 없는가"라고 가세했다. ‘테러첩보’ 국정원은 알았는데 왜 NSC는 몰랐나 국가정보원이 지난 5월 10일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한 가나무역 테러첩보를 사전 입수했는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외교부는 왜 이같은 첩보를 보고받지 못했는지도 쟁점이 됐다. 한나라당 권영세의원은 "국정원이 NSC와 외교부에 테러첩보를 통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지파견관이 이라크대사관 전직원에게 첩보를 전파한 만큼 이라크대사관이 외교부에 사후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부가 NSC에 보고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최 성 의원은 반 외교장관에게 "테러첩보가 국정원 보고채널을 통해서만 보고되고, 이라크대사관은 첩보를 무시하고 외교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정부에 불리한 정보 고의 누락 의혹 제기 또 여야는 김씨 납치 이후 정부의 외교안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당 의원들은 이라크 대사관과 외교부의 초기 대응의 미숙함을 지적하며 교민보호법 제정 등 적극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불리한 정보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이라크대사관과 외교부는 김천호 사장이 밝힌 피랍 날짜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곧바로 NSC에 보고하지 않은 채 최소한 12시간이 지나서야 보고했다"며 "외교부가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성곤 의원은 "테러활동이 발생할 가능성도 예견할 수 있었고, 첩보도 인지됐지만 현지 교민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재외국민의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조항에 따라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종합적인 교민안전대책을 세워야한다"고 덧붙였다. 유승희 의원은 "국가재난 관리계획에 따르면 전쟁위험지역에 대해 자체 점검표를 작성하고 현지 관계당국과 연락 및 협조체제를 구축해야한다"며 "이 같은 관리계획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 한나라당 박 진 의원은 "김씨를 납치한 `유일신과 성전'은 과격단체라는 각국 정보기관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공식 첩보수준의 보고를 근거로 희망적인 견해를 외교부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라며 "NSC의 코드에 맞춰 대통령의 입맛에 맞을만한 정보만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한 것"이라고 따졌다. 박 의원은 또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인질 납치 사건의 경우 주재국과 협의해 합동조사반과 인질구출팀, 협상팀을 파견하도록 돼 있다"며 "국방부가 김씨에 대한 구출작전을 제안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도 "김씨의 납치 동영상이 알-자지라 방송에서 방영된 이후 NSC 15번, 외교통상부 19번의 회의를 열었지만 같은 내용만 반복하면서 우왕좌왕했다"며 "자동적이고 신속한 지휘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도 "이라크대사관은 지난 4월 가나무역 직원 13명을 `체류불가피'로 결정, 출국권고대상에서 배제했다"며 "정부가 교민에 대한 테러를 사전에 예방할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또 필리핀이 자국민이 납치된 직후 이라크 철군방침을 밝힌 것을 언급하며 "김씨가 납치된 후 정부가 추가파병방침을 재확인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김 사장, “거짓 진술해 마음 아팠다” 특히 국조특위는 김천호 사장의 행적을 파고들었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김선일씨에 대한 구명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김씨 피랍 인지시점과 석방을 위해 접촉한 인물 등 당시 김 사장의 행적을 캐는 데 주력했다. 특히 김 사장이 김씨가 납치된 뒤 자신의 행적에 대한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한 이유를 집중 추궁했다. 특위 이라크 현지조사단장인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은 김 사장을 상대로 "지난 5월 이후 김씨 사건이 알-자지라에 보도되기 전까지 이라크대사관으로부터 테러 위험에 대한 경고를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내용으로 전달받았는가"라고 묻고, 이런 정보를 직원들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를 추궁했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김 사장이 지난달 21일 연합뉴스 바그다드 특파원과 인터뷰한 내용을 다음날 현지 대사관 진술서에서 번복한 데 대해 "6월23일에는 이틀 전 인터뷰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인터뷰를 하고 24일에는 대사관에 가서 다른 내용의 진술서를 쓰는 등 나흘간 3가지 점에서 다른 진술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거짓 진술을 해서 마음이 아팠다"면서도 "미군의 압력은 없었다"고 답했다. 같은 당 권영세 의원은 김 사장에게 "6월 22일 오전 미군이나 미군 군납 업체 관계자를 만났는지, 만났으면 무슨 얘길 했느냐"며 미군의 사전 인지 여부를 캐물었고, 김 사장이 김씨와 동행한 현지 운전사를 6월21일 만났을 가능성도 따졌다. 권 의원은 또 "팔루자 무장단체의 지도급 인사가 김 사장에게 4차례나 직접 경고했다는 설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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