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검증청문회 이후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검증청문회가 무엇하나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했기에 이명박 ? 박근혜 경선 후보를 둘러싼 의혹의 불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커졌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박근혜 후보가 고 최태민씨와의 관계에 대해 낭설로만 떠돌던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이 직접적인 언급을 하면서 이 문제가 ‘꺼지지 않을 불씨’가 될 것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 등 재산비리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제대로 된 검증이 되지 못했기에 청문회 이후 앞 다퉈 “국민이 납득할 만한 명쾌한 의혹해명은커녕 불신과 짜증만 증폭시킨 ‘면책청문회’였다”, “국민과 언론을 우롱한 기만극이었다. 박 후보는 독재자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기에 급급했고, 이 후보는 형님과 처남의 등 뒤에 숨기 바빴다”는 평을 내 놓은 여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또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하는 검찰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나라당이 검증청문회에서 다룬 사안들을 뒤돌아보고 검증청문회가 경선에 줄 파장을 짚어본다.
박근혜, 최태민씨와의 관계부터 재산, 아이문제까지 줄줄이
“수면 위로 문제가 드러난 이상 집중포화 피할 수 없는 일”
7월19일 오전 9시부터 백범기념관에서 한나라당 검증청문회가 열렸다. 오전에는 박근혜 후보가 오후에는 이명박 후보가 각각 검증위원회로부터 적지 않은 질문공세를 받았다.

오전에 진행된 박근혜 후보의 청문회는 ‘최태민 청문회’에 다름 아니었다. 대부분의 질문들이 고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등 사생활에 집중됐다. 또 육영재단, 영남대 비리 등 박 후보를 둘러싼 굵직굵직한 사안에는 최 목사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검증위원들은 박 후보의 검증 중 최우선 과제가 된 최 목사와의 관계를 집중 추궁했다. 최 목사의 비리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내사와 육영재단 운영 개입 논란, 최 목사 일가의 육영재단 자금착복 의혹, 최 목사의 딸 최순실씨가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보유했다는 의혹 등이 연이어 박 후보를 강타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최 목사의 각종 비리 의혹 등에 대해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혹은 제기됐지만 실체가 확인된 것은 없다”는 말로 공방을 피해갔고 육영재단 재산을 최 목사 일가가 착복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천부당만부당하다. 공익재단은 매년 감사를 받는다”고 반박했다.
정수장학회와 관련 “강제 탈취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강제탈취가 아니라는 입증 자료가 장학회에 있다”고 말하는 등 제기된 모든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진실’이면 진짜 ‘천벌’
청문회 도중 검증위원들이 “최 목사 얘기가 나오면 ‘천벌 받을 일’이라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하자 박 후보는 “네거티브를 하다못해 나중엔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애가 있다’는 등의 얘기도 나왔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천벌 받을 짓이 아니냐”며 “애가 있다는 근거가 있으면 데리고 와도 좋다. DNA(유전자) 검사도 해주겠다”고 최 목사와 자기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박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의혹으로만 떠돌던 최 목사와 자신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세간의 소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박근혜 의원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말이 나돈 것은 지난 1990년 10월 경 서울 능동에 있는 어린이재단분규사건 때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이후 박 후보가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부터 악선전 루머로 등장해 널리 번졌다 사라졌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선거에 다시 등장하자 급기야 박 후보가 직접적인 언급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후보의 발언은 ‘아이’ 의혹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의 발언으로 관련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겠냐”고 박 후보의 말을 빌미로 삼아 숨죽이고 있던 각종 의혹들이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정치분석가는 “항간에 떠돌던 ‘아이’ 문제에 대해 박 후보가 DNA검사까지 해 주겠다며 강경 대응한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라며 “결혼하지 않은 박 후보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바로 최 목사와 불륜관계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곧 박 후보에게 한 여자로써, 한 인간으로써, 그리고 정치지도자로써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될 치명적 사안이 된다”고 박 후보가 정면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속내를 분석했다.
박 후보는 이 외에도 79년 10.26직후 전두환 합수부장으로부터 6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5·16군사쿠데타의 성격에 대해 ‘구국혁명’이라고 답해 “역사의식의 빈곤, 천박한 역사인식의 소유자”라는 정치권 일각의 비판에 휩싸였다. 특히 5.18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데 대해 광주시민들과 호남대중은 크게 분노했다. 박 후보는 유신체제에 대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예봉을 빗겨갔다.

이어 오후에는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재산 의혹과 투자자문사 BBK 주가조작 연루 ▲홍은프레닝의 천호동 개발 특혜 의혹 ▲서초동 땅 고도제한 완화 문제 ▲옥천군 땅 개발투기 의혹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및 노조설립 방해 ▲김유찬 전 비서관 관련 범인도피 및 위증교사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중점이 된 것은 재산문제. 이 후보는 차명재산 의혹이 제기된 ‘도곡동 땅’에 대해 “저와 관련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자금출처에 대한 처남 김재정씨와 큰형 이상은씨의 소명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에 “22년 전의 일을 다 아귀가 맞게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어디서 돈을 다 만들어서 샀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명박, 끊임없이 이어지는 친인척 재산형성 의혹 한 가득
“李, 핵심 비켜가기만 했지 재산관련 논란 해명한 것 없어”
이 후보는 또 “(도곡동) 그 땅이 내 땅이면 얼마나 좋겠느냐. 내게 차명재산은 없다”며 “(도곡동 땅을 산) 1985년에는 정치를 생각하지 않아 개인 재산을 사는데 남의 이름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고 차명의혹을 일축했다.
검증위원이 “이상은, 김재정씨의 거의 모든 계좌가 거주지와 거리가 먼 이 후보 소유의 건물이 있는 서초동 법조단지 지점에 개설돼 있다. 보험사 예금, 양도세 납부, 다스 증자대금 납입 등 여러 건에서 두 사람이 동일한 일자에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자금이 한 사람에 의해 관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날 선 질문을 했지만 “서초동에 ‘다스’ 서울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부인했다.
주가조작 혐의가 있는 BBK의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는 의혹과 관련 재미교포 김경준씨의 미국 법정 진술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 주장은 미국 법정에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기각됐다. BBK와 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청문회 중 “재산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제 작은 성취(재산)가 저 만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제 성취라는 선물을 준 우리 사회에 감사하며, 제 성취를 우리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밖에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이 후보는 질문의 요지를 유유히 피해갔다.
한치 앞 몰라봐
한나라당의 검증청문회는 그 후일담이 보다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청문회 직후 열린우리당은 “실체적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부실한 질문과 답변으로 변죽만 울린 실패한 청문회”, 통합민주당은 “한나라당 연출에 이명박, 박근혜 주연의 짜고 치는 면피용 검증 대국민 정치쇼일 뿐”이라고 이명박 박근혜 후보를 싸잡아 비난했다. 다른 대선 예비후보들의 반응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들여다보면 이 후보측 박형준 대변인이 “이 후보의 속 시원한 해명, 진솔한 답변이 국민을 안도하게 하고 정권교체의 유일 대안임을 확신하게 해준 뜻 깊은 청문회였다”고 평가한 반면 박 후보측 이혜훈 대변인은 “이 후보의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됐다. 이 후보로는 절대 본선을 못 이긴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해 향후 검증 공방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곧 검찰 수사로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에 실마리가 잡히고 언론 취재로 옥천군 주민들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면서 사태는 새롭게 진전되고 있다. 이 후보의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씨는 “이 후보 관련 사건의 각종 의혹은 이제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초기 단계가 이 정도이니 본 게임으로 가면 점입가경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번 검증청문회에서 다시 한 번 그의 후안무치함을 확인했다. 직접 나설 때가 된 것 같다”는 말로 새로운 후폭풍이 몰려 올 것임을 시사했다.
검증청문회 후폭풍은 이제부터
검증청문회가 후보들의 각종 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일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후폭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청문회에서 후보가 혐의를 부인한 내용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척을 보이면서 후보 검증에 대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이번 검증청문회가 검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검증을 이끌어 내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를 둘러싸고 기왕에 제기돼온 “재산도피 의혹과 아이문제 등에서 최태민 목사의 지뢰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는 도곡동 땅 등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자신이 깨끗하다는 것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흔들리고 있는 지지율을 다잡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