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늦게 찾아온 '우편배달부'
영화보다 늦게 찾아온 '우편배달부'
  • 이문원
  • 승인 2004.08.1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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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1995년작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소설로 잘 알려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사실 출간된지 좀 시간이 지난 소설이다. 책이 나왔을 당시, 당시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아이템'이었던 영화 <일 포스티노>의 후광을 입으려 여러 방면으로 홍보했던 듯한데, 그 결과야 미지수이지만, 이제 <일 포스티노>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질 무렵에 이르러 다시 한번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104번'으로 등장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마치 '영화'가 '모체'인 듯한 착각 속에서 읽혀졌던 초판 당시와는 또다른 감흥을 선사해주고 있다. 먼저, 파블로 네루다의 팬이라면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며, 그처럼 폐부를 찌르듯 날카롭고 풍부한 함유를 지닌 시를 써낸 이가 이처럼 지극히 감상적이고 안온한 에피소드를 자신의 실생활에 남겼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사는, 당시 '이슬라 네그라'에 거주했던 파블로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 유일한 업무였던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의 이야기를 다룬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그러나 이 작은 어촌의 소박한 인물,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연서처럼 사용해 사랑을 이룬 인물이 어떻게 네루다에게 영향을 받아 정치현실에 뛰어들게 되었는지를 더욱 세밀하게 다루고 있으며, 한 인물이 사회현실에 눈 떠가는 과정, 개인적 삶과 국가차원의 민초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뒤얽혀가는 지를 절묘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영화에서 그닥 보여지지 않은 '투사로서의 네루다'가 잘 묘사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며, 영화에서처럼 '인간적인 교류'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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