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교수의 ‘가짜 학력’ 파문의 연장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8월3일 동국대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물의를 빚은 신정아 교수를 파면하기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일단락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여전히 ‘학위 위조’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제2, 제3의 신정아가 계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명인사들의 학력 위조 커밍아웃이 줄을 잇는 셈이다. 게다가 대학은 물론 전국의 유명 학원 강사들까지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면서 한국은 요지경 속이다. 신정아의 ‘가짜 학력’ 후폭풍을 취재했다.
KBS 라디오 ‘굿모닝 팝스’를 7년째 진행 중인 유명 영어강사 이지영(38)을 시작으로 인기 만화가 이현세(51)도 최근 출간한 골프만화 ‘버디’ 3권에서 그 동안 알려져 왔던 자신의 학력이 대학중퇴가 아니라 고졸임을 털어놨다.
저명인사 허위 학력 ‘커밍아웃’
이현세는 “학력이 콤플렉스였다”며 “만화가 히트한 뒤 사람들이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곤 했는데 만화가라면 한수 내려 보는 풍토에서 차마 ‘고졸’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지영도 지난 7월1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제작진을 통해 “멈추고 싶었는데 참으로 오핸 기간을 와버렸다”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전달했다. 그동안 영국 브라이튼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의 최종학력은 고졸로 밝혀졌다.
영화 ‘디워’ 개봉으로 흥행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심형래(49) 감독도 뭇매를 맞았다. 그동안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지난 7월25일 고려대측에서 “심 감독이 식품공학과를 졸업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공식발표하면서 학력 위조 파문의 연장선을 이었다.
이에 대해 심 감독은 “직접 고려대 4년제 학부 과정을 마쳤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다만 1977년 고교 졸업 후 당시 고려대 식량개발대학원 식품가공과를 1년 수료했고, 1992년 고려대 최고위 과정을 수료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황씨를 기억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신정아 파문과 비슷한 면면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황씨는 신정아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비해 학력과 경력이 지나칠 만큼 화려하다는 사실에 의혹의 눈길을 받게 되자 자신을 싫어하는 음해세력의 주장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그의 이력서에 등장하는 모든 학교와 직장에서 보내온 확인서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방송계를 떠났다. 황씨 역시 최종학력은 고졸학력이었다.
유명 학원가 전면수사 ‘초긴장’
이후 황인태를 버금갈 만한 화려한 이력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카운슬러인 노혜진도 가짜 학위가 들통 났다.
그는 연세대 출신으로 보스톤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를 딴 학위를 자랑하며 ‘부자들의 습관을 훔쳐라’, ‘1등 아이 성격 부모가 만든다’ 등 심리상담 서적을 출간했다. 또 한국 최초의 성격진단 카운슬러라는 칭호를 받으며 줄리엣카운셀링센터 원장으로 KBS ‘아침마당’과 EBS 특강 등 최근까지도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항간에는 노씨의 전 남편이 여상 출신이라고 제보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정작 노씨는 자신의 학력 위조설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에는 49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던 황라열(30)이 고려대 의예과 입학,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과 격투기 프로선수 자격이 있다는 허위 사실이 발각돼 학생들에 의해 탄핵되는 사태까지 있었다.
이상락 전 의원 역시 초등학교 졸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졸로 후보 등록 서류에 허위 기재해 대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교육계에서 학력위조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한편, 강남·목동·노량진 학원 학위위조를 염두한 경찰의 전면수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강남지역 일대 학원가 강사들은 철퇴를 맞았다.
지난 8월3일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고 구입한 가짜 대학졸업증명서를 학원 강사 취업에 사용한 사문서위조 혐의로 전ㆍ현직 학원 강사 31명이 적발됐다. 수사를 맡은 송파경찰서는 앞으로 혐의가 의심되는 70여명을 상대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학원이 밀집된 지역의 관할 경찰서인 동작경찰서와 양천경찰서도 수사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학원가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인 셈이다.
학위 검증 철저한 관리 필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의 ‘학벌주의’와 ‘간판문화’를 지적했다. 출중한 실력과는 별개로 학력, 경력 등 ‘간판’에 의해 사회적 성공이 좌우되는 현 풍토와 개인적인 절망감, 도덕적 해이 등이 조합돼 ‘진짜 같은 가짜’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가짜 학력 파문에 휩싸인 유명 인사들의 공통점은 ‘가짜’를 뛰어넘을 만큼 실력이 출중해 시민들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단체들은 “학력 위조 재발방지를 위해 학위 검증에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