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당한지 6일 후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사과 입장을 내놓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충격 받다 못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문 대통령이 사과랍시고 꺼낸 첫 마디부터 그 진정성을 의심케 했는데, 피해자 유족을 향해선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되었는지 경위와 상관없이”란 ‘월북설’ 뉘앙스를 담은 사족까지 붙여가며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반면 김정은이 통지문을 통해 보내온 소위 ‘사과 표명’에 대해선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 “각별한 의미”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유족보다 김정은을 더 의식하는 듯 떠받들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국민 살해에 대해 북한에 분명한 책임을 묻기보다 북한과의 관계 발전에만 관심 있는지 “이번 비극적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는데, 본인이 제3자인 유엔사무총장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면서 어찌 자국 국민이 피살당한 판국에 대화, 협력을 꺼내면서 관계 진전의 계기란 표현까지 쓸 수 있는 건지 정상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 철저히 묻고 세월호 유족들에게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피해자 유족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대통령부터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습부터 분명히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국 국민이 총살을 당한 사건을 대북관계 개선과 같은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삼아보려는 발언을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민이 피살된 사건을 보고도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셈 아닌가.
그렇다고 여당이라도 정신을 차렸는지 돌아봐도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어 기가 찰 노릇인데, 유족이 ‘월북할 이유가 없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황희, 민홍철 등 민주당 의원들은 정작 근거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 한 목소리로 “월북은 사실로 확인되어 가고 있다”고 피살 공무원에게 월북자란 낙인을 찍어가고 있다.
여기에 정부에서도 국방부 뿐 아니라 해경까지 희생자가 월북한 것이라며 개인 책임론에 무게를 싣고 있는데, 당정 주장대로면 월북자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자체도 상식적으로 설명되기 어렵지만 소위 ‘월북자’란 희생자가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신원을 밝혔고 불법 침입했을 뿐 월북 관련해선 일언반구 없던 북한 측 통지문 내용도 모두 거짓말이라고 보면 되겠는가?
이미 서로 말이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와 북한 중 어느 한쪽이 책임 회피를 위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월북설이 사실이라면 북한 통지문이 거짓말과 변명투성이란 의미인데 결국 문 대통령이 그토록 극찬했던 이번 통지문의 김정은 사과 역시 아무런 진정성 없이 대한민국을 또다시 우롱하고 유족과 국민들을 모두 기만한 셈 아니겠나.
거기다 문 대통령마저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 말미에 추석을 운운하면서 아버지를 잃은 채 눈물 젖은 추석을 맞을 두 자녀엔 한 마디 없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 명절 연휴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거론하며 유족을 두 번 죽였는데,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대를 표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몇 년 전의 그 문재인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아울러 여당의 김태년 원내대표는 북한이 정부의 공동조사 제안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시점임에도 “북한이 지난 박왕자씨 피격 및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 일절 사과하지 않았단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또다시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서 벌써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고양이에 생선 맡기는 격인 북한과의 공동조사가 설령 추진된다 해도 정부와 북한의 엇갈린 주장 중 정부가 거짓말했었던 거라면 행정수반인 문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고, 만일 북한이 거짓말했던 거라 해도 북한 통지문에게 완전히 속았으면서 김정은의 기만적 사과에 감읍한 격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문 대통령과 여당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