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최초 공개모집으로 임명된 이우재(71) 회장. 그가 지난 7월31일에 발생한 교통사망사고와 관련해 ‘뺑소니’ 의혹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마사회 재임 2년 동안 이 회장은 ‘깨끗한 마사회’, ‘농촌을 위한 마사회’를 목표로 사회공헌사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다. 이로 인해 사회공헌은 물론 윤리경영 성과를 안팎에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 교통사망사고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 회장의 업적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있다. 게다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뺑소니 의혹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 조사결과에 따른 이 회장의 거취에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뺑소니’ 의혹까지 불거져 나온 상태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주창해왔던 ‘클린’ 경영과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터널 내 구조물 친 것으로 착각”
사건을 수사 중인 충남 공주경찰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7월31일 오전 11시 30분경 공주 연미산 터널 안에서 체어맨 승용차를 몰고 가다 경운기를 들이받아 경운기 운전자 오모(69)씨가 숨졌다.
당시 이 회장 보다 앞서 운전하던 김씨는 백미러를 통해 사고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이 회장은 터널 밖으로 300m가량 운전했고, 최초 신고자보다 6분이 지난 11시 38분에 이 같은 사고를 경찰에 알렸다.
이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사람이 아닌 터널 내 구조물을 친 것으로 잘못 알았다”며 “사고 직후 터널 밖에 차를 세우던 중 뒤따라오던 화물차 운전자가 사람이 다쳤다고 말해 현장에 다시 가보니 이미 피해자는 숨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터널 안에서 통화가 잘 되지 않아 터널 밖으로 나와 신고를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건 현장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이 회장의 진술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면 이 회장의 뺑소니 의혹은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이 회장이 300m가량 승용차를 운전해 전진했다는 사실이다.
최초 신고자인 김씨는 “‘꽝’하는 소리에 백미러를 보니 경운기를 들이받은 검은색 차가 사고충격으로 서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람이 숨질 정도로 사고가 났다면 운전자가 들이박은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두 번째는 터널 안에서의 휴대폰 발신여부다. 이 회장은 터널 안에서 통화가 되지 않아 터널 밖으로 나와 신고를 했다고 진술했지만, 최초 신고자는 사고가 있은 직후 경찰에 신고했다. 터널 안에서도 충분히 통화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사건이 발생한 공주 연미산 터널은 총 700여m 길이인 2차로 일반통행 터널로 당시 400m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최초 신고자는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신고를 했다고 밝혔지만, 거리상 터널 안에서 휴대폰 발신이 됐을 확률이 크다.
세 번째는 이완구 충남도지사가 이 회장의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 경찰에 전화해 사건 경위를 물어봤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행동은 이 회장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사건이 발생한지 5일 만에 언론에 보도된 것도 이완구 충남도지사의 부탁을 받고 경찰이 숨기려 했다가 발각된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이완구 충남도지사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이 회장의 사고 당일 2시 약속이 있었는데 이 회장으로부터 갑자기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연유를 물은 뒤 사고 소식을 듣게 됐고, 이로 인해 도의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생겨 경찰에 사건을 문의한 것일 뿐 이 회장의 선처를 부탁한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마사회측도 동일한 입장이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충남지역내 승마장 건립과 관련해 이완구 충남도지사를 만나러 가는 도중 사고가 났으며 터널 안에서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약간 이동했을 뿐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며 뺑소니가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경찰 재조사, 유가족 합의 거부
공주경찰서 역시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정면 부인하고 나섰다. 공주경찰서 류연문 교통사고조사계 과장은 “사건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면서 “굳이 공지할 사안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류 과장은 뺑소니 시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실체를 확인하지 못할 만큼 터널 안이 어두웠는지 뺑소니 시도 여부에 대해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고 당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터널 안 ‘밝기’를 측정할 계획”이라며 “사고 당시에는 날씨가 좋았으나 최근 장마로 인해 날씨가 흐려 ‘밝기’를 측정하기가 어렵게 됨에 따라 사건 조사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회장은 사건이 확산되면서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지난 6일 이택순 경찰청장의 재조사 지시에 따라 공주경찰서가 ‘발칵’ 뒤집혀진 만큼 경찰 조사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마저 합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뺑소니 혐의로 밝혀질 경우 이 회장은 명예롭지 못한 마사회 퇴임을 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세인들의 관심도 고조된 상태. 이 회장의 됨됨이를 근거로 재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일생을 농업인으로 지냈다”는 이 회장의 고백처럼 그의 ‘농촌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의 외할아버지는 3만석꾼으로 익히 알려진 사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부자는 아니었다. 외할아버지 논에서 농사를 짓고 일하던 부모의 모습을 아직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민출신이 이 회장을 경륜과 경험을 갖춘 ‘농업전문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회장은 1936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예산농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수의과대학과 건국대 대학원 농업경제학과를 수료했다. 젊은 혈기에 농민운동에도 뛰어들었고,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후 1965년 한국농업근대회연구회를 설립해 사무국장을 지냈다. 국민대 농업경제학 강사, 대한수의사회장과 농어촌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그의 경력은 이력서 한 장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한국 농민운동사’와 ‘한국경제와 농업문제’ 등 농업과 관련한 저서도 다수 펴냈다.
덕분에 마사회 회장도 농민단체가 추천하고 후원해 지명됐다. 그가 마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때는 지난 2005년 4월22일. 취임식이 있은 직후 이 회장은 외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잘 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전해졌다. 그를 둘러싼 낙하산 인사 논란을 의식해서다.
“마사회 비리 척결에 인생 걸겠다”
여당의 전직 의원이 ‘노른자 위’ 공기업인 마사회장에 선임됐다는 사실은 이 회장의 경력과 상관없이 의혹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사회 전임 회장인 윤영호와 박창정이 대를 이어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 받은 혐의로 기소되면서 마사회는 공기업 비리의 전형적이란 비판까지 받아야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당당하게 공개경쟁을 거쳤기 때문에 낙하산에 비유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역설하는 한편 “마사회 비리 척결에 인생을 걸겠다”며 선포했다.
이 회장의 취임이 있은 2주 후 마사회 노사 양쪽은 7백80여명의 전 임직원이 모인 가운데 청렴서약서에 서명했다. 또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업무 결제 과정에서 기안자나 결재자 모두 ‘청렴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문구를 클릭하도록 강제했다.
부서별 업무보고 과정에서 고의가 아닌 실수로 생길 수 있는 부정부패의 작은 구멍이라도 일체 단속하겠다는 이 회장의 심산이었다.
이 회장은 또 부조리 예방 등 감시기능을 위해 ‘부패방지팀’을 신설하고, 유흥업소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클린카드제’를 도입했다.
본인 역시 마사회에서 제공되는 대형 승용차는 업무 시에만 사용하고, 회장 몫의 법인 카드도 절대 개인적인 용도로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 회장은 부정, 비리 신고에 최고 1천만원의 포상금까지 걸면서 ‘투명 경영’을 강조해왔다.
뿐만 아니다. 이 회장은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펼쳤다.
지난해 8월 ‘바다이야기’의 파문으로 경마가 대표적 사행산업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을 때도 이 회장은 “승마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라며 “경마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익은 농촌복지와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농어촌복지와 환경,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마사회는 전체 이익금의 60%를 매년 특별적립금으로 두고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사회에 환원한 금액만 무려 1조1천9백44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한국 경마의 인식전환을 위해 최근 ‘비전2016’ 계획을 세우며 재임 기간 동안 승마를 대중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유도선수의 발목 부상으로 인한 수술비 전액을 마사회에서 긴급예산을 편성해 부담하고 나섰으며, 마사회의 전 임직원이 ‘KRA Angels’ 단원이 돼 봉사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경마 전체 이익금 60% 사회 환원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마사회는 국가청렴위원회가 주관한 2006년 공공부문 청렴도 조사에서 전체 3백4개 기관 중 6위를 기록했다. 농림부 산하 기관 중에서는 3위의 좋은 성과를 거뒀다.
기획예산처가 주관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전년대비 15점을 상승한 76.9점을 기록하며 최우수 향상그룹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사회공헌은 물론 윤리경영 성과를 안팎에서 인정받아 온 이 회장은 임기를 마친 후 자신의 황혼기를 농촌에서 봉사하며 “조랑말을 하나 사서 타고 다닐” 소박한 꿈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이 꿈이 현실화될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이 회장은 교통사망사고와 관련한 뺑소니 의혹으로 본인의 칠십 평생 인생과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업적이 사활에 걸린 만큼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연 이 회장이 뺑소니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지는 경찰 조사 결과 이후 곧 밝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