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다고 8일 공식 발표했다.
7년만의 남북정상회담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고,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백종천 안보실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5일 김만복 국정원장과 북한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 사이에 이뤄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발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8월28일부터 30일까지 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 실장은 “2차 남북정상회담은 6.15 공동선언의 합의정신을 구현하고 남북 간 본격적인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어나가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며, 9.19 공동성명 및 2.13 합의가 실천단계로 이행되는 시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동시에 견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이날 오전 9시57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북남합의서’를 발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오는 8월28일부터 30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북남 수뇌부의 상봉은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해 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의 화해모드를 열어갈 수 있는 정상회담의 개최는 ‘햇볕정책’으로부터 시작됐다. 한반도의 평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이 대북정책은 DJ가 터를 닦고 노 대통령이 기둥을 세웠다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DJ 평생의 숙원이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이후 일관되게 주장한 바다.

이번 합의에 대해 정가는 ‘햇볕정책의 완벽한 승계’라 평한다. 혹은 ‘정치적 연대의 완성’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권재창출과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놓고 협력과 갈등의 줄다리기를 하던 노 대통령과 DJ가 ‘햇볕정책’으로 연대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견해를 기반으로 햇볕정책의 성과에 따라 후계구도가 마무리 단계가 접어들고 노 대통령과 DJ의 물밑지원이 시작될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대선을 눈앞에 둔 회담개최와 한나라당 경선과 범여권 컷오프 정치일정 사이에 자리하게 된 회담개최 시기는 노 대통령과 DJ의 정치적 노림수를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을 일견 가능케 한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남북정상회담의 ‘정략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고 생각한다”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의제의 초점이 돼야 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든지 NLL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런 내용들이 의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해 조건부 찬성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문제에 대해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도 나도 내가 수혜자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 후 대선주자들도 분주해졌다. 정상회담 합의를 환영한다는 뜻을 발표하고 회담에서 얻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짚는가 하면 범여권 대선주자들 사이에선 ‘평화대통령’론이 급부상했다. 범여권 주자들은 대선전이 한반도 평화 비전에 대한 경쟁 구도로 재편되기를 바라며 저마다 한반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와 같은 날 대선출마 선언을 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평화체제 지향을 3대 비전의 하나로 제시했다. 그리고 조만간 지난 2월 발표했던 ‘북한경제 재건 10개년 계획’을 보완한 ‘한반도 상생경제 10개년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동영 전 장관은 장관 재직시던 지난 2005년 김정일 위원장과의 6·17 면담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던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이 한반도 평화시대를 이끌 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14일 정책기자간담회에서 보다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지난 3월 방북,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간의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자부하며 12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 전망대에서 ‘한반도 시대 재창조 플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에서 이 전 총리는 지난 5월 자신이 제시했던 ‘4단계 통일론’을 구체화시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민족경제공동체 구성 방안, 한강 하구 공동이용 방안 등을 발표했다.
이 같은 범여권 주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DJ의 햇볕정책을 마무리할 인물이 차기 대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것”이라며 “‘평화대통령’론은 결국 DJ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연대를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았다.
야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역풍’을 우려하며 ‘소극적 찬성’을 표하기는 했지만 남북정상회담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75% 이상의 국민 대다수가 정상회담 개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북과 관련한 정책을 정리하고 있는 것.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는 지난 6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내에 1인당 소득을 3천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발표했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는 ‘북한 핵무기 완전 제거→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정치통일’이라는 3단계통일론을 선보인 바 있다.
정가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 대선주자들 중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면담을 가진바 있는 정동영 전 장관과 박근혜 후보,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자부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경선과 관련해서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유, 불리 계산기 두드리기
정가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한나라당 경선과 범여권 컷오프를 뒤흔들 수 있는 시점에 회담이 열린데 대해 많은 이들이 유, 불리를 따지는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며 “대선 분위기를 범여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역풍의 우려는 없는지를 점치고 있다”고 정치권의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 대선에서 ‘북풍’이 대선을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했던 것과 관련 정치컨설팅 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정상회담 이슈 자체는 범여권에 호재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며 “그동안 범여권에 정치적 호재가 거의 없었고, 친노다 비노다 해서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라는 이슈를 통해 범여권 주자들이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내 대표적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전 거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경수로 지원 등과 같은 정치적 거래는 있었을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뒷거래’ 의혹을 제기해 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범여권에 유리할 수 있으나 회담이 성과에 따라 역풍이 불 수 있음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