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체제 주장 꺾인 당권파와 친노세력과의 역학구도
원외 대표 비주류 출신 이부영...이부영-천정배 체제 순항할까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지난 19일 사퇴함에 따라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했다.
의장직을 승계 받게 된 이 신임 의장은 재야출신의 원외인사로서 천정배 원내대표와 함께 152석의 원내 과반 여당을 새로운 투톱체제로 이끌게 됐다.
이부영 신임 의장과 당 중진들은 신 의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 질문 없이 영등포 당사를 떠난 직후 당사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향후 당 운영방안과 정국 대처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신임 의장은 "석달동안 신 의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진행시켜온 당 개혁과 국정 개혁작업을 한 치의 차질 없이 승계해 나갈 것을 국민과 당원들 앞에 다짐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내년 1~2월에 열릴 전당대회까지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임시지도부의 소임을 다 하겠다"며 "다양한 당내 의견을 들어 당헌 개정을 마무리해 순탄하게 전대를 치러내 당 지도부를 안착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당은 창당 때부터 원내 정당을 지향했기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친일진상규명법과 국가보안법 등 여러 개혁작업이 원내대표 중심으로 완수되도록 뒷받침할 것"이라며 "저는 국민의 부름을 받지 못한 원외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원내와의 괴리가 빚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체제의 출범에 대해 천정배 대표는 "신 의장이 당을 위해 큰 결단을 내렸지만, 친일진상규명법 통과와 미래를 향한 발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이부영 의장을 중심으로 단결해 앞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의원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가야 한다"며 "신임 의장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임 이 의장은 지난해 7월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 이우재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시 당 밖 개혁세력인 신당연대에 참여한 뒤 열린우리당에 창당멤버로 참여했다.
이어 그는 지난 1월11일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신기남 전 의장에 이어 3위를 차지함으로써 당헌.당규에 의해 자동으로 차점자인 이 상임위원이 의장직을 넘겨받게 됐다.
비주류 출신 이부영
이 신임 의장은 지난 4.15총선 때 낙선한 뒤 와신상담하면서 원내로의 재진입을 꿈꿔 오면서 당내 각종 공개회의에서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지도부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등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이에 따라 여권은 신 의장의 사퇴를 계기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국회 내 과거사특위 설치 등 과거사 청산 작업에 한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정기국회를 앞둔 정국의 긴장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또 비당권파로 분류됐던 신임 이 의장은 그동안 정동영 통일장관, 신 의장, 천 원내대표 등 이른바 `천.신.정' 3인이 주도하는 당권파의 당 운영에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만큼 향후 열린우리당의 진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로 인해 열린우리당은 정기국회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 일단 연내에는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신기남-천정배의 침묵
신 의장의 사퇴 기자회견에 하루 앞서 지난 18일 저녁 신 의장과 천 원대표 등 열린우리당 중진의원 14명은 18일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심야 회동을 갖고 당헌 당규에 따라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김부겸 당의장 비서실장이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 당권파의 일부 중진의원들은 20일 예정된 중앙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당 지도체제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다수 중진의원들은 당헌에 따라 의장을 승계토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장직 승계를 주장한 중진의원들은 "비대위로 가는 것이 일리는 있으나 국민에게 마치 당권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비쳐지면 당이 입는 상처가 너무 크다"며 "당헌과 순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구성 방안을 지지하는 신 의장과 천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채 다른 중진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 의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당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말했고, 김원웅 의원은 "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 원내대표는 "오늘 회의는 당 지도체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고 의견을 듣는 자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신 의장과 천 원내대표, 문희상 장영달 유인태 임채정 김원웅 정세균 박병석 의원 등 여당 중진의원 14명이 참석했다.
무너진 당권파
한 때 당내에서는 신의장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향후 지도체제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가열됐다.
신 의장 사퇴에 따른 힘의 공백 상태에서 누가 당을 이끄느냐의 문제는 가까이는 내년 초 실시될 전당대회를 통한 2기 정식 지도부 경선의 향배는 물론 2006년 여권이 주도할 헌법개정 논의와 이듬해 차기 대선후보 경선 구도와 맞물려 있다는 게 각 계파의 공통된 셈법이다.
이에 따라 1기 지도부의 주도권을 쥔 일명 당권파가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삼각체제의 와해를 뜻하는 신 의장의 사퇴시점을 늦추고 세 규합에 나서고 있고 이에 맞선 비당권파의 움직임도 빨라지는 등 계파간 물밑경쟁이 치열했다.
신 의장이 휴가 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천정배 원내대표와 수시로 접촉하고 있는 가운데 민병두 기획조정위원장을 비롯해 현재 중국 고구려유적을 탐방 중인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조기 귀국을 검토키로 한 것도 당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자리에서 안영근 의원은 "비대위를 구성하더라도 당헌상 의장승계 순위가 있는 만큼 이부영 위원이 (위원장을) 맡으면 된다"고 말했고, 우원식 의원도 "꼭 현역 의원이 당의장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가세했다.
조경태 의원은 "당이 비상체제가 아니다"며 "절차 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반면 임채정 의원은 "직선으로 된 상임위원 5명 중 3명이 그만두게 되면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 내년 전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 체제 주장파 후유증 과제
또한 최장 6개월간의 과도기적 성격을 띨 향후 지도체제 방안을 놓고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과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의 의장직 승계안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에 이로 인한 후유증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도 이 신임 의장의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비대위안은 정 장관을 정점으로 한 당권파와 민주당 출신 다수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이 신임 의장과의 앞으로의 관계설정이 주목된다.
만약 비대위 체제로 구성됐다면 현재 상임중앙위원인 이부영, 이미경 김혁규 한명숙 위원 외에 상임고문인 문희상 의원과 4선 이상 현역 의원 일부가 참여하는 집단지도체제 구도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비대위 구성안은 선거 등 비상시국이 아닌 상황이고, 당헌 등 법적 근거가 없는 현역 의원들의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점에서 당의 최고의결기구로 비 민주당 출신 세력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중앙위원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이밖에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안이 거론됐었으나 이달 말 당헌.당규 개정안 통과를 앞두고 있고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일정 등과 겹치기 때문에 힘을 얻지 못했다.
한편 당의장 승계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이 빚어졌다는 지적에 대해 이 신임 의장은 “내 경우에는 누구하고도 가깝거나 멀지가 않다”고 말한 뒤 “나는 우리당에 와서 누구에게도 시시비비를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의장이 `신작로의 교차로'라고 생각한다”며 “사통팔달하면서 누구하고도 통하는 것이다. 다만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는다”고 갈등설을 해명했다.
이부영은 누구?
이 신임 의장은 지난 91년 정계 입문 후 주로 비주류 성향의 정치노선을 걸어왔다.
또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원외라는 약점에도 불구, 집권여당의 `대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정치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1942년생인 이 신임 의장은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광주학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등으로 재야활동을 하다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특히 신임 이 의장은 이해찬 국무총리의 용산고등학교 10년 선배이자 서울대선배이기도 하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당과 정부의 수뇌부에 포진함으로써 향후 당정간 조율이 원만하게 이뤄질 지 주목된다.
이 의장은 지난 91년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정치권에 진입해 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동갑구에서 당선된 뒤 15, 16대 등 내리 세 차례 당선됐다.
특히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후 민주당의 다수세력을 이끌고 탈당,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노무현 대통령, 김원기 국회의장,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러나 그는 97년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노 대통령, 김원기 국회의장, 원혜영 의원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중심세력은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원한 반면, 이 의장은 조 순 당시 민주당 총재,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등과 함께 통합민주당 잔류파를 이끌고 신한국당과의 통합에 나선다.
즉 그는 97년 대선과정에서 `꼬마 민주당'의 뒤를 이은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창당되자 한나라당에 합류,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게 된다.
이후 그는 99년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거쳐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또한 이 신임 의장은 최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정 그렇다면 조사대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뺄 수도 있다"며 현실적인 접근을 했다.
그러나 당내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이 의장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신기남 의장 사퇴 이후 당지도체제와 관련해 물밑 신경전을 벌였던 당권파와 관계정립, 기간당원 문제로 이견을 보이고 있는 당내 다양한 계파들에 대한 조정 등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이부영(62) 신임 의장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민주당 부총재, 한나라당 원내총무.부총재, 국민통합개혁신당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우리당영입추진위원장, 우리당 상임중앙위원, 14,15,16대 의원을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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