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우리 왕따예요”
“사실은…우리 왕따예요”
  • 문충용
  • 승인 2007.08.2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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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난 조폭 ‘따따따파’ 검거 사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 10월13일 민생치안을 확립하고 범죄의 소탕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1년여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당시 전국 2백53개 폭력조직에서 8백39명의 폭력배가 검거돼 연일 뉴스 첫머리에 소개됐다. 총 7백62명이 구속됐고, 이 중에는 두목급 20명과 행동대장 83명이 포함돼 있어 사실상 폭력조직이 와해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게다가 범죄자 검거율까지 상승해 안전한 사회로 거듭났다. 하지만 경찰들은 날이 갈수록 상승하는 범죄자 검거율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과를 서로 올리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던 것. 당시 사건을 재구성했다.


▲ 일러스트/장미란 기자
밤에는 암흑가 지배, 낮에는 평범한 학생으로 착실히 학교생활

검거 후 경찰 쾌거 “최연소 조직폭력배 잡혔다” 언론도 큰 관심


범죄가 난무하던 1990년대. 그 당시 경기도 부천에 아주 무자비한 조직 폭력배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경찰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당시 경찰들 사이에서 그들은 ‘따따따파’로 불리며 전설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두목 고비리(가명)는 혼자서 20명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으며 행동대장인 병팔이(가명) 역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상대를 헤치우는 실력을 가졌던 것. 그러나 이들의 실제 나이는 당시 10살. 선량한 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일이지만 경찰들에게는 매우 긴박하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중생활로 검거 쉽지 않아


경찰들은 ‘따따따파’를 기습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비록 10살 밖에 안 된 폭력배였지만 몸서리를 칠 정도로 유명세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따따따파’들은 완벽한 이중생활을 소화해내고 있어 검거가 쉽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오자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들은 밤에는 암흑가를 지배하지만 낮에는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 껴서 착실하게 생활하고 있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따따따파’들이 다닌다는 학교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경찰들. 지체할 것도 없이 그날로 긴급출동 해 학교 앞에서 잠복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몇 백 명의 학생들을 눈여겨 살피던 경찰들은 마침내 ‘따따따파’ 조직원들을 검거했다.

쾌거를 부르며 언론에 자랑스럽게 공개한 ‘따따따파’들. 10살밖에 안 된 최연소 조직폭력배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보도에 당시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기자들은 경찰서 앞에서 경찰 조사가 하루 빨리 마치기만을 밤새 기다렸다.

이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도 경찰들의 조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범죄 사실을 아무리 채근해도 ‘따따따파’들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사실은…”

오랜 침묵 뒤 학생들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소위 ‘왕따’였다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왕따 모임을 만들고,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대신해 다른 연약한 학생들의 주머닛돈을 몇 차례 갈취한 사실을 밝히며 엉엉 목 놓아 우는 것이 아닌가.

결국 경찰들이 ‘따따따파’에서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말처럼 단지 오락실이나 학교주변에서 또래 학생들에게 푼돈을 빼앗는 정도 말고는 뚜렷한 혐의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 오랜 시간을 기다린 기자들은 이 같은 해프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따따따파’를 잡기 위해 수개월 기획수사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은 잠복근무로 열의를 다해 뛴 경찰들 역시 기운 빠지기는 마찬가지. 경찰서는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무고한 시민, 그것도 어린 학생들을 조직폭력배로 내몰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니 사태 수습이 쉽지 않았다.


경찰들의 ‘실적 올리기’ 경쟁


그렇다면 어떻게 ‘따따따파’가 경찰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을까. 당시 1990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경찰들은 이에 따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눈에 불을 키며 조직폭력배 검거에 나섰다.

혈안이 된 경찰들의 눈에는 이 어린 학생들이 폭력배로 둔갑됐던 것. ‘따따따파’라는 계보까지 만들어 수개월 검거에 힘썼지만 결국 경찰들의 판단 착오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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