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 흥행, 투자자·비평가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
남성보다는 여성, 연령대는 20대가 최고, ‘동성애’ 확산 조짐
“딱 한번만 말 할 거니까 잘 들어. 너 좋아해.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젠 상관 안 해. 정리하면 더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한번 가 보자.”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명장면 명대사로 꼽히고 있는 극중 ‘한결’ 역의 대사다. 당시 화제의 장면은 꽃미남 주인공 한결이 여주인공 ‘은찬’을 남자로 잘못 알고 있었던 상태. 그래서 은찬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뒤돌아섰지만, 끝내는 은찬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고 말았다.
남자임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결의 무모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에 그날 저녁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밤잠을 설칠 만큼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토록 기다렸던 한결과 은찬의 첫 키스에 뜨거운 호응을 보낸 시청자들은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로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다.
영화 ‘왕의 남자’로 편견 무너져
‘커피프린스 1호점’의 남장여자는 자칫 동성애로 오해할 수 있는 소재였지만 요즘 트랜디와 걸맞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이다. 게다가 최근 이 드라마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탤런트 공유와 윤은혜의 알콩달콩한 연애가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사회에 ‘동성애’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를 논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뿌리 깊은 유교 정신에 길들여져 있던 한국사회는 동성애를 용납하기에는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02년 영화 ‘로드무비’는 흥행참패는 물론 관람객들의 심기마저 건드렸다. 남성들 간의 사랑이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지만 동성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0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탤런트 홍석천도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죄 값을 치루는 사람인마냥 묵묵히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12월, 한국사회에 동성애 코드를 한발 앞당긴 영화가 등장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 2위를 자랑하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이 영화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동성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룬 역사극으로 촬영 당시 영화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해 당초 예상했던 투자액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아무도 이 영화가 성공을 이루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 영화 개봉 이후 관람객 1천2백30명을 몰고 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왕의 남자’는 투자자들은 물론 비평가들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게다가 당시 무명 신인배우 이준기가 ‘크로스 섹슈얼’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배우로 등극하면서 파급효과는 연이어졌다. ‘크로스 섹슈얼’이란 치장을 즐기는 남자를 말한다. 바야흐로 ‘남자다운 남자’보다는 ‘예쁜 남자’가 더 주목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동성애가 한국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남성들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최근 우리나라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리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실제로 우리나라 5명 중 1명은 동성애 코드가 있는 작품을 즐겨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성애 소재의 드라마 또는 영화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응답자는 50.2%로 드러났으나 이와 반대로 호기심에 동성애 작품을 즐겨 보는 응답자가 20.5%로 밝혀져 적지 않은 수치임을 보여줬다.
동성애 소재 작품에 대한 선호는 남성이 15.9%인데 비해 여성은 이보다 높은 24.9%로 드러났으며 연령별로는 20대가 가장 많았다. 반면 40대는 동성애 코드에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사회 ‘동성애’ 흐름 물결
하지만 30대도 22.7%를 기록하고, 50대 이상도 20.7%가 동성애 코드 작품에 관심을 표현하고 있어 ‘동성애’의 흐름이 한국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지역별로는 제주(47.9%)를 비롯해 대구/경북(26.5%), 대전/충청(25.7%) 응답자가 동성애 소재 작품을 즐겨본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와 달리 강원(14.8%) 및 서울(16.2%) 응답자는 상대적으로 이들 작품을 즐겨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앞으로도 상당한 변화추이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동성애’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으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빠르게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는 한결 개방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윤리적 고찰이 필요한 때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