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하나은행장의 행보에 비상이 걸렸다. 때 아닌 노사간의 갈등으로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고발당했다는 이유에서다. 은행의 선장으로서 ‘하나號’ 항해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김 행장의 입장으로선 답답한 모양새다. 은행들이 저마다 올해 영업대전 2라운드를 맞았다며 각 은행장들이 직접 직원들은 물론 고객들과 접전을 넓히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노동조합(이하 노조)과 반목하고 있는 탓이다. 취임 2년5개월만에 암초를 만난 김 행장은 요즈음 난제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조의 강공태세가 자칫 자신은 물론 은행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의해서다. 금융권과 세간에서도 김 행장의 행보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암초를 만난 ‘김종열號’는 과연 위기를 탈출하고 순항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지난 14일 서울지방노동청에는 하나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고발을 한 주최는 하나은행. 이 고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발당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종열 하나은행장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김 행장은 이미 노조로부터 두 번 고발당한 전적(?)이 있어 금융권의 초미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

노조는 고발한 배경에 대해 두 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노사협의회 개최의 사용자측 의무를 규정한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는 내용이다.
현재 하나은행 노조가 반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노조측의 설명이다. 예컨대 하나은행은 지난 7월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통지와 외주화 방침을 밝혔다가 노조의 반발과 이랜드 사태와 맞물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일단 방침을 유보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사간 협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결과를 내놓고 있는 다른 은행과는 차별되고 있는 부분이라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노조는 또 최근 계약만료가 돌아오는 일부 비정규 직원들에게 다시금 해고통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기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일체의 논의 없이 정규직의 대규모 채용만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김 행장과 노조 갈등의 표면화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7월30일 노조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며 김 행장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한 게 그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6일에는 ‘승진취소를 미끼로 노조 간부에 대한 사퇴를 요구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또 다시 고발됐다.
그러면 김 행장과 노조의 갈등의 발단 원인은 무엇일까. 금융권에선 그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 ‘직군별 차별이 발단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발단은 직군별 차별
사실 하나은행은 지난 2000년부터 FM/CL(Floor Market ing/Clerk 창구직원) 군과 종합직, 계약직 등으로 직무군을 나누고 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입사해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직군에 따라 연봉이 1천만원 이상 차이 난다. 일례로 FM/CL의 초임이 2천만원인데 반해 종합직은 3천6백만원이란 게 노조측의 설명이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FM 직렬 책임자 공모’다. 종합직 20여 명을 FM군으로 승진발령을 낸 것이 단초가 된 것이다. 실제 FM군에선 승진자가 없었다. 때문에 노조는 “정규직간에도 차별이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차별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의해서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선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통합 후유증’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 2003년 서울은행과의 통합 이후 잡음이 이어졌던 출신별, 직군별, 성별 차별이 화근이라는 얘기다.
일례로 하나은행은 지난 2002년 구 서울은행과 하나은행 합병 당시 구 하나은행의 여성직원들을 종합직과 FM/CL로, 구 서울은행 여성직원들은 모두 종합직으로 배치했다. 물론 종합직의 급여가 많지만 일반 남성직원들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승진이 어렵다는 단점도 노출됐다.
노조는 “정규직으로 된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없다”면서 “정규직화라는 빚 좋은 개살구 덕택에 성차별, 임금차별을 감수해야 하므로 한마디로 분리직군에 갇혀있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실제 하나은행에선 이 같은 갈등의 골이 표면화된 사례가 있다. 하나은행 지부 여성부위원들이 FM/CL 직군 문제를 제기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던 것. 최근 이들은 단식을 중단했다. 그 이유는 하나은행과 정명충돌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목 너무 잡지마!

김 행장은 지난 2005년 3월, 김승유 현 이사회 의장으로부터 선장키를 넘겨받았다. 따라서 2년6개월 남짓 항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그동안 ‘김종열號’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사실 김 행장이 지휘봉을 잡을 당시 부담감을 안고 행장직을 시작했다. ‘하나은행=김승유’로 통할 만큼 하나은행에선 전임 김승유 행장의 자리가 컸던 탓이다. 김승유 의장의 업적을 뛰어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김 행장은 크게 모난데 없이 변화의 시기를 넘어왔다.
김 행장이 역점을 둔 행보로는 고객 및 중소기업과의 접점을 가까이 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일례로 그는 지난해 4월 “하나은행은 절대 매몰되지 않는다”면서 시장점유율 2%를 증대시키기 위한 확대경영을 선포했다.
또 올 4월에는 조직영신설로 중소기업 영업과 소호(SOHO) 영업을 더욱 확대시켰다. 중소기업 전문 복합상품 개발을 위한 조직을 신설하고 중소기업 담당 전문 RM을 육성한 것이다. 아울러 소호 전용 대출상품을 만드는 조직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7월에는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와 손잡고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사업을 단행했다. 이 사업은 저소득 금융소외계층의 창업과 경영지원 자금을 연 3~4%의 낮은 금리로 최대 3억원까지 대출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비영리법인인 ‘하나희망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에 3년간 1백억원씩 3백억원을 출연해 ‘하나 희망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하나은행은 기금운용과 금융지원만 맡고, 대출심사와 컨설팅은 희망제작소 부설 ‘소기업 발전소’가 전담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김 행장은 이처럼 은행과 고객의 접점을 가까이 하면서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집안 다스리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도출되고 있다. 이번 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이 사태에서 보듯이 김 행장은 노사 관계 및 성차별 논란을 해결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직원간 정서 통합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하나·서울·보람·충청은행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 현 하나은행은 내부인적 구성이 복잡하다. 물론 합병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적잖은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키로 인식됐던 분리직군제가 차별을 고착화 시키고 또다른 노사갈등을 나을 것이란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면서 “김 행장이 하나은행 노사가 갈등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순항할 것인지, 아니면 난파할 것인지 그의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