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부활하고 있는 1980년대의 슬래셔무비 히어로 군단, 과연 어떤 모습이었나?
1980년대의 추억에 젖어있는 이들 뿐 아니라, 1980년대를 살아온 청춘들이라면 누구라도 당시 유행하던 '슬래셔무비', 즉 '난도질 영화' 장르의 히어로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3일의 금요일>의 히어로 제이슨 보어히즈로부터 시작해 - 사실 시작은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라고 봐야할 듯 -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 <환타즘>의 톨 맨, <헬레이져>의 핀헤드, 그리고 <사탄의 인형>에 등장하는 인형 처키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최악의 장르 - 사실 1980년대 자체도 이미 최악의 영화제작 시기라 결론내려지고 있다 - 인 슬래셔무비는 우리 정서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어쩔 수 없이 추억하게끔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이런 점에 착안한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이미 <프레디 대 제이슨>('03)이라는 '두 1980년대 슬래셔무비 히어로의 만남'편을 제작해 톡톡히 재미를 본 바 있는데, <프레디 대 제이슨>의 성공에 이은 또다른 '만남'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04)마저 대성공을 거두자, '1980년대 호러-붐'은 이제 겉잡을 수 있는 최신 유행 트렌드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이제, 지난 세월 우리를 그토록 몸살나게 만들었던, 그리고 다가올 근미래에 또다시 우리를 노스탈지아와 이를 변형시킨 변종적 재미로 이끌어낼 1980년대의 호러 히어로들에 대해 철저 분석해보고, 과연 이 중 몇몇이 다시금 21세기에 부활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예상해보기로 하자
모든 '슬래셔-무비' 히어로의 시초, <할로원>의 마이클 마이어스
사실 모든 '슬래셔-무비'의 원조를 꼽으라면, 당연히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클래식 호러 <싸이코>('60)를 꼽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첫 번째 '슬래셔-무비 히어로'의 자리는 죽은 어머니에 집착하는 정신분열증 환자 노먼 베이츠가 차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싸이코>와 노먼 베이츠는 당시로서 '지나치게' 과격한 아이템이었다 - 개봉 당시에는 새벽에 <싸이코>를 불꺼진 극장에서 혼자 보고 나온 관객들에게 상을 준다는 희한한 이벤트까지 벌어졌었다. 이 무시무시한 아이템이 마침내 대중들에게 '그런대로 안전하게' 먹혀들어간 시점은 바로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이 공개된 1978년으로 돌아가며, 같은 해 공개되었던 죠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69) 속편 <시체들의 새벽>과 함께, 슬래셔-스플래터 무비는 새로운 흥행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할로윈>은 여러 가지 면에서 1980년대의 슬래셔-무비 공식을 완성시키고, 장르화의 가능성을 굳건히 심어준 영화였다. 정신병원에 탈출한 위험한 환자 마이클 마이어스가 기이한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고향마을 사람들을 하나둘씩 난자한다는 내용은 그대로 1980년대의 무자비한 슬래셔-무비 구성공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마스크를 쓴 살인자'라는 설정으로 도살범에 대한 신비감을 강조시키는 전략 - 그리고 이 도살범은 엔딩 부근에서 증발해버린다는 설정까지 - 은 1980년대의 많은 슬래셔-무비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게 되었다.
어찌보면 모든 슬래셔-무비는 <할로윈>으로 탄생되고, <할로윈>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붐'이란 본래 '완성된 시점'부터 활성화되는 것임을 감안해보면, 이어질 슬래셔-무비 붐은 그닥 '타락'이라고 말할 만한 것도 아니었고, <할로윈> 역시 2002년까지 무려 7편의 속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1편과 1981년에 공개된 2편, 그리고 1998년에 공개된 '<할로윈> 탄생 20주년 기념작' <할로윈 H20>를 최고 수작들로 꼽는다.
'슬래셔-무비'란 바로 이런 것,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보어히즈
1981년에 공개된 <13일의 금요일>은 아무리 봐도 별다른 화제를 불러 일으킬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할로윈>이 이미 한번 '터뜨린' 형식에 기대고 있는데다,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엔 플롯이 너무 빈약했고, 슬래셔-무비로 보기엔 살해방식이 단조롭고 쇼크효과가 적었다. 그러나 <13일의 금요일>은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의 간부진들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대대적인 흥행성공을 기록 - 약 39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 했고, 이어질 '악몽의 1980년대'를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원흉'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13일의 금요일>이 지니고 있는 플롯은 단순하다. 수십년 전, 청소년의 야영장으로 유명한 '크리스털 레이크'에서 한 저능아가 익사한 일이 있었다. 제이슨 보어히즈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아영장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이런 참변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 소년이 '다시 살아나' 아영장에서 섹스에 알콜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하나씩 죽여나간다는 설정이다. 이 외에 다른 어떤 사이드-에피소드도 없다. 그저, 죽이고, 죽이고, 죽이다, 결국 살아남은 청소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구조이다. 그리고 이어질 다음 속편에선 '어떻게 해서든' 다시 살아나고 만다 - 가장 멋진 에피소드라면, 6편의 초반에서 '번개를 맞고 다시 되살아나는 장면'이 아닐까.
<13일의 금요일>은 싸구려 감수성에 열광하던 1980년대의 청소년층에 강하게 어필하여 매편마다 승승장구했고, 1984년의 세 번째 속편 <13일의 금요일 4: 마지막 장>까지 평균 3000만 달러 이상의 흥행고를 올려 파라마운트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이런 흥행성공에 힘입어 '제이슨을 또다시 살려낸' 5편부터 이 프랜차이즈는 피로한 기운이 역력했고, 이어 1500∼2000만 달러 사이의 흥행만을 기록하다, 1993년의 <라스트 프라이데이>를 끝으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프랜차이즈를 그간 탐내오던 뉴라인 시네마사의 '부활계획'에 의해 제이슨 보어히즈는 2001년작 <제이슨 X>를 통해 다시금 스크린 안에 등장하게 되었고, 2003년의 <프레디 vs. 제이슨>의 대성공을 이끈 양대 주축 중 하나로 활약하기도 했다.
'꿈'을 지배하는 지적인 농담꾼,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는 여타 공포영화와 달리, 서서히 관객들에게 '발견된' 케이스에 속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발견된' 영화들이 그러하듯, 적어도 1984년에 공개된 첫 번째 <나이트메어>는 세계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법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보유한 걸작 호러였다. '꿈을 지배하는' 슬래셔-무비 히어로란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획에 속했고, 이를 기존 슬래셔-무비 공식과 새롭게 개발된 음산한 형식 - 혹자는 이태리 공포영화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향이라고도 평가한다 - 이 뒤섞여진 <나이트메어>는 극장 흥행보다 비디오 시장에서의 평가에 의해 '반드시 봐야만 할 아이템'으로 승격되었고, 이런 극적인 반응은 바로 이어진 속편의 흥행성적이 전편을 능가했다는 사실에서 강하게 입증되었다.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는, 적어도 4편까지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매편마다 전편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는 신기한 프랜차이즈였다. 이런 인기도는 특히 척 러셀이 감독한 3편과 레니 할린이 감독한 4편에서 두드러졌는데, 5편에 이르자, 마침내 승승장구하던 이 프랜차이즈마저도 피로도를 역력히 보여줘 흥행에 참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1991년에 공개된 6편 <프레디의 죽음>으로 '진짜 프레디 크루거'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고 보아도 좋을 법하다.
1994년에 공개된, <나이트메어> 1편을 연출한 웨스 크레이븐에 의해 제작된 <뉴 나이트메어>는 영화에 직접 제작자가 등장하여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실험적인 형식의 영화로써,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에 속한다고 보기에도 힘든 '변종 에피소드'였으며, 역시 <프레디 vs. 제이슨>('03)을 통해 '1980년대 슬래셔-무비 히어로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여늬 슬래셔-무비와 달리 매편마다 '스타급 감독'을 탄생시킨 프랜차이즈라는 점일 것이며, <나이트메어>를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 감독들로는 웨스 크레이븐(<스크림>), 잭 숄더(<히든>), 척 러셀(<마스크>), 레니 할린(<클리프행어>), 스티븐 홉킨스(<고스트 앤 다크니스>), 레이첼 탈렐레이(<고스트 인 더 머신)> 등이 있다.
'원칙'에 의해 살해하는 기묘한 악당, <헬레이져>의 핀헤드
영국의 세계적인 공포소설가 클라이브 바커에 의해 탄생된 <헬레이져> 프랜차이즈는 그 고딕한 설정으로 인해 더욱 인기를 얻게 된 프랜차이즈이다.
<헬레이져>의 세계는 신비스럽다. 오래 전 제작된 '큐브'를 움직여 '핀헤드' - 얼굴에 수많은 핀들을 박아 '고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 가 이끄는 저승사자 군단을 불러들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미국에서 숱하게 공개되던 슬래셔-무비 장르의 설정과 차이를 두고 있는데, 이 나타난 인물들이 자신들을 불러 들인 이에게 '극한의 고통'을 선사한다는 설정에 이르면 슬래셔-무비와 환타지 무비,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 류의 고딕 호러가 서로 만나 결합되는 절묘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 <헬레이져>의 '실질적 주인공'인 핀헤드 역시 묘한 '원칙'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이다. 일단,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을 당하게 된다는 슬래셔-무비 기본설정과 달리, 핀헤드는 오직 '자신을 불러낼 정도로 호기심이 많았던' 인물만을 골라 살인하며, '머리'가 있는 캐릭터인지라 인간이 내미는 '계약'에 의해 속기도 하고 - 1편, 악독한 한 인물이 정신지체아 소녀에게 큐브를 만지게 해 핀헤드를 불러내게 계략을 세우자, '나를 불러내는 것은 '손'이 아니라 '욕망'이다'라는 멘트를 남기며 그냥 사라지는 독특한 '원리원칙'을 내세우기도 한다 - 2편.
1987년에 첫 공개된 1편에 이어, 2004년까지 <헬레이져> 프랜차이즈는 극장용 영화 4편, 비디오용 영화 4편을 공개했으며, 비록 인기도는 서서히 떨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독자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몇 안되는 '진행형' 프랜차이즈로 알려져 있다.
'인형'이 사람을 살해한다? <사탄의 인형>의 처키
1988년, 이른바 '처키' 프랜차이즈로 알려진 <사탄의 인형> 1편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호러영화 팬들은 극찬을 쏟아부으며 이 독창적인 슬래셔-무비 히어로를 환영했다. 여러 호러영화에서 '사이드-에피소드'로만 사용해왔던 설정, 즉 악령이 씌운 '인형'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이 애니매트로닉스 기술에 의해 완벽하게 재현된 <사탄의 인형>은 제이슨 보어히즈와 프레디 크루거로 양분되어 있던 호러 영화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어 3300만 달러에 이르는 흥행수익을 너끈히 거둬들였고, 이미 지친 모습이 역력했던 이들 '오래된 호러 히어로'들에 뒤이은 차세대 호러 주자(?)로 일대 주목을 얻어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곧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1990년에 공개된 속편은 조악한 완성도로 인해 열화와도 같은 폭평을 받으며 가까스로 28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둬들였고, 바로 다음해의 3편은 다시 2편의 절반인 1400만 달러만을 벌어들여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로 '적자'를 기록하게끔 했다.
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되살려낸 이는, 놀랍게도 <백발마녀전>으로 잘 알려진 홍콩 출신 감독 우인태였다. 이미 <빅히트>('97)를 통해 미국영화에 '적응'한 것으로 평가된 우인태는 <사탄의 인형>의 세 번째 속편 <처키의 신부>('98)에서, '처키' 프랜차이즈를 패러디와 개그로 그득찬 '죠크-페스트'로 탈바꿈시켰고, 이런 대담한 '변신' 전략은 대단한 호응을 얻어 1편의 흥행수익에 맞먹는 3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네 번째 속편인 <처키의 씨>가 공개 예정 중에 있는 이 프랜차이즈는, 어쩌면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가장 왕성한 1980년대 슬래셔-무비 프랜차이즈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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