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17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선출됐다. 그리고 이 파장은 범여권의 지지도 흐름을 바꿔놓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순식간에 ‘이명박 대항마’로 떠오르게 한 것이다. 손 전 지사는 “이명박 후보라 더 쉽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지율 변화는 손 전 지사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정동영 전 장관은 “박근혜 후보가 거론했던 ‘시한폭탄’을 해체할 것”이라며 “이 후보는 끝까지 가지 못할 후보”라고 비판했다. 줄곧 이 후보를 “한방에 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화색이 완연하다. 조순형 의원의 ‘쓴소리’가 이 후보의 급소를 짚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는가 하면 출마를 선언한 유시민 의원이나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명박 후보의 선출이 범여권 대선주자들에게 미치는 유·불리와 ‘이명박 맞춤형 대항마’의 허실을 짚어본다.

드디어 정권 교체라는 한나라당의 바람을 안은 대선후보가 탄생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그리고 이 후보의 선출과 함께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너도 나도 ‘이명박 맞춤형 대항마’를 외치고 있다.
손꼽히는 맞수 孫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후보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손 전 지사는 한국지방신문협회가 한나라당 경선 직후인 8월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주자 중 이 후보에 맞설 최적임자로 꼽혔다. 같은 날 다른 언론조사에서도 ‘이명박과 맞설 이는 손학규 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손 전 지사측도 “이명박 후보가 더 쉽다”고 자신한다. 손 전 지사측 우상호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면서 “한나라당 경선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 후보의 의혹들은 반드시 파헤칠 것”이라고 말해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다. 이 후보가 검증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는다면 길 잃은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검증 강도가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전망케 한다.
손 전 지사측은 “이 후보가 낡고 부패한 후보라면 손 후보는 깨끗한 후보이고, 이 후보가 토목건설 경제 대통령이라면 손 후보는 첨단경제 대통령”이라는 전략으로 이 후보의 당선을 가능케 한 ‘경제대통령’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 후보의 청계천 업적에 비해, 외국계 기업들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든 손 전 지사의 업적들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지지율 상승 가능성도 더 많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하지만 손 전 지사에 대해서라면 이명박 후보측도 “쉬운 상대”라고 벼른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배신자’의 낙인이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는 것. 손 전 지사와 이 후보는 경제우선, 실용주의 노선에서 피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결과는 수도권이라는 그들의 공통된 지지기반에서 이미 승리를 맛본바 있는 이 후보에게로 기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李도 孫도 검증대로
이명박 대항마로 떠오른 손학규 전 지사를 보는 범여권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범여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모자라 ‘이명박 대항마’로 손 전 지사가 대선후보 굳히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자 ‘손학규 경계령’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에 대한 검증 외에도 손 전 지사에 대한 검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손 전 지사가 ‘개혁 실패’를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했지만 “사실은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 확정된 후보가 없는 범여권으로 자리를 옮긴 것 아니냐”는 시각은 여전하다. 또 이 후보의 당선과 손 전 지사의 ‘대항마’ 상승을 계기로 “손 전 지사의 탈당 자체가 눈속임”이라며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길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견해까지 보태진다면 손 전 지사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항마’ 수혜주, 이해찬?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 역시 ‘대항마’ 수혜자로 떠올랐다. 일견 손학규 전 지사가 ‘대항마’인 듯싶지만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확정 이후 가장 큰 지지율 상승을 얻은 이가 이 전 총리로 분석되면서 ‘수혜자’ 명단의 첫 번째 칸에 이름을 올린 것.
문화일보 8월21일 여론조사에서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6.1%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8월13일과 8월21일의 지지율이 모두 6.1%로 정체돼 있어 이 후보의 당선이 손 전 지사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정동영 전 장관은 8월13일 2.8%에서 8월21일 2.5%로 하락했고 조순형 의원도 1.3%에서 1.2%로 지지율 감소를 맛봤다. 반면 이 전 총리는 1.1%의 지지를 2.8%까지 끌어올렸다.
정치권은 아직 이명박 대항마를 속단하는 것은 이르다며 전면에서 보여 지는 지지율보다 이 후보 당선을 전·후로 한 다각도의 지지율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 후보 선출에 따른 유·불리는 범여권의 경선이 진행되는 동안 차차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해찬 전 총리측도 이명박 대항마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 전 총리측은 이 후보 선출직후 “한나라당의 검증은 (대통령후보로서) 도덕적 문제를 검증하거나 방지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며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전 총리는 “30~40대 화이트칼라들이 많이 떠나는 것은 이명박 후보한테는 아픈 약점이 될 것”이라며 “여론조사에서 초기에는 30~40대가 (이명박 후보 쪽에) 많이 붙었다가 요즘 많이 떠나고 있는 흐름이 나온다. 도곡동 땅이라든가 BBK문제 등은 검찰 수사와 관계없이 국민들이 판단을 하는 것으로 오랜 경험 속에서 느끼는 직감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 검증문제를 들어 이 후보와 관련한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 정무부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도덕성 공격카드를 준비 중이다. 바로 ‘서초동 법조단지 고도제한 해제 문제’다. 이해찬 캠프의 김현 공보팀장은 “이 후보가 올바른 서울시장이었다면 자신 소유의 건물이 포함된 법조단지의 고도 제한은 해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이 후보의 각종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권은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정해지기 전부터 “한방이면 간다”고 이 후보를 지목해 온 이 전 총리에게 숨겨놓은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이 있지 않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았으며 특히 참여정부에서는 ‘실세총리’로 국정을 이끌어 오는 동안 얻은 정보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 전 총리가 가진 자신감의 배경을 짚어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이 후보와의 승부에 결정적이다. 이 전 총리는 범여권 후보들 중 가장 먼저 남북문제를 대선의 화두로 끌어들여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 연기 주장에 “남북정상회담을 대선용이라고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해석”이라며 “우리 민족이 60년 동안의 분단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그러한 민족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값진 노력을 안 되는 쪽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반민족적인 사람”이라는 비판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정치권의 풍향에 좌우되는 것을 경계했다.
한 정치분석가는 “대선출마와 동시에 끊임없이 남북문제를 이야기 해 온 이 전 총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햇볕정책’ 계승을 주장한 이 전 총리의 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레 DJ와 노심의 연대선상에서 이 전 총리의 위상을 가늠했다.
정동영 전 장관도 질 수 없다며 ‘검증’, ‘경제’, ‘평화’로 이 후보 공격에 나섰다.
새로운 ‘정풍’ 일으킬까
정 전 장관은 “대한민국은 어제의 ‘전과자’, 오늘의 ‘거짓말쟁이’, 내일의 ‘범법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 후보를 당선시킨 것은 최악의 선택이자 지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또 “이 후보의 도덕성은 장관 인사청문회도 통과하지 못할 수준임이 만천하에서 드러났으며 땅 투기와 위장전입, 부동산 은닉 의혹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 중산층과 서민이 들어설 틈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 후보에 대해 ‘시한폭탄’이라고 규정한 것을 들먹이며 “시한폭탄이 대선 이후 터진다면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인 만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철저한 검증으로 반드시 12월 대선 전 시한폭탄이 터지도록 하겠다”며 이명박표 시한폭탄 해체의 주역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이 후보의 전략에도 “평화 없는 ‘성장론’은 허구”라고 비판하고 “땅을 파고, 운하를 만드는 삽질로는 평화도, 경제도 오지 않는다”면서 “2천만평 허허벌판 위에 개성공단을 세운 열정과 추진력으로 ‘삽질’이 아닌, ‘삶의 질’을 추구할 것이고 민주, 평화, 개혁세력의 정통성을 무기로 이번 대선을 승리할 것”며 ‘개성공단 후보’가 ‘청계천 후보’를 이길 것임을 주장했다.
‘평화’를 주제로 한 대선과 남북정상회담의 연계는 정 전 장관의 필승전략이다.
그는 200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해 남북관계의 탈출구를 마련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통일부 장관 시절 개성공단의 첫 삽을 떴던 추진력과 대륙횡단철도 비전 등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시대에 맞는 미래형 리더십을 펼쳐 보이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정 전 장관측 정기남 공보실장은 “지난해 북한 핵실험 위기 과정에서 이 후보가 가장 냉전지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정 전 장관은 이에 맞서 평화와 통일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후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갈 것”이라고 전했다.
너도나도 ‘대항마’
이 밖에 대부분의 범여권 후보들도 이 후보에 대한 ‘검증론’에 돌입했다.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 경선에 이명박 후보가 이기기를 학수고대했다”며 “승리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의원도 논평을 통해 “이 후보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비꼬았다. 이인제 의원측은 “이명박은 겉은 람보같이 강해 보이지만 속은 바이러스 하나 침투해도 무너질 수 있는 비리와 부패의 고름이 잔뜩 낀 후보”라는 날 선 평가를 전했다.
‘쓴소리’ 잘하는 조순형 의원은 “이번 대선은 인물과 비전, 정책에서 선의의 경쟁이 돼야 하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가 돼야 하는 만큼 이 후보는 이 같은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이 후보는 도덕성과 관련한 의혹 등이 본선에서 다시 제기되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주기 바란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