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정책에 주력하던 정부가 감세계획을 담은 ‘2007 세제개편안’을 지난 8월22일 발표했다. 정권말기 대선정국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세제 개편’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정치권,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대선용 선심행정’이라는 비난이 높다. 여기에 시민사회도 ‘속 보이는 졸속 개편안’이라며 거들고 나선 상태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재계가 유독 주목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이다. 재계는 공식적인 입장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선 ‘재벌기업들에게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의 날개를 달아줬다’면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공익법인의 동일기업 주식 출연·취득 한도를 기존 5%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한마디로 그동안 엄격하게 적용한 상속증여 문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해 주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용계좌 개설 ▲공시이행 의무 부과 ▲외부감사제 도입 등의 악용방지안을 포함했지만 시민사회에선 재벌개혁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논란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서 5% 이내일 경우만 세금을 감면 받도록 되어 있는 것마저도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개정안이 다음달 정기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주요 재벌기업들의 공익법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삼성그룹은 ‘재계서열 1위’ 기업답게 공익재단 운영도 수성이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호암재단, 삼성언론재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규모 또한 대단하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사회공헌에 사용한 금액은 모두 4천9백억원 수준이다.
이들 공익재단 중 외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다. 삼성그룹이 사회에 헌납한 8천억원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재단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도 차지하는 규모다.
재단은 삼성그룹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를 보유하고 있다. 4.12%의 지분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것이고, 4.25%의 지분은 8천억원 환원 과정에서 교육부에 증여한 뒤 운용을 위탁받는 것이다. 이런 수치로 보면 재단은 에버랜드 지분율에서 삼성카드(25.64%)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25.10%)에 이어 3대 주주다.
이밖에 삼성문화재단은 자산규모만 3천5백억원에 달한다. 현재 삼성문화재단은 삼성화재(2.97%), 제일모직(1.81%) 등의 주식을 갖고 삼성화재의 3대 주주에 올라있다. 이건희 회장이 이사장을, 부인 홍
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이사를 맡아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삼성그룹에 이어 가장 많은 공익재단을 운영하는 곳은 LG그룹이다.
분야별로 모두 5개의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LG그룹은 장학·문화 사업은 LG연암문화재단, 사회·복지 사업은 LG복지재단, 교육은 LG연암학원, 환경은 LG상록재단, 언론은 LG상남언론재단 등으로 전문화되어 있다. 이들 5곳의 공익재단 총 자산규모는 4천2백억원에 달한다.
이들 재단이 눈길을 끄는 것은 보유한 LG그룹 계열사 지분 때문이다.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이 이사
장을 맡고 있는 LG연암학원은 (주)LG 지분 2.13%를 포함해 LG상사 0.08%, LG패션 0.04% 등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또 LG연암문화재단은 (주)LG(0.33%), LG생명과학(0.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그룹도 공익재단을 둘러싸고 논란을 겪었다.
고 최종현 회장이 1974년 사재 5천5백만원을 출연해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중심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민간 최초의 유학 장학재단으로, 최종현 회장이 인재양성이 국가 부흥의 초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설립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운영과 관련, 어떤 자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아 시민사회로부터 투명성 문제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또 재단은 SK케미칼 지분 1.16%와 SKC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었던 탓에 두 기업의 배당금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SK그룹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과 함께 최신원 SKC 회장이 2004년 설립한 선경최종건재단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정원, 혜원, 지원, 예정 씨 등 최종건 창업주 직계가 사재 5억원을 모아 만든 재단이다.
불법적 경영권 승계 재발 우려
이밖에 롯데그룹은 롯데장학재단과 롯데복지재단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장학재단은 1983년 신격호 회장이 사재 5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이후 현재 출연금만 5백억원으로 늘어났고, 롯데복지재단은 자산규모가 70억원대에 이른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칠성음료 지분 6.28%, 롯데제과 6.81%, 부산은행 3.22%, 롯데삼강 4.4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포함안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지난 8월22일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재벌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5% 한도마저 20%로 완화하면 재벌 총수 일가가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면서 지배권을 유지하는 부작용이 재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