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놀부열전〉“네 것도 내 것이건만…”
〈新 놀부열전〉“네 것도 내 것이건만…”
  • 문충용
  • 승인 2007.08.27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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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5년 3월. 경북의 한 시골마을에 인심 좋고 성실한 홀쭉이(가명)와 입만 열면 남의 부아를 박박 긁어대는 심술보(가명)가 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홀쭉이를 ‘흥부’라 불렀고, 심술보는 ‘놀부’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지런한 흥부는 어김없이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수박밭으로 향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정성스레 가꿔 놓은 수박 모종들이 하룻밤 사이 까맣게 타버린 것. 망연자실한 흥부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을 재구성했다.


▲ 〈일러스트/장미란 기자〉
이웃 땅에 내다버린 쓸모없는 돌덩이에 금 박혀 있어
잘 자란 수박 모종에 시기, 이웃 신고로 쇠고랑 신세

마을 사람들은 매일 밤낮으로 놀부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의 못된 심보를 잠깐 살펴보자면 똥 누는 아이 주저앉히기, 이웃 사람들 이간질시키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어디 그뿐인가. 다 익은 호박에 말뚝받기, 다른 이웃 계집까지 빼앗을 정도였다.
천상 하는 짓이 놀부짓이라 괘씸하기 그지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을 사람들은 슬금슬금 그를 피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놀부도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신 뒤쫓아 가서 괴롭혔다.

수박 모종에 제초제 사포

마을사람들의 언성은 점차 높아지는데 이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파악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흥부였다. 비록 친형제간은 아니었지만 흥부는 놀부를 하늘같은 형으로 모시며 늘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지켰다.
하지만 놀부는 그런 흥부의 모습에도 콧방귀 하나 뀌지 않았다. 흥부는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그의 식솔들이 모두 아사직전이었지만 놀부는 보고도 모른 체 했던 것.
흥부는 수저 빠는 게 일이라 이제는 광이 날 지경이었다. 사는 게 막막하기만 하는데, 이를 지켜본 마을 어르신이 밭떼기를 조금 얻어주는 것이 아닌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연명했지만 하필이면 그 땅이 놀부땅 옆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웃 좋다는 게 뭔가. 이웃의 고통을 덜어줘~”
놀부는 못난 돌덩이를 아무도 모르게 흥부땅에 내다버리며 열심히 밭을 일구는 흥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놀부가 버린 돌덩이에 금이 박혀있던 것이다.
돌덩이를 주은 것은 놀부였건만 흥부를 골탕 먹일 생각에 그는 금이 박힌 돌덩이인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놀부는 억장이 무너지고 홧병이 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루는 흥부가 논 가운데 허수아비를 세우며 참새들을 쫓아내자 이를 시기한 놀부는 다시 한 번 잔머리를 썼다.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내 것이지!”
놀부는 흥부가 기껏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를 논에서 뽑아 들고 자신의 논에 갔다 놨다. 이후 참으로 기막힌 광경이 벌어졌다. 참새들은 물론 온갖 종류의 새들이 놀부의 논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결국 가난뱅이 흥부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고, 놀부는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흥부와 놀부는 원수 아닌 원수까지 되고야 말았는데, 이 둘의 전면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흥부가 수박농사로 승부를 걸려는데 하필이면 놀부 역시 수박농사로 목숨까지 걸었던 상태. 놀부는 자신 있게 큰소리치며 자신의 승리를 외쳤지만 어쩐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 때 놀부머리에 스치는 생각 하나. 흥부는 매진행렬로 수박 장사가 대박이 난 것에 반해 놀부는 반값에 떨이를 해도 수박 하나가 팔리지 않는 끔찍한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놀부는 급기야 흥부의 밭으로 달려갔다. 세상 잠든 새벽, 놀부는 음흉한 웃음을 보이며 흥부밭에 제초제를 뿌렸다. 7천5백 포기가 넘는 모종들은 독한 제초제에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흥부의 밭으로 몰려든 마을사람들은 까맣게 타버린 수박 모종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1년 농사를 망친 흥부는 넋을 잃고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1년 농사 망친 죄 ‘쇠고랑’

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신 듯 놀부는 쾌재를 부르며 수박농사에 매진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수박농사는 그야말로 놀부의 독무대가 됐다. 놀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돈을 싹싹 긁어 모으는데 때마침 나타난 경찰이 그를 잡아갔다.
깜짝 놀란 놀부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증인이 확보된 상태라 별수가 없었다.
놀부가 흥부밭으로 달려간 그 날 밤. 놀부를 유심히 살펴보던 마을사람이 있었던 것. 무슨 반가운 얼굴이라고 놀부를 아는 체 했겠나. 그 날도 마을사람들은 놀부를 보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의 행동이 심상치가 않음을 보고 조용히 숨어서 놀부의 못된 짓을 지켜봤다. 놀부는 흥부에게 무릎을 꿇고 손발이 닳도록 빌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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