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종말
화려한 종말
  • 김성경
  • 승인 2007.08.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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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맞서는 사랑의 뚝심

지난 주 좀처럼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려한 휴가>가 <디워>를 제치고 17.8%(필름 2.0)의 관객 점유율에 다시 1위 자리로 등극했다. 필자는 몇몇 기록과 광주 답사 사진을 통하여 학살 작전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산화한 고인들의 심심한 명복을 빌기 위함이다.

▲ 도청 앞 광장


“순식간에 금남로는 피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1시 30분 경에는 한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윗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광주 만세!’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한 발의 총성과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꺽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눈물로 온 몸을 떨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었다. 시민들은 곧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시외의 무기고로 향했다.(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그것은 불가능한 사랑이었다. 사랑은 사방에서 무차별적으로 좨치며 들어오는 초현실스런 폭력의 핏빛 후광이 있었기에 그만큼 간절하고 애틋했건만 운명은 그악스러운 강자들의 편이었다. 그렇게 광폭한 악귀들이 미친 듯이 총을 갈기고 대검을 휘두르는 하늘 없는 무법지대에서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맥없이 스러져들 갔다.

▲ 당시 민주화의 알심 전남대 학생회관


“대한민국 국군병사들이 대도시 중심가에서 백주에 보이는 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끔찍한 진압봉으로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발가벗긴 채 비인간적인 기합을 주고, 트럭에 짐짝처럼 실어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같은 책)”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 속 평범한 택시 기사 민우(김상경)는 두들겨 맞아서 피범벅이 되다시피 한 시민을 돕다가 광주항쟁 속의 현실과 비슷한 된꼴을 당하고 만다. 계엄군에서 붙잡혀서 옷을 벗기우고 육탄전을 벌이다가 달리는 트럭 위에서 피 묻은 속옷만 걸치고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도망칠 때에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나주댁(나문희)의 집으로 들어가서야 겨우 목숨만은 부지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이젠 살았다는 안심이 되진 않았다. 민우의 생명은 유예된 죽음에 지나지 않았다.

▲ 당시 군사재판이 벌어지던 법정


폭도 운운 날조하며 결국은 다수의 무고한 광주시민을 대량학살하고 만 ‘화려한 휴가’란 작전명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에서 폭력의 시발점은, 민우가 동생 진우(이준기 분)를 세고비아 기타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달래서 신애(이 요원 분)와의 첫 데이트의 달콤함 속으로 빠져들어가던 극장 안이었다. 극장의 은막 위에서는 당시 인기절정의 코메디언 이주일 주연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코믹멜로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매캐한 연기를 맡은 관객들이 밭게 기침을 하는가 싶더니, 극장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엎어지듯이 뛰어 들어온다. 한 치의 뒤처짐도 없이 쫓아 들어온 계엄군의 무시무시한 실루엣. 당시 쇠심을 박아 넣었다던 곤봉으로 옛날 소 돼지 잡는 식으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앞. 함께 손잡고 달리던 신애가 넘어지면서 방향이 갈린다. 공포에 질린 신애는 앞뒤 재볼 여유도 없이 되는 대로 골목길로 뛰어 들어가다가 계엄군 손에 붙잡힌다. 능욕이나 폭행 둘 중의 하나는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상황. 이때 뒤미처 나타난 민우가 화분을 들어 계엄군의 머리통을 내리갈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던 민우 자신도 모르게 촉발된 정당방위성 폭력이었다. 이러한 대응은 나중에 무기고를 털어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저항의식의 성격을 미리 암시한다. 계엄군에 대한 증오심은 나중 문제였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목숨과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독일철학자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이란 저서에서 인간은 고통 자체를 괴로워한다기보다는 고통의 ‘무의미성’에 더욱 괴로워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의미가 파악되지 않아 영문을 알 수 없는 괴로움에 더욱 심한 아픔을 느낀다는 말이리라. 시민들은 데모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살상을 도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폭력에 맞서는 폭력에 투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광주 시민을 싸잡아 비난하는 '폭도론'은 개연성조차 없는 '허구'인 것이다.

폭력적 행위가 인간의 원초적 야만의 불모지이듯이 폭력의 상흔은 원초적인 슬픔의 결코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이다. 인간세 어디에서나 조직적인 폭력은 광기의 빛깔을 띤다. 영화 속에 재현된 당시 상황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당시 광주 도심에서는 차마 필설로 밝히기조차 꺼려지는 만행이 태연히 자행되었었다.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 하의 계엄군들의 폭력에는 최소한의 절도 감각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게 목격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계엄군들은 정권을 잡은 뒤에 일어날 국민적 저항의 싹이 아예 싹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잔혹한 퍼포먼스를 원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구실은 나중에 갖다 붙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무엇이든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분위기는 초현실적으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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