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21세기를 맞이할 무렵, 비평계는 '20세기를 대표할 희곡과 희곡작가'를 선정한 일이 있다. 이 과정에서 20세기 최고의 희곡작가로 꼽힌 이는 <샐러리맨의 죽음>, <세일럼의 마녀들>을 써낸 불세출의 희곡작가 아서 밀러.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희곡은 아서 밀러의 것이 아닌, 사뮤엘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다리오 포가 1990년대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까지 '마지막 노벨문학상 수상 희곡작가'로 아이콘화되었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단 한편에 자신이 지닌 미학적 의지와 주제의식을 모두 쏟아부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
그만큼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표현,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성이 함축된 최고의 희곡일텐데, 이를 새롭게 각색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변주로 들려주려는 의도 또한 지난 세기 동안 숱하게 벌어져, 이제 '<고도를 기다리며>는 모든 면에서 실험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법 싶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첨부'가 곁들여졌다. 연극계의 스타일리스트 위성신과 한국형 뮤지컬 안무의 대가 임현주, 그리고 섬세하고 정교한 무대장인 이경표가 합심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마어마한 무게감 - 이미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부담감이 생기는데다, '20세기 최고의 희곡'으로 선정된 희곡이다! - 에 짖눌려 있는 이 육중한 텍스트에 대해 부담감없는 해체와 재정립을 내세워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새로운'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은 일단 '4인'이다. 이 '4인'의 인간내부와 공간을 새롭게 설정시키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원작의 범위를 벗어난 현대적 개념과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며 이야기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 이 클래식이 파퓰러한 음악을 곁들여 세미 뮤지컬로 재구성시키는 '기묘한 시도'를 더하고 있는데, 이 시도 속에서 베케트 원작의 의미심장함과 육중한 무게감에 현대적이고 유쾌한 면모를 이입시키는 것. 얼핏 예상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1980, 90년대에 <고도를 기다리며>에 각색을 가했던 몇몇 작품들이 소극적 분위기를 띠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과연 그럴싸하기도 한 설정일 듯 싶다.
(장소: 소극장 축제, 일시: 2004.08.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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