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독살 사건 전모
농부 독살 사건 전모
  • 문충용
  • 승인 2007.09.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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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C.S.I "범인은 바로 네 놈이다."

▲ 조선시대 과학수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별순검>의 한 장면.
때는 세종 27년, 어머니의 병환을 위해 산삼을 훔친 효성 지극한 처녀 초선(가명)은 조선시대 여자감옥인 ‘여수옥’에 수감된다. 어느 날,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다는 전갈이 전해지고 초선에게 특별히 5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밤낮을 달려 드디어 집에 도착하려는 순간, 집 앞에서 초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포졸들…. 영문도 모른 채 관아로 끌려간 그는 독살범으로 몰려 자백을 강요당한다. 초선이 집으로 오던 중, 어머니의 병환을 구하기 위해 산삼을 가지고 있다는 농부를 찾아간 것이 독살범으로 몰린 이유다. 초선을 만난 이후 독살된 채 발견된 농부, 농부 독살 사건의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을 재구성했다.

깊은 밤 주변을 의식하는 듯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는 수상한 그림자가 양반집에 침입했다. 슬며시 물건을 훔쳐 나오는 도둑을 기다렸다는 듯 하인들은 문 앞을 막고 서있다. 놀랍게도 물건을 훔친 도둑은 묘령의 여인이다. 게다가 훔친 물건은 다름 아닌 산삼. 잡은 자와 잡힌 자도 놀란 산삼 절도사건으로 이 여인이 치러야할 죄 값은 과연 무엇일까.

정혼자에게 발각되다

병든 노모를 위해 산삼을 훔치려던 초선은 범행이 발각돼 의금부로 끌려간다. 안타깝게도 초선을 발각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혼자였다.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를 보고 수군수군 말들이 많았다.

“정혼자에게 들킬게 뭐야?”
“그러게 말이야, 혼사는 다 깨졌지 뭐~”

수군대는 마을사람들을 뒤로하고 초선이 끌려간 곳은 조선시대 여자 감옥인 ‘여수옥’.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죄수는 ‘영좌’라는 부하까지 거느릴 수 있었는데 감방의 우두머리 여죄수는 마녀왕라고 불렸고 그녀의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감방에 들어서자마자 초선이는 호된 신참 신고식을 치른다.

“이게 어딜 앉아. 자릿세부터 내셔야지.”
“없어? 없으면 마녀왕님 앞에서 재주라도 부려봐.”
“아무튼 얼굴 반반한 것들은 예의가 없어. 넌 미모형까지 추가야.”

얼굴이 예쁘다는 죄로 받는 형벌인 ‘미모형’은 물론, 신참을 면할 때 행하는 형벌인 ‘면신례’ 등 당시 여죄수들의 통과의례는 다양하고도 가혹했다.

한편, 고향의 병든 노모는 딸 초선의 걱정에 병환이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초선의 정혼자는 급기야 임금께 상소를 아뢰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평민들도 임금님 행차 시 꽹과리를 치거나 방을 붙여 상소를 올릴 수 있었다.
정혼자의 상소로 인해 초선은 출감을 1년 앞둔 어느 날 5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게 된다.

“살인범으로 체포하노라”

5일간의 휴가를 허락받은 초선은 노모 걱정에 발길을 재촉한다. 병든 노모를 살릴 산삼을 먼저 구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노모를 만나러 갈 것인가. 초선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병든 노모를 위해 산삼을 훔치는 일도 불사했던 초선은 늦은 밤이 되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드디어 어머니를 만난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집 앞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이 초선의 앞을 막았다.

“너를 살인범으로 체포하노라.”
“어머니~ 어머니~ 왜 이러세요?”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애타는 심정으로 옥중 휴가를 나온 초선이었다. 그런데 옆 마을 농부의 산삼을 훔치고 살인까지 했다니…
초선은 영문도 모른 채 관아로 끌려가 결백을 주장했다.

“제가 산삼을 구하러 농부의 집에 간 것은 맞사오나 저는 결단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초선의 진술에 따르면 초선이 농부를 찾아간 것은 사건 당일 낮 1시경, 밥을 먹고 있던 농부에게 전후사정을 말하고 산삼을 달라고 빌어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시각 농부와 초선이 함께 있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어 초선이 살인자로 몰린 것이다.

초선이 궁지에 몰려 주리를 틀리는 지경에까지 이른 순간, 시체의 검안을 마친 수사관이 등장했다. 시체를 꼼꼼히 파악한 수사관은 사건 당일 농부가 만난 사람이 초선 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초선 외에 또 다른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심문을 시작했다.

진짜 살인자는 누구?

수사관이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농부의 절친한 친구 개똥이(가명).
개똥이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10시경 개똥이는 농부와 화투를 치고 술판을 벌였다.

두 번째 용의자는 농부의 아내.
농부의 아내는 아침부터 술에 노름을 하는 남편과 다투기는 했지만 사건 당일 12시 경 밥상을 차려주고 밭에 나갔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마지막 용의자가 바로 사건 당일 오후 1시경 농부를 찾아갔던 초선이다.

세 사람의 진술을 모두 들은 수사관은 범인을 지목했다. 수사관이 지목한 범인은 바로, 농부의 친구 개똥이.

수사관에 따르면 농부는 죽기 서너 시간 전에 독을 먹었다.
조선시대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담은 무원록을 보면 공복 시에 독초를 먹고 살해됐을 경우, 시체의 하반신이 부풀어 오르고 퍼렇게 질리는 형상을 띄게 되는데 농부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부는 식사를 하기 전에 독초를 먹은 것이고, 그렇다면 점심식사 전에 만난 친구 개똥이와 함께 마신 술에 독초가 들어있었다는 것.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사건이 있던 날 농부의 부인과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개똥이는 미리 독초를 준비했고 일부러 돈을 잃어가며 농부의 흥을 돋워 술을 마시게 해 독살한 것이다.
그리하여 초선은 죄가 없음이 밝혀졌고 5일간의 휴가동안 노모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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