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암리 특정 후보 지원 등 실명 거론되며 루머 돌아
재계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시작 이후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숨을 죽인 채 대선과 관련한 어떠한 행보도 보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행보는 얼마 전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경제대통령 당선론’ 발언 이후 더욱 심해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조 회장의 발언을 비난한 것이 한 몫하고 있는 셈이다.
총수들, 러브콜(?) 차단 고심
이 같은 재계의 행보는 과거 대선정국에서 보여 왔던 행적과는 사뭇 다르다. 유력 대선후보 중 특정 인맥에 편승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줄서기를 하던 모습에서 이번엔 아예 정권말기 대선정국에서 불어올지 모를 후폭풍 원천봉쇄에 주력하는 모습인 것이다.
특히 총수가 사정당국의 화살을 맞고 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혹여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까 눈치 보기만 급급한 상황이다. 소위 ‘미는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쪽박’을 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부 총수들은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 자체를 피하고 있고, 해당 기업 임원들 단속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선이 본격화되는 9월 하순 이후 장기간 해외출장에 나서거나 공식적인 모임 스케줄을 잡지 않을 계획인 총수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일단 러브콜이 있을 경우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아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게 상책인 셈”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대선과정을 완전히 관심 밖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정보팀을 풀가동하면서 대선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활동이란 것이 정권의 향방에 따라 새로운 방향 선회가 이루어질 수도 있어서다. A기업 정보팀 관계자는 “윗선에 일일보고로 동향을 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력 대선후보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대선구도가 불붙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업의 특정후보 밀어주기나 줄서기 행태가 완전히 없을 것으로 속단하긴 이르다.
선거풍토 자체가 막대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업들이 좋든, 싫든, 어떤 형태로든 유력 대선후보와 밀월관계 형성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줄서기만 잘하면 차기 정권 내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유혹은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9월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 때까지만 숨을 죽이고, 이후 10월 중순을 넘어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불붙으면 기업들의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 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떤 기업이 어떤 후보 민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재계를 떠도는 루머도 상당하다. 어떤 기업이 암암리에 특정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식이다. 또 어떤 후보가 차기 정권을 잡으면 어떤 기업이 몰락할 것이란 루머도 들려온다. 심지어는 구체적으로 후보와 기업의 실명까지 공공연하다. B후보가 C기업의 후방지원을 받고 있다든지, D기업이 E후보가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F후보를 밀어주는 내부방침을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해당 기업들로서도 단순한 루머로 웃어넘기기는 부담이다. 무시하자니 괜한 오해를 받을까 찜찜하고, 적극적으로 루머 차단에 나서자니 혹여 괘씸죄로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어서다.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인 셈이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일부 기업 임원들의 경우 오해를 살까 개인적인 친분의 인사와도 만남 자체를 피한다”면서 “대선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까지는 그냥 숨죽이고 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