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불길한 조짐이 돌고 있다. 한쪽에서는 당내 화합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에 맞먹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쪽은 박근혜 전 대표측. 박 전 대표는 경선 패배이후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활동을 재개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여전히 경선결과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활동 재개 소식과 발 맞춰 새로운 연대설들이 쏟아지고 있다. 거론되는 인물로는 이회창 전 총재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이 있으며 탈당 이후 신당창당을 하거나 범여권쪽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마저 돌고 있는 실정이다. 합의이혼 후 얼마의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재혼설에 휩싸인 박 전 대표. 그를 둘러싼 수많은 설들의 뒤를 쫓았다.

아물지 않는 상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행사였던 이 자리에 박근혜 전 대표측 인사들은 대거 불참했다. 박 전 대표의 주요 인사들은 출장과 개인 사정을 이유로 행사 참여를 거절했으며 김학송, 김기춘, 한선규, 김학원, 이진구 의원 등 10여 명만이 행사를 함께 했다.
박 전 대표측은 불참 이유에 대해 ‘한반도 대운하’ 공약 설명회와 ‘경제대통령 이명박, 민생정당 한나라당’이라는 연찬회 주제는 들었다. 박 전 대표측 한 인사는 “우리가 결사반대한 공약을 당선 직후 ‘주입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오지 말라는 뜻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이명박 후보측은 박 전 대표측의 반발기류를 의식해 이 전 시장이 직접 ‘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한반도대운하추진단장을 맡았던 박승환 의원이 특강을 한다던 계획을 취소했다.
이명박 후보는 “진정한 화합은 정치적으로 과시하고 보이는 화합이 아니라 물이 스며들 듯 마음과 마음이 흘러 하나가 되는 것”이라며 “경선일 마지막 3분, 박 전 대표의 말 한 마디가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변화를 가져왔다”며 박 전 대표를 추켜세웠다.
이어 “서로 경쟁하고 싸웠기 때문에 화합하기보다는 역사적인 소명, 정권교체를 위해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이 있다”며 “진정한 마음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화합’을 강조했다.
강재섭 대표도 “우리는 치열한 경선과정을 거치면서 정권교체라는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 등반준비를 해왔다. 이제 자중자애해야 한다”는 당부를 전했고 이방호 사무총장도 “서로 상처를 보듬고 붕대를 감아야지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후보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내 갈등상황은 쉽사리 아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박 전 대표의 공식적인 활동 재개가 지지자들의 만남에서 그쳤다는 점과 이 날 행사에 참석한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의 반응도 갈등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는 점 때문이다.
‘이명박 연찬회’에 참석한 몇 몇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은 “연찬회 주제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긴 쪽의 배려가 부족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화합은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 불만을 표출했다.
李와 가느니 안 가고 말지
박근혜 전 대표가 공식적인 활동 재개를 지지자들과의 만남으로 잡은데 대해서는 ‘상처가 깊다’는 말이 뒤따른다. 박 전 대표는 캠프 해단식에서 “저 같이 큰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며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어 “여러분을 대신해 여러분의 뜻을 꼭 이뤄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점에 대해 오직 죄스러울 뿐”이라며 해단식이 진행되는 내내 어두운 기색이 완연했다. 박 전 대표는 칩거를 끝내기는 했으나 당분간 정치 현안에 대한 말은 삼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측근들의 말은 다르다. 안병훈 전 선대위원장은 “여론조사에서 져서 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놓고 분하고 원통해서 밤잠을 못 자면서 보냈다”며 패배에 대한 억울함을 드러냈고 서청원 전 상임고문은 “(이 후보의) 승리를 인정하지만 그 사람의 도덕성 책임까지 전부 안을 이유가 없다. 도덕성 문제는 본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이 후보를 도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은 끝끝내 “이명박 후보를 돕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힘을 축척하고 있을 때” “5년 뒤 다시 도전하자”며 대선이 진행되는 동안 흐름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또 ‘이명박 후보를 내세웠다가는 한나라당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돌았다.
박 전 대표의 침묵과 지지자들의 ‘반이명박’ 기류는 정치권 소식통들의 입을 타고 전해져 각종 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재혼설…설…설

이러한 설을 전한 이는 “박근혜 전 대표가 경선후보 등록으로 인한 법적 제재로 출마가 힘들다면 박 전 대표의 힘을 고스란히 승계 받을 수 있는 이회창 전 총재가 제3후보로 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세력이 아직 살아있는 데다가 이 후보의 당 개혁바람을 타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보수우익세력의 거두가 뜰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며 아무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 정객들은 “박 전 대표의 탈당 전력이 왜 생겼는지 상기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에게 이회창 전 총재는 이명박 후보만큼의 앙숙”이라고 그들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연대까지 갈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정치권에 불어 닥친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박근혜-손학규 연대설이다. 범여권으로 자리를 옮긴 손학규 전 경기지사지만 불편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의 오랜 정체로 고민해야 했고 경선레이스에 돌입한 이상 이전보다 더 거센 검증에 시달려야 한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면 대세론을 형성해 앞으로 달리고 있는 이 후보보다는 박 전 대표가 더 끌리는 게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의 한나라당 만년 1, 2, 3위를 날릴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다는 것. 이 후보와 호각세를 이룬 박 전 대표와 범여권에서 얻은 손 전 지사의 지지층은 새로운 세력으로 뭉친다면 이 후보를 능가하리라는 계산도 가능하다.
독자 창당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캠프가 해단되기는 했지만 어느 캠프보다 높은 충성도는 박 전 대표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불러 모을 수 있다. 이미 한 번의 탈당전력을 가진 박 전 대표이니 다시 한 번 도전 해보리라는 이야기는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의 경선 중 잊혀지지 않았던 마지막 카드다.
이 밖에 한참 전 정치권을 달궜었던 박 전 대표의 각종 연대설도 힘을 얻었다 잃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DJ와의 연대로 햇볕정책 계승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노 대통령이 후견해 지역주의를 무너뜨리는 선봉장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설도, 얼토당토않은 설들도 있지만 이러한 설들이 말하는 바는 한결같다. 이 후보의 패자 끌어안기가 송곳을 박고 시작하고 있어 상처는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과 박 전 대표측의 분위기가 이 후보측의 화해모드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이 박 전 대표의 공식적인 움직임이 활기를 띄는 순간까지 계속된다면 이후로는 좋은 방향으로의 예측은 힘들어진다는 것이 정치권의 전언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법정이혼까지 간 정치부부가 아직 깨지지 않은 것은 조정기간일 뿐”이라며 “아이들이(지지자) 헤어지기를 종용하고 있으니 위자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남아 있다”고 말한다.
정치부부의 말로가 끌어안기가 될지 아니면 완전히 돌아서거나 또 다른 로맨스의 시작을 부를지를 점치며 또 한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