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사찰을 위협하는 엄청난 도둑이 나타났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출귀몰한 수법, 단 한번의 손놀림만으로 순식간에 불전함의 시주돈을 가로챘는데… 하지만 뛰는 도둑 위에 나는 스님이 있다. 스님의 일망타진 도둑잡기 대작전 속으로 들어가보자.
수상한 사진사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립한 전라남도 곡성의 도림사. 옛부터 도인이 많이 찾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찰의 규모는 작지만 워낙 아름다워 관광객과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풍경을 필름에 담기 위해 사진사까지 사찰을 방문할 정도였다. 정기적으로 사찰을 방문한 사진사 손기수(가명)는 스님과도 안면을 익힌 사이였다.
“처사님 또 오셨군요.”
“도량이 너무 아름다워 자주 올까 합니다.”
그날 저녁 하루 동안 신도들이 시주한 불전함을 확인한 작은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스님… 요즘 종종 시주돈이 턱없이 적은 날이 있습니다.”
큰 스님은 시주돈은 액수가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정성이 중요한 것이라고 충고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찰 스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큰 스님은 요즘 절마다 도둑이 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요즘 사찰마다 도둑이 들어 시주돈을 훔쳐간다고 하니 조심하게.”
“뭐라고? 시주돈을? 그래 알았네.”
며칠 전 시주 돈이 턱없이 적은 날이 있다는 작은 스님의 말이 떠오른 큰 스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음날부터 도림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신도들의 정성이 담긴 불전함을 노리는 도둑은 대체 누구일까. 큰 스님과 작은 스님은 용의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보냈더니 매일 만화책만 붙들고 사는 나재수(가명)? 아니면 매일 약수를 받으러 오는 최영감? 수 많은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의심만 계속 될뿐 범임을 잡을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큰 스님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무턱대고 의심할 수는 없고 확증을 잡아야 한다며 수표 한 장을 작은 스님에게 건네며 불전함에 넣어두라고 말했다.
수표를 받아들은 작은 스님은 큰 스님의 말대로 수료의 일련번호를 잘 적어두고 불전함 속에 수표를 넣는다.

일주일만에 사진사 손씨가 도림사를 다시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웅전 구석구석을 누비는 손씨는 예술가다운 몸동작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용의선상에 포함된 손씨가 사찰을 떠난 직후 작은 스님은 불전함을 확인했는데 큰 스님의 지시로 넣어둔 수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은 손씨가 틀림없었다.
한편 손씨는 재빠르게 사찰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힌 손씨는 경찰서로 연행됐지만 손씨의 몸에서 수표는 나오지 않았다. 손씨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것이라고는 사진기와 긴 막대기, 껌 뿐이었다.
“증거를 대세요. 증거를… 아니 죄 없는 사람 잡아다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자 손씨는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손씨를 무혐의로 풀어주려는 찰나,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손씨가 탔던 택시의 기사양반. 택시기사는 쭈뼛거리며 수표 한 장을 내밀었고 작은 스님이 일련번호를 확인한 결과 불전함에 넣어둔 문제의 수표가 분명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전문사찰털이범 손기수는 사진사로 신분을 위장해 전국의 사찰을 돌며 스님들과 친분을 쌓은 후, 꾸준히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불전함의 위치와 신도들의 방문이 가장 많은 날 등을 파악해 사찰별로 작업하기 좋은 날을 선정했고 때가 되면 사찰을 방문 불전함 털이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 수법이 비상했다. 일단 사진을 찍는척하며 불전함 근처로 접근 한 후, 미리 준비해 온 얇고 긴 막대기 끝에 씹고 있던 껌을 붙인다. 신도나 스님들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면서 껌 붙인 막대기를 불전함에 넣었다 꺼내면 작업 완료. 껌의 점성으로 인해 불전함 속의 지폐가 막대기에 붙어 나왔던 것이다.
손씨는 그 조차 천원짜리는 다시 불전함 속에 넣고 고액권만 챙겨나왔는데 마침 도림사 불전함을 턴 날, 미끼로 넣어둔 수표를 덥썩 물었다. 수표를 챙겨 도림사를 떠나려는 찰나, 경찰이 등장하자 그 동안의 모든 행각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진 손씨는 수표가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택시기사에게 무작정 수표를 가지라고 내민 것이다.
택시기사는 갑작스런 횡재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수표를 준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 수표가 뭔가 석연치 않은 돈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경찰서로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 동안 보안시설이 없는 조그만 사찰만을 노려왔던 도둑 손씨는 결국 덜미가 잡혀 죄 값을 치렀다.